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8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스가랴서 대단원 》
슥 14:20~21
<성경 읽기는 그 자체로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책,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경을 가졌다는 것은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더욱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가장 큰 복입니다.
성경을 읽고 신앙이 자라가는 여정이 기독교인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목사가 되기 전에도 성경읽기가 제일 큰 복이라고 여겼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된 이후에 시리즈 설교를 주로 해 왔습니다.
성경 한 권을 선택하여 1장 1절부터 야금야금 쪼개어 설교하는 방식입니다.
헤아려 보니 지난 15년 동안 20여 권의 책을 시리즈로 설교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해 주신 큰 은혜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텍스트로 스가랴서를 정하고 설교를 시작한 때는 2022년입니다.
작년 11월 16일 수요일에 스가랴 1장 1절을 본문으로 설교했고 오늘 47회째입니다.
오늘로서 스가랴서 전체 14장, 194절에 대한 설교를 마치게 됩니다.
그래서 스가랴 1장1절부터 다시 한번 읽어볼까 하여 읽기시작했습니다.
스가랴 시리즈 설교를 했으니 이제는 스가랴서가 술술 읽혀질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교하기 이전처럼 기도해야 했고, 차분해야 했고, 정독해야 했습니다.
“왜 이렇지?” 이쯤 되면 스가랴서가 삼국지 읽듯이 술술 읽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세상 책처럼 읽혀지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은 은혜를 주는 책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은 그래서 좋은 책입니다. 읽을 때마다 기도하게 하는 책, 아니, 읽기 전에 기도하는 책!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기도입니다.
“성경 읽기는 그 자체로서 기도입니다!”
기도하다가 잘 안 되면 성경을 펼치십시오!
성경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 시간! 기도 시간입니다. 들고만 있어도 기도입니다.
☞ 그럼에도 오늘은 스가랴서 대단원, 책걸이를 하는 시간입니다.
<스가랴의 8가지 환상 되새겨보기>
스가랴서는 8가지 환상이 첫 부분에 나옵니다.
1장부터 6장까지 차례대로 스가랴 선지자가 본 8가지의 환상이 전개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8가지 환상>
하나님은 “말씀으로” 스가랴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슥 1:1)
대답하는 스가랴에게 하나님은 “환상으로” 계시합니다.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말씀” 그리고 “환상” 두 가지로 계시합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8가지의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첫 번째 환상은 ‘먹줄 환상’입니다.
두 번째 환상은 ‘네 뿔 환상’입니다.
세 번째 환상은 ‘불 성곽 환상’입니다.
네 번째 환상은 ‘타·남·토 환상’입니다. 여기까지 ‘먹·네·불·타’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은 ‘메노라 환상’입니다.
여섯 번째 환상은 ‘두루마리 환상’입니다.
일곱 번째 환상은 ‘에바 환상’입니다.
여덟 번째 환상은 ‘네 병거 환상’입니다. ‘메·두·에·네’입니다.
모두 하면 ‘먹·네·불·타 ~ 메·두·에·네’
이 여덟 글자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성도라면, 꽤 성숙한 성도입니다. 할렐루야~
☞ 여덟 차례 환상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천상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천사가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환상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성전을 짓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신약시대에도 ‘성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스가랴 6장에 이르기까지 8가지의 환상을 보여주신 후에 성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슥 6:12)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슥 6:12에서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을 예고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입니다.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리고 스가랴 7장부터는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14장까지 이어집니다.
7장부터 14장까지는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그 분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한 선포입니다.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하시는 일을 스가랴서는 3가지로 선포합니다.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시대의 철칙이었던 것 2가지를 무너뜨리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새로 세우십니다.
첫째,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둘째, 성전과 만물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셋째, 선과 악의 경계선으로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첫째,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과 이방” 이 경계가 매우 분명합니다.
아무도 이 경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있습니다. 이방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방의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이스라엘에 편입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편입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 사상이 구약 전반에 흐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그동안 “남은 자”는 이스라엘에만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철칙이 무너집니다.
누가 이렇게 합니까?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하리라고 선포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하고 나서 대략 550년이 흘렀습니다.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예수님이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성전과 만물 사이의 경계를 무느다>
첫째,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둘째, 성전과 만물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20절)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지난 주에 설교했습니다. 《 말방울과 여호와께 성결 》
스가랴 선지자 당시, 말은 전쟁무기로서 오늘날로 치면 핵무기급입니다.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핵무기에도 ‘메이딘 유엣스에이’ ‘메이딘 차이나’가 아니라,
“여호와께 성결”이 새겨집니다. 할렐루야~
구약에서는 성전과 세상의 속된 곳의 경계가 분명했습니다.
“성과 속”이 뚜렷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성과 속, 경계가 무너진다.
핵 무기급인 말, 그 말의 목에 걸린 방울에 “여호와께 성결”이란 글자가 새겨집니다.
메시아가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물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따로 있고, 세상의 속된 만물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
건물로서 성전, 땅으로서 성지,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스러움 자체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이후 성전은 성도의 몸으로 바뀝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건물이나 땅으로 성전을 삼는 시대에서 성도가 성전이 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이방, 성과 속, 두 가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하나의 경계를 설정하십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경계입니다.
☞ 선과 악의 경계로서 구원과 심판을 확정짓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선과 악 경계로서 구원과 심판>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백성이라야 구원받았습니다.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스러운 땅, 성스러운 건물 즉, 성전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스러운 땅, 성스러운 건물 즉, 성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자기백성들과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뀝니다.
메시아가 와서 바꾸어놓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구원은 예루살렘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다.
“악하면 심판, 선하면 구원을 받는다.”
여기서 예수님은 선포합니다.
선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구세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악이란?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를 부인하고 세상풍조에 따라가는 것이다!
“스가랴서의 대단원”입니다.
첫째,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둘째, 성전과 만물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셋째, 선과 악의 경계선으로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스가랴서의 선포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이렇게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미와 아직”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메시아는 오셨지만, 아직 재림은 안 왔습니다.” 이것이 “이미와 아직”입니다.
이러한 시대 사도 바울의 로마서 한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롬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로마서 11장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바울 사도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스가랴 선지자의 선포에 거스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시대의 특수성에 기인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또 이 구절은,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자기 민족, 자기 나라,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
그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스가랴서는 매우 놀랍고 위대한 책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 대략 550여년 전에 활동했던 스가랴 선지자의 선포는 정확했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불러 8가지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8가지 환상은 ‘천상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천사’에 의하여 스가랴에게 주어졌습니다.
환상의 주요 메시지는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과,
허물어진 성전을 짓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14절까지는 환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스가랴로 하여금 선포케 합니다.
주된 요지는 오실 메시아가 새로운 성전을 지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는 다음의 세 가지 일을 하신다고 스가랴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첫째,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둘째, 성전과 만물 사이의 경계를 무느십니다.
셋째, 선과 악의 경계선으로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이 선포는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았습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리스도 예수는 스가랴의 선포대로 역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를 완성합니다.
어느 한 민족만을 구원하는 데서 나아가 세계만방을 구원하는 하나님으로 역사합니다.
성전을 어느 한 구역, 어느 한 건물로 국한하지 않고, 보편적 성전을 구현하십니다.
믿고 구원받은 이들의 심령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니 보편적 성전입니다.
스가랴의 선포대로 구원은 선과 악의 경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선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성자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믿는 믿음이 선입니다.
악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태입니다.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재림은 아직 오지 않은 “이미와 아직 사이”라는 시대적 특성!
이미와 아직 사이의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