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위에 있는 "준성아빠"의 글에 대해서 이근호씨가 반응한 글입니다.지금 창원의 늘푸른교회에서는 이근호목사의 글 때문에 댓글설전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준성아빠의 글을 어떤 분이 십자가마을에다 옮겨놓았고 그것에 대해서 설왕설래....참 웃깁니다(홀리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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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씨....자기가 '목사'라고 합니다. 자기가 인정하지도 않은 한국교회에서 받은 직함입니다!)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 재구성
‘준성 아빠’나 ‘손하진’씨가 주장한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1.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체 인류의 저주받아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데 있다. 즉 사랑의 하나님을 저주하는 하나님으로 변경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력으로 착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이 따로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모든 인간을 자력으로 착하게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매도하는데 있다. -이것은 순전히 이근호 혼자 사상이다.
2.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모든 인간을 성령 받기 전의 죄인으로 규정짓는데 있다. 즉 성령을 받고 난 뒤부터는 자력으로 착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인간은 여전히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인 것처럼 간주한다.-이것도 순전히 이근호 혼자 사상이다.
3.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은혜 받아 착하게, 말씀대로 사는 인간이 성령을 자기 소유로 삼고 자기 자유의지 아래에 두어서 마음껏 활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데 있다. 사람이 성령을 받고 난 뒤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성령을 부릴 수 있는 입장에 있는데 이근호 목사는 이것을 무시하고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성령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여긴다.-이것도 순전히 이근호 혼자 사상이다.
4.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성령은 십자가에서 나온 영이기에 그 안에는 여전히 십자가 사건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죽인 그 취지가 계속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해댄다. 일단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님은 더 이상 십자가 사건을 거론하지 않고 “잊으라. 그 때는 네가 몰라서 선악과 따 먹었고 나를 십자가 죽였는데 내가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그럽게 이해할 때니 너의 실수를 그만 잊으라”라는 하나님의 배려를 이근호 목사는 알지 못하고 있다. 즉 성령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는 십자가 죽음의 의의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이근호 목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5.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신약 성경의 반을 차지하는 행함과 실천적인 말씀을 외면하고 모든 것은 행함과 복음을 대비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행함+복음=구원’이라는 사도들의 원칙을 이근호 목사는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실천하라는 사도의 말씀은 강조하지 않고 자꾸만 십자가 이야기만 해대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다 편협된 이근호 목사 자기 사상에 불과하다.
6.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십자가를 저주로만 이해하는데 있다. 성경적으로 봐서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봐주어서 살려내기 위한 긍휼의 십자가이다. 따라서 참으로 십자가 사랑을 아는 자라면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오랫동안 한 솥밥 먹은 다른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너그럽게 용납해주어야 한다. 아마 이런 짓은 이근호 목사가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거머쥐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 예수님이라는 분이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려 오셨을까 아니면 아무런 악의도 없이 아담이라는 조상 하나 잘못 만나서 본의 아니게 ‘이 풍진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오셨을까?
여기에 대해 해답은 악마와 예수님의 만남에서 풀리게 된다. 악마는 참으로 다정한 인간의 친구로 행세해왔다. 사람들이 지금 뭘 필요로 하고, 뭘 원하고 있는 지를 너무나도 잘 안다. 악마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결코 하나님의 뜻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몰두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악마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통했던 세 가지 축복을 예수님에게 제안한다. 우선 경제적인 안정성과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것과 세상의 각양 좋은 것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오직 하나였다. “나는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 아버지의 뜻이란 ‘자신의 살과 피’로서 언약을 완성하는 것이다.
악마는 알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양’의 피는 필히 무서운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배경으로 하지 아니하면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숨어있던 진실의 구조가 드러났다.
“무서운 저주 속에서의 오직 어린양의 피!” -이것이 언약의 완성으로 드러나는 숨겨진 하나님의 구조였다. 이때부터 악마는 어떻게 하던 이 언약 구조를 언급하는 자를, 자기 세상(=인간 세계)에서 배척하려고 기를 쓰고 설쳤고, 하나님의 신(=성령)을 받은 사람은 계속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다윗도 그러했고 숱은 선지자들도 이런 대우를 당했다)
쉽게 말해서 이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들은 죽는 것이 무서워 자기 식, 곧 애굽에서 살던 그 버릇대로의 생활방식을 고집하게 된다. 그 생활방식은 바로 ‘피의 흔적’을 지우고 사는 방식이다.
평소에 인간들의 관심사는 결코 예수님의 죽으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모든 것은 “어떻게 하면 나의 존재 가치, 행함 가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에 쏠려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의 가치를 모독하는 자를 그만 둘 수가 없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관심사가 아니라 그 죽으심 때문에 나에게 어떤 이득을 얻는가에 관심을 두면서 살아간다.
본인들의 평소 마음이 이런데 쏠리다 보니, ‘어린양의 피-애굽 세상’이라는 언약의 틀에 관심두는 사람들마저 평소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같은 구조하고 여긴다. 여기서 오해가 빚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자신의 십자가 피의 의의를 증거하는 그 활동상을 전면 거부하고 오로지 사람들은 자신의 행한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가치성에만 매달리고 살다가 누가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니 마치 자신들을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는 평소에 본인들이 자기 생각만 하고 있으니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자기처럼 자기 방어에 나선다고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근호 너도 너의 세력 넓히기 위해 십자가 피를 언급하는 것 맞잖아”라고 일방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바로 본인들이 자기 영역을 따로 챙기는 있어 그것에 대한 공격과 방해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 마을에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외침은, “너 나 모두 죄인이고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구원의 능력이다”고 말했건만, 복음에 관심 없는 자들은, “니네들 복음 주장하면서 그렇게 자기 영역 지키는 수완인 줄 뻔히 안다”는 식으로 나온다.
도대체 본인 관심사가 십자가 피에 있지 아니하면, 그냥 솔직하게 “이제 나는 십자가 피 같은데 관심 없습니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십자가 피’에 관심 없다는 말은 딴 데 관심 두고 산다는 말이고 그 딴 데 관심 있다는 것은 실은 “역시 믿을 것은 나의 행함으로 건설해 놓은 나의 세계뿐이다”는 말이다. 즉 “나는 예수님의 저주스러운 죽음의 의미”가 빠진, 그래서 더욱더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답게 느껴지는 그런 기독교와 성경해석을 원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게재한다.
개혁주의신학이 이단인 이유
첫댓글 그리고는 아래에 "개혁주의신학이 이단인 이유"란 글을 옮겨 놓았군요. 전혀 근거도 없는 비방성글을 자기를 방어하는데 이용하고 있군요. 참으로 어리석도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어리석음이여.
자신을 비판한 글을 입맛에 맞게 재해석해서 나열해놓고 그 것에 대해 평이란 걸하고, 도대체 이사람은 외부에서 자신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 이렇게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마저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숨어들어야 살아있는 존재감을 느끼는 걸까? 위의 준성아빠란 분과 손하진씨의 글에 자신이 재구성한, 쉽게 말해서 소설을 쓴 그런 내용이 어디있는가? 그렇게 왜곡해놓으면 세상이 자기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자기 말대로 세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유아적 발상이라고 밖엔 할말이 없다. 위글을 올린 두분이 보면 기가막힐 이야긴데 이런걸 망상이라고 해야할지.. 열등감인지.. 나르시즘인지.. 갇혀있는 사람들
정말 걱정입니다. 재구성했다는 내용을 보면 거의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상탠데.. .거기다가 무조건 저주와 피만 외치면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몰라서 자신들의 영적전쟁에 훼방꾼 내지는 마귀로 몰아가려는 이런 망상의 시나리오는 과연 누가 심어준 것일까? 단순히 학문적 소신이나 아집을 넘어 본인이야말로 십자가의 원수요 복음의 변개자인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잔머리로 살려하지 말고, 제발 하나님앞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정신병을 어느정도 자신안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이근호씨의 글은 우리내면의 숨은 방어기제를 제대로 보여 줍니다. 그것이 하나님 마저 대적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 볼 수 있을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지금 이근호 마을의 글들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crossvillage.org
헐~ 이근호를 비판하는 글은 올라오자마자 다 지워버렸군요...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복음을 증거하는 십자가마을인지, 이근호를 증거하는 이근호마을인지... 이근호 만세! 외치는 추종자들의 댓글만 남겨놓았네요.
아마 사라진 저의글은 이렇게 적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은 날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의 긍휼에 자기 몸을 맡기는 삶입니다.
그래서 차리리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자신의 죽음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감사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히려 이근호 목사님이 성도를 핍박합니다. 바른 말로 자신을 지적한다고 사랑조차도 미움과 대결로만 받아들이 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이근호씨의 글을 읽으면 현실을 왜곡시키는 다른복음에 미혹될것입니다.ㅠㅠ
지금 이근호씨의 '십자가마을'이 비상인 모양이군요. 올라오자 마자 댓글들을 지우려면 말입니다. 그곳에 올리시고 반드시 백업을 해두시거나, 이곳에 동시에 올려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십자가마을 제아이디가 삭제 당한 것 같습니다. 로그인 조차 안되는 군요, 잠시지만 저도 한때 k장로님 사건이 있을 때까지 십자가 마을 사이트관리자 였는 데ㅋㅋ
예전에 홀리죠이님도 그렇게 당했고 저도 그런 일을 겪었는데......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군요..그래도 그 마을에 들어가보기는 싫네요...
삭제하기전 저장한 분께 받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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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지우는 버릇은 여전하구먼.. 피묻은 숟가락으로 이근호목사는 복음만 퍼먹었다길래 지금까지 퍼먹은 것 본인은 알거라고 했는데 뭐가 찔려서 지우는거이지??요 (자신 비판하는자는 흙만 퍼먹었다고)
막사는것 정죄할 분이 따로 있지요. 막살도록 버려두신 분. 성도는 단지 막사는게 복음이라고 우기는 악을 지적할 뿐인데.. (막사는걸 정죄하면 안된다고해서)
주님 보시기에 누가 발악하는지...(이근호를 비판하는 사람을 발악한다고해서...)
아 !이 귀한 글이 곧 삭제되겠구나..
한가지 더 십자가마을에서 목양교회를 공격하려고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목사님까지 호도하고 있네요...
아하, 소용돌이님께서는 '십자가마을'사이트 운영자이셨군요. 이걸 어쩌나...섭섭하게 대접하면 안될터인데....강장로님도 잘 아실터이니....기회되면 한 번 꼭 함께 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이어준 연락과 만남을 소망합니다. 강산면옥에서 함께 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