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382]어부(漁夫)성효원(成孝元)-원루기몽(院樓記夢)
빈 강(空江) - 성효원(成孝元)1497~1551. 조선중기 문신
原題 : 院樓記夢(원루기몽)-원루에서 꾼 꿈이야기.
情裏佳人夢裏逢(정리가인몽리봉)
相看憔悴舊形容(상간초췌구형용)
覺來身在高樓上(각래신재고루상)
風打空江月隱峯(풍타공강월은봉)
마음속에 그리운 님 꿈속에 만나보니
서로 보메 초췌한 모습 그대로 일세.
깨고 보니 이내 몸은 높은 누각에 있고
바람은 빈 강에 불고 달은 산 뒤에 숨었네.
空江(공강) - 성효원(成孝元)1497~1551. 조선중기 문신
原題 : 院樓記夢(원루기몽)
情裏佳人夢裏逢(정리가인몽리봉)
相看憔悴舊形容(상간초췌구형용)
覺來身在高樓上(교래신재고루상)
風打空江月隱峯(풍타공강월은봉)
마음속에 그리운 님 꿈속에 만나보니
서로 보메 초췌한 모습 그대로 일세.
깨고 보니 이내 몸은 높은 누각에 있고
바람은 빈 강에 불고 달은 산 뒤에 숨었네.
覺來(각래) : 깨닫고 보니
覺來(교래) : (잠을)깨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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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원본에서.
猿亭夢見松齋,冲庵而作。[崔壽峸]
情裏佳人夢裏逢。相驚憔悴舊時容。
정리가인몽리봉 상경초췌구시용
覺來身在高樓上。風打空江月隱峯。
각래신재고루상 풍타공강월은봉
院樓記夢(원루기몽)
漁夫;成孝元
情裏佳人夢裏逢 (정리가인몽리봉)
相看憔悴舊形容 (상간초췌구형용)
覺來身在高樓上 (각래신재고루상)
風打空江月隱峯 (풍타공강월은봉)
마음속 아름다운 님 꿈속에서 만나
서로 보니 초췌하고 옛 모습이네.
깨어나니 이 몸은 높은 누각 위에 있고
바람은 빈 강에 불고 달은 산에 숨었네.
원루기몽(院樓記夢) - 원루에서 꾼 꿈이야기.
원루기몽'은 '여관에서 꿈을 기록하다'라는 뜻이다.
'원루'는 관리들이 출장 시 묵었던 여관이다.
성효원(成孝元) 1497 – 1551
情裏佳人夢裏逢 相看憔悴舊形容
정리가인몽리봉 상간초췌구형용
그리던 예쁜 님 꿈속에서 만나니
서로 보매 초췌한 옛 모습 그대롤세
覺來身在高樓上 風打空江月隱峯
각래신재고루상 풍타공강월은봉
깨어나니 이몸은 높은누각에 있는지라
바람은 빈 강 두드리고 달은 산에 숨었네.
정리(情裏) ; 표현은 못하고 마음속으로 정을 품다.
초췌(憔悴) ; 마르고 파리한 모습.
각래(覺來) ; 각성(覺醒)이 오다. 깨달음이 오다. 깨어나다.
풍타(風打) ; 바람이 때리다. 제법 나뭇가지가 흔들릴 만큼 센 바람이 불다.
월은봉(月隱峯) ; 달이 산 뒤로 숨었다. 달이지다.
님을 꿈에 만났다. 효원의 님은 장래를 약속 하였거나
기방의 기녀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아직 고백도 못해보고 제대로 눈길 한 번 나누어 보지도 못한
마음속의 여인 인갑다. 그러기에 정리(情裏)라고 했지.
이 부분에서 시어(詩語)선택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상간(相看)이라 했는데 어찌 보면 작가자신의 모습과 곁들여 거울에 비쳤을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속에 짝사랑을 품고서도 무어라 표현 한 번 못한 자신의 초라한 모습.
그러게 그미도 고백을 기다리다 지친 듯 파리한 모습으로 내 영상에 남은게지.
평소처럼 꿈속에서도 머뭇거리며 어정거리며 접근불가 단념하고 돌아서는
안타까운 꿈을 꾼 게다. 무인(武人)다운 호쾌함 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그렇다.
그런데 왜 꿈에 나타났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의 암묵적 기별인가?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근심 반, 기쁨 반 깨어보니 높직한 다락에 누워 잠이 들었다.
혼미한 가운데 가까이 그녀가 왔나 싶어 휘이 둘러보니
텅 빈 강물위로 한 점 바람이 흰 물결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달빛은 어느새 서편 봉우리 뒤로 숨었다.
400년 세월이 오래지 않다 말 못하지만
공강(空江)을 텅 빈 강이라고 밖에 풀지 못하는
오늘의 납자(衲子)가 부끄러운 시간이 되었다.
성효원(成孝元)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일(伯一), 호는 어부(漁夫).
아버지는 부사 몽선(夢宣)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는 합격하였으나 이후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조의 천거로 내시교관(內侍敎官)에 등용되어 상서원주부·공조좌랑을 거쳐
용인현령에 이르렀다.
관직을 물러나서는 공주·인천·용산(龍山) 등지에 정자를 세워
문인생활을 하면서 호를 스스로 ‘어부(漁夫)’라고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출처] 빈강 - 성효원(成孝元)|작성자 소암
* 猿亭 최수성 崔壽城(1487~1521)
*松齋集(韓忠)에ᆢ
제목 없이 猿亭夢見松齋, 冲庵而作[崔壽峸]
(猿亭(최수성)이
꿈에 松齋, 冲庵을 보고 짓다)라고 되어 있다.
기묘사화때 유배간 송재(한충), 충암(김정)을 꿈에 보았던 모양
情裏佳人夢裏逢 정리가인몽리봉
相驚憔悴舊時容 상경초췌구시용
覺來身在高樓上 각래신재고누상
風打空江月隱峯 풍타공강월은봉
마음 속 가인을 꿈에 만났더니
옛 모습보다 초췌해 너무나 놀랐네
깨어보니 이 몸은 고루 위에 있고
빈 강에 바람 들이치고 달은 봉우리 뒤로 숨네
원문=松齋先生文集卷之六 / 附錄
猿亭夢見松齋,冲庵而作。[崔壽峸]
情裏佳人夢裏逢。相驚憔悴舊時容。
覺來身在高樓上。風打空江月隱峯
최수성崔壽峸
가진(可鎭), 원정(猿亭), 북해거사(北海居士), 경포산인(鏡浦山人), 문정(文正)
조선전기 1487년(성종 18)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과 관련된 학자. 선비화가.
본관 강릉(江陵).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포산인(鏡浦山人). 치운(致雲)의 증손자로 생원 세효(世孝)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배출된 신진사림파(新進士林派) 학자로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교유하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친구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아예 포기하고 술과 여행, 시서화(詩書畫), 음악으로
일생을 보냈다. 1521년 35세 때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남탄현(南炭峴)에 집을 마련해서 원숭이를 길들여 함께 살았으며
원정이라는 아호는 그 것에서 연유하였다. 젊어서부터 세속을 멀리하여
명산승경을 유람하며 술과 거문고, 시를 즐겼고
뜻이 맞는 교우들과는 만남에서 화흥(畫興)을 폈다.
문장·시·서화·음률이 모두 뛰어난 절세의 기재(奇才)로 평가되었으나
유작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인종 때 신원(伸寃)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강릉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
贈領議政猿亭崔公行狀
公諱壽峸。字可鎭。號猿亭。一號北海居士。又號鏡湖散人。
本江陵人。新羅丞相諱恒之後。至高麗。有諱必達。官至左政丞。
孫諱漢柱。政堂文學。蟬嫣累世。世襲珪組。
入我朝。有諱安隣。官兵曹判書。卽公高祖也。
曾祖諱致雲。吏曹判書。爲世宗朝名臣。祖諱應賢。大司憲。考諱世孝。
生員。以孝行節操。見重於世。娶承旨崔哲寬女。以成化丁未生公。
自幼意氣不羣。聰敏絶人。九歲。文藝已成。蓋天才而非學得也。十三。
丁內艱。服喪一遵禮制。朝夕饋奠。必親自備物。事嚴親。柔婉承順。
一以養志爲事。及奉諱啜粥廬墓。毀瘠踰禮。三年如一日。鄕人皆化之。
服闋。不屑爲擧業。受學于寒暄金先生之門。與金冲庵,趙靜庵相友善。
探討墳
典。講劘道義。問學日進。遂成大儒。諸賢或勸就仕。終不改操。
雅有山水之趣。遍遊涅盤,頭陀。或入智異,俗離,伽倻諸名山。
優游徜徉以自娛。先是。金老泉湜。一日與靜庵,冲庵諸人會話。
公自外至。長立不揖曰。可飮我一器酒。卽與之。快飮浮白曰。
吾乘敗船。値颶風幾溺死。心甚怖悸。今飮酒釋然矣。不辭徑去
。座中甚怪之。靜庵曰。敗船之喩。指吾輩也。顧諸君不知耳。
未久禍作。其言果驗。人皆服其先見。南衮嘗以山水圖。寄冲庵求題
。公適見之。題曰。落日下山西。孤煙生遠樹。幅巾三四人。
誰是輞川主。衮見而嗛之。其叔父崔
提學世節。與衮素相善。公每諫曰。吾觀其爲人。眞宵人也
。愼勿交游。況今羣奸奰慝。災孼疊見。士林大禍。朝夕必至
。願速棄官。退歸鄕里。世節不悅曰。汝毋妄言。恐有後禍。
嘗語其同僚曰。壽峸勸我退休。欲去未能。忌嫉者言于衮。
及己卯禍作。衮爲推官。請並推公曰。趙光祖等以崔某爲善士。
仰若山斗。朝廷進退必決。崔某名雖林下之士。光祖誤國之根。
皆由於某。且與金凈輩。別有陰謀。每勸休退。必有其情。請鞫問。
公供曰。士林見敗。勸叔父引退而已。臣以白面書生。黨於光祖。
參議朝廷事。萬無其理。勸金凈輩退歸。亦非
臣所爲也。羣奸羅織。終寘極刑。卽辛巳十月二十一日。
年僅三十五。
是日。白虹貫日。天震數百里。陰霧四塞。晝晦。行者失路。
咫尺不辨者終日。公胸襟灑落。韻度淸越。如光風霽月。
文章書法畫格音律。俱極其妙。而且精於數學。所著詩文。
散軼殆盡。只有數絶膾炙人口。其呈叔父世節曰。
日暮秋江上。天寒水自波。孤舟宜早泊。風浪夜應多。
金冲庵謫濟州時。嘗寄兩絶。其一曰。
情裏佳人夢裏逢。相驚憔悴舊形容。
覺來身在高樓上。風打長江月隱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