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호칭이다.
호는 2종 이상의 이름을 가지는 풍속과 본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경우, 호의 사용은 당대(唐代)부터 시작하여 송대(宋代)에는 보편화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는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호는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로 나누기도 한다.
아호는 흔히(시)詩, (문)文, (서)書, (화)畵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라는 뜻이며,
당호는 본래 집의 호를 말함, 그 집의 주인을 일컫게도 되어 아호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다양한 호를 사용한 이는 김정희(金正喜)인데,
추사선생 아호집(秋史先生雅號集)'에 의하면 선생의 변화무쌍한 서체만큼이나 호가 무려 503개 나 된다.
호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후세들은 선인들의 명(名)이나 자(字)보다는
호(號)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이황(李滉) 보다는 이퇴계(李退溪)로,
이이(李珥)보다는 이율곡(李栗谷) 으로,
정약용(丁若용)보다는 정다산(丁茶山)으로 더 많이 부르고 기억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민족적인 자각과 자주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흐름의 영향으로
한자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로 호를 짓는 경향도 있었다.
주시경의 '한흰샘', 이병기의 '가람', 최현배의 '외솔', 전영택의 '늘봄' 등이 곧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호의 사용이 옛날과 같이 성행되지 않고 있다.
더러는 호라는 말 대신에 필명(筆名, pen- name)이라 일컫기도 한다.
특히 신문이나 매스컴 등에서는 정치인들을 애칭으로 부를때
당사자에게 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J(後廣), YS(巨山), JP(雲庭) 등의
영어의 머리글자(initial)를 표기하고 있어 매우 아쉽기도 하다.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된다는 취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 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호에서 우리는 선인들의 풍아(風雅)한 취미의 하나를 엿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취미는 앞으로도 이어받아 생활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