자두 이야기/靑石 전성훈
계절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다. 매년 여름이 더웠지만, 올해는 더 극성맞은 모양이다. 한낮의 불볕더위에 난데없이 밤에는 폭우가 쏟아져 궁금했는데,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공기의 흐름’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낮에는 주변에 달궈진 공기로 비가 적고, 밤에는 뜨겁고 습한 공기로 많은 비를 뿌린다고 설명한다. 기상청과 관상학자들이 이제는 ‘장마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온대 지방에 속했는데 이제는 온대가 아니라 아열대 지역으로 기후대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기후가 변함에 따라서 각종 농산물의 경작지도 이동하고, 과실수 농사의 지리적 위치도 남부 지방에서 위도를 따라서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다. 기후대의 변경에 따라 계절마다 다른 과일을 먹는 즐거움도 점점 사라진다. 노지가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과일들이 많은 세상이다 보니, 계절 따라 제철 과일을 맛본다는 표현도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게다가 열대나 아열대 지방 과일이 널리 수입되면서 좋아하는 과일의 선택 폭이 무척 다양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에 즐겨 먹었던 과일이라야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제철 음식이나 과일을 먹는 즐거움은 가난했던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에는 최고의 선물이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과수원 원두막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낮잠을 자던 추억을 가진 나이 든 사람들은,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 같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과일이 다르므로 어떤 과일이 더 맛있고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본인의 입맛에 따라서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름 과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자두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최애’ 과일은 탐스럽게 익은 불그스름한 자두다. 도톰하게 솟아오르는 소녀의 가슴처럼 혹은 아기 주먹만 한 자두를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살짝 눈을 감고 자두를 생각하면서 한 입 베어 무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거의 15년 정도 되는 오래된 이야기다. 아들이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 자주 출장을 다녔다. 아들의 회사는 직원 복리후생에 세심하게 배려하여 사무실 냉장고에 과일을 풍성하게 제공하였다. 잦은 출장으로 사무실에서 과일을 맛볼 기회가 없는 직원들을 위해 회사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최고급 특상품 과일을 출장이 잦은 직원들 가정으로 보내주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 주먹만 한 크기의 커다란 자두 맛을 보았다.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과일즙이 풍성하게 나오고 당도가 무척 높아서 자두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본 특상품 자두의 맛을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어 아쉽다. 어린 시절 외갓집 우물가에 있었던 앵두나무 열매를 먹었던 기억은 확실한데 이상하게도 자두를 먹었던 기억이 전혀 안 난다. 실제로 어릴 때 자두를 먹은 적이 없었는지, 아니면 먹었음에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마음대로 자두를 먹을 수 없었던 어떤 사연, 아마도 경제적인 집안 여건 때문에 어쩌다 한두 번 먹은 사실을 기억조차 못 하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벌써 여러 번 자두를 사 먹었는데 예전처럼 맛있는 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자두의 당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확실히 구분이 안 된다. 차가운 얼음을 둥둥 띄어 먹는 수박 화채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두가 더 먹고 싶은 제철 과일이다. 날씨 탓에 너무 비싸게 가격이 올라서 금값이 되어버린 수박과 사과 대신에 자두와 참외 그리고 토마토를 먹으면서 더위를 넘기고 있다. 과일값이 천방지축으로 오르지 않고 부담 없이 먹고 싶을 때 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2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