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5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성경을 응하게, 세상을 응하게
요 19:38~42
<십자가 사형수의 시신처리>
☞ 요즘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두 연인이 그 인파에 휩싸였습니다.
남자는 살아났는데, 여자는 깨어나지를 않습니다.
경찰과 소방대가 두 사람을 떼어놓습니다. 의식이 없는 여자친구를 격리합니다.
남자 친구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지킵니다.
끝내 사망을 확인하고 엠블란스에 실려 가는데, 경찰이 남자친구를 차단합니다.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2시간이 지나서야, 유가족은 시신의 소재를 파악합니다.
참으로 비통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사람이 숨을 거두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됩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신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유가족이요? 천만에요! 국가가 소유자입니다.
☞ 오늘 본문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이야깁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고 시신이 십자가 아래로 내려졌습니다.
숨 떨어지기 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아래에 있는 네 명의 여인, 제자 요한,
이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되었고, 소유권이 로마 당국에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있던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비롯한 네 명의 여인들, 제자 요한!
예수님 시신 곁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처분만 바랄 뿐입니다.
로마 당국은 시신을 십자가 아래에 그대로 두고 경비를 합니다.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때로는 주변에 접근을 금지하고 맹수나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합니다.
이것이 로마제국 십자가 사형의 실상입니다.
☞ 오늘은 예수님이 숨을 거둔 이후 일어난 일을 통하여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요한이 강조하는 것>
요한복음 19장에서 저자로서 요한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유월절 준비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31절) “이 날은 준비일이라~”
(42절)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예수님이 유월절 준비일에 못 박힌 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뜻입니다.
☞ 믿어지십니까?
☞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희생되어서 우리가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졌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전체적으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메시아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구약 성경의 말씀이 고스란히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그 말씀에 따라 십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대응 하나 하나, 모두~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28절)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36절)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이 준비일이었고, 다음날이 안식일이요 유월절이라서 십자가에 시체를 둘 수 없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요청했습니다.
“십자가에 있는 시체들을 모두 끌어내려 주시오!”
본디오 빌라도가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과 좌우편 강도, 모두 끌어내렸습니다.
☞ 자칫, 예수님의 시체도 새와 맹수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응하다 1>
지금까지 되어진 일들은 모두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부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섭리하실까요?
지금까지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됩니까?
오늘 설교 제목을 보십시오! “성경을 응하게, 세상을 응하게”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섭리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세상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이 응하면 세상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이 응하면, 세상이 응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이 응한 이후, 세상이 어떻게 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38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짜잔”하고 나타났습니다.
‘아리마대’는 지역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32키로미터쯤 북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곳 출신으로 요셉이라는 인물이 출현했습니다.
이 요셉이 누구냐?
마가복음(15:43)과 누가복음(23:51)에 보면 이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자”였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동족, 유대인이 두려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신분이 국회의원이니, 로마 당국자 본디오 빌라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내가 수습할터이니, 나에게 인계하시오!”
산헤드린 공회원이 그렇게 부탁을 하니, 빌라도가 허락합니다. “좋도록 하시오!”
<세상이 응하다 2>
산헤드린 공회원, 아리마대 지역구 국회의원 요셉, 그가 예수님의 시신을 인도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39절)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한복음 3장, “하늘과 땅의 대화” 기억하시지요?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 전문가입니다.
그날 그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었지요?
“내가 보니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하다”
“당신이 그렇게 기적을 행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분명하다. 임마누엘이다!”
이렇게 해서 그날 밤에, “하늘과 땅의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말씀도 그날 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날 이후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열두제자는 드러난 제자이고, 오늘 본문의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는 은닉된 제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를 가지고 왔습니다.
몰약, 침향! 이것은 나무에서 추출한 향료이면서 향수이고, 방부제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의 장례의식은 몰약과 침향으로 시신을 씻고, 뿌려줍니다.
니고데모가 백 리트라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1리트라가 327그램입니다. 10리트라는 3,270그램입니다. 100리트라는 32,700그램입니다.
32키로에 달하는 양입니다. 이 정도 양이면 거의 시신을 담가도 되는 양입니다.
이렇게 몰약과 침향을 많이 쓰는 장례는 당시 왕의 장례에 해당합니다.
니고데모는 그저 흉내만 낸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왕의 장례, 그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왕중의 왕”입니다. “만주의 주”입니다. 할렐루야~
니고데모가 이렇게 몰약과 침향을 가져와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40절)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 하늘과 땅의 대화 ‘니고데모’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시신을 인계받아서, 왕의 장례 이상, 최고의 절차로 장례를 마쳤습니다.
(41~42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이 내려지기까지는? “성경이 응하게 하려고”
☞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 아래로 내려진 이후에는? “세상이 응하게 하려고”
구약성경에서 예표되고 예언된 모든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아래로 내려진 이후로는 어떻게 되리라는 말씀이 구약에 없습니다.
이때부터 되어지는 일에 대하여 제가 “세상이 응하게 하려고”라고 했습니다.
설교제목을 정하려고 이렇게 했습니다. “성경이 응하게, 세상이 응하게” 할렐루야~
<‘세상이 응하게’의 진실>
만일,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시신도 좌우편 강도와 마찬가지로 골고다 언덕에 방치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늑대가 와서 훼손하고, 맹금류가 날아와서 훼손했을 수도 있습니다.
☞ 이렇게 되면 시신과 함께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수난을 당하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날 것을 몇차례 언급했습니다.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이거든요!
☞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야 할 때까지는 주님의 시신이 일단 온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제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숨이 떨어지면,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다고요? ~ 국가에 귀속됩니다.
천수를 다 하고 죽은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소유권을 가진 국가가 유가족에게 장례를 허락함으로써 장례식이 이루어집니다.
법리가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부모님 돌아가시면 소유권이 유가족에게 있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국가가 유가족에게 시신을 주어 장례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취에 들어 쓰이는 자>
오늘 본문에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두 사람!
예수님의 말씀, “내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바로 이 말씀의 선포가 이루어지도록 쓰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귀하게 쓰임받음으로써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돌아보면, 모든 사람이 어딘가에, 누군에 의해서, 쓰임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의 출세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어떤 자녀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고 있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의 출세나 남편의 뜻에 따라 쓰여집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의 고집과 주장에 꼼짝 못하고 쓰여집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연속극에서 재벌집 딸이 남편 써먹는 것 보셨지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사용되고, 쓰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 이렇게 쓰임 당하는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인생은 나를 누가 사용할 때입니까?
주님이 쓰시는 자,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 자, 이 인생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가 쓰고 있습니까?
“나를 누가 쓰고 있나요?”
주님이 쓰시고 계십니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처럼
“성경이 응하게, 세상이 응하게” 세상에 속한 우리가 주님의 쓰임을 받을 때,
그때가 가장 고귀한 때임을 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