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コヒ 와 コピ
우리는
하카타역에 도착해서 다음 행선지 기차예약을 마쳤다. 일단 짐 보따리를 역 구내에 있는 락카에 보관시켰다. 락카의 규격이 배낭규격과 딱 들어맞았다. 라커 하나짜리는 하루에 200엔, 두 개짜리는 400엔이었는데 보관료는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밤 12시가 지나면 이틀로 계산하기
때문에 저녁에 보관했다가 이튿날 찾으면 24시간이 안 되어도 이틀 분을 물어야 했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시내로 들어가 잠잘 곳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듣고 온대로 올나잇 사우나라는 것이 있었다. 요금은 2200엔, 0시부터 5시
사이에는 200엔 추가라는 구절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은 이곳에서 쉬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확정하기 전에
다른 몇 군데를 더 보자는 한사장의 제언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반드시 경쟁업소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여러 군데를 확인해보고 가장 나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것이 사업가 기질인가 싶어 나는 새삼 놀랐다. 처음 본 장소가
아무래도 값도 제일 싸고 깨끗해 보였다.
우리는
깨끗하고 경제적인 것만을 고르기로 하였다. 비싼 것을 즐길만한 여유도 없었지만 특히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에 와서 외화를 절약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신조로 삼기로 하였다.
아직 시간여유가 있는 듯 해서 우리는 공원도 산책할 겸 시내를 도보로
한 바퀴 돌기로 하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벳푸로 떠났어야 하는데 하카타 역에서 기차예약을
하는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날 저녁 거기서 밤차를 타고 오사카로 들어가려 했던 것인데 벳푸에서 오사카로 가는 데는 1인당 9000엔을 추가로
더 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JR PASS를 가지고 왔는데
왠 말이냐고 따졌다.
그 노선은 JR 이 아니고
사철이란 말이냐 하면서 한참 실랑이를 벌였지만 짧은 일어 실력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를 않았다. 한참
후에 영어를 하는 직원이 나와서 또 한차례 법석을 떤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 야간 열차는 침대차라는 것이었다.
이 열차는 규슈 남단 미야코노죠에서 16:45분에
출발하여 벳푸에는 밤 3시 반에 도착, 1분 정차 후 3시 31분에 다시 출발하여 종착역인 신오사카에는 다음날 아침 7시 26분에 도착하는 특급침대차였다.
이 열차에는 좌석 칸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일본 교통공사에서 발행한 JTB시각표를 자세히 보면 이 열차에 좌석
칸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런 안내서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점을 미처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JR PASS 를 가지고 있어도 침대료는 별도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른
계산해 보아도 우리 돈으로 1인당 65,000원을 더 내야
하는데 두 사람이면 13만원의 거액(?)이 달아날 판이었다. 이 돈을 더 내고 침대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우리의 신조에 들어맞지 않았다.
때로는 침대료를 물을 수도 있고,
기타 예상치 않았던 경비가 더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날부터 차질이 생기는데 거부감이
생겼다. 내 나름대로는 며칠 동안을 세심하게 계획하고 검토해서 만들어 온 계획인데 초장부터 13만원을 더 물어야 한다는 데는 도저히 우리의 신조에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나는 야간열차를 이용하면 하루 저녁 호텔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호텔을 예약 않고
떠나는 길이었기 때문에 첫날만이라도 호텔에 대한 신경을 안 쓰면서 전반적인 사정을 관망해보고 싶은 속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기도가 무위로 끝나고 말다니 나는 실망이 너무 컸다. 나는 물론 이런 예상치 않은 함정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마치 시험장에 나간 학생이 열심히 공부한 건
안 나오고 엉뚱한 시험문제가 나와서 허둥대는 꼴이나 진배없었다. 더욱이 첫날부터 밀이다.
우리는 현장에서 등허리가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려가며 다시 시간계획을
세웠다. 결국 하카타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직접 교토로
떠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어 다시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여유가 생겨 우리는 시내 산책길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시내 쪽으로 한참 가다 보니 어느 골목길에 커피 하우스가 있었다. 커피 하우스 간판 밑에는 コピ 5¥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한 사장과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나 들어서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5엔이라면 우리 돈으로 40원밖에
안 되는데 아무리 40원짜리 커피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단 문안으로 들어섰으니 그냥 물러설 수 도 없었다. 커피숍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카운터에 앉아 커피를 시키며 얼마냐고
물었더니 350엔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5엔짜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주인은 이미 눈치를 살폈는지 두 잔이면 700엔이라고 우리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커피를 따라주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 도래인 역사에 대해 많이 아는 듯 꽤나 떠들어댔다. 일본어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맞장구를 치며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주인은 40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커피하우스 주인치고는 꽤나 유식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주인이 직접 커피를 따라주며 손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어주는 분위기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손님이 한국사람들이면 한국관계
이슈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고, 다른
손님에게는 그 손님에 맞는 또 다른 나름대로의 대화를 이끌어 갈수 있는 것일까? 이것도 일종의 상술일까?
잠시
동안이기는 했지만 한국과 관련된 일본 고대사의 한 토막을 토론하면서 우리는 갑자기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는 여유마저 생겼다. 우리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애썼고 커피하우스를 나올 때는 주인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우리들의 마음은 왠지 좀 씁쓸했다. Г그나 저나 그 놈의 コピ 5엔은 도대체 무에 란 말이야?』 이 의문은 조금 후에 풀렸다. 소위 ‘コピ’는 copy였던 것이다. coffee를 뜻하는 ‘コヒ’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커피하우스는 책을 빌려주는 도서 임대업에, 서류복사도
해주고 있었는데, 서류 한 장을 카피 하는데 5엔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아닌 게 아니라 혹시 5엔짜리 커피가 다 있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경제적인 여행, 외화절약, 그런
것들이 우리의 신조이기도 했거니와 사실 우리는 일본의 물가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그리고 때로는 어떤
품목은 특별히 싼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너털웃음 한번 크게 웃고 모두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첫댓글 직접 경험해봐야만 아는 것들이 있네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