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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결산(마 25:14-30)
오늘은 2023년도의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올해도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이 다가올 때 좌절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을 굳게 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로 선용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이 땅에서 출세하고 번영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다. 만일 사람들에게서 잘 살았다는 인정을 받더라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면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성공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올해를 마감할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결산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이 필요합니다. 결산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새해를 맞이할 때 보다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본문으로 삼아 마지막 결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15절) 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놓고 결산합니다. 열심히 일한 종들은 두 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둔 채 아무 일도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두 배로 남긴 종들은 칭찬과 상을 받았지만 그대로 땅에 묻어둔 종은 책망과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속에서 주시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찾아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내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5절에서는 주인이 종들에게 재산을 주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내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내 것인줄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빈 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커다란 시험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신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이것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다 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죄악의 뿌리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쉽게 감정에 자기 자신을 맡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모든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달란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 정신입니다. 이러한 청지기 정신을 바로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 정신을 가지면 욕심낼 것도 없습니다. 짜증낼 것도 없습니다.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자기에게 다가올 때 생명도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부르시면 40대에도 갈 수도 있고 30대에도 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또 역경을 통해서 비로소 아, 내 사업, 내 자리가 내 것이 아니구나 깨닫게 됩니다. 돈이 내 손을 떠날 때에야 비로소 내 돈이 아닌 것을 고백합니다. 이를 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야 확실히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늦습니다. (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24-2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벧전 1:24-25)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인생은 한 포기의 풀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공, 부유함, 명예, 성취감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주 만물은 피조물인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피조물은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좌절과 번민을 겪는 이유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만 인정하면 이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 젊음, 환경 부모, 나라, 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통과 실패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이웃의 탓으로 돌리며 원통해 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주인과 종,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잘 모르는 오만불손한 태도입니다. 아직도 분노하십니까? 아직도 원망하십니까? 아직도 불평하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진노를 받으려고 그렇게 교만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불만을 갖고 원통해 하며 시비할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 건강, 환경, 지능,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갖게 되는 가족이나 소유나 집이나 우리의 지위나 명예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종은 세 가지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둘째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셋째는 영광권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정신을 갖는 것이 소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위탁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당신의 소유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내 집이 아닌데도 내 집처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감사요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인이신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길 때 재능대로 맡겼습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재능대로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영어성경에 보니 according to his ability(그의 능력에 따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에 해당하는 돈을,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의 돈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의 돈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매우 불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이 주는가? 왜 어떤 사람은 잘 살고 나는 못 사는가? 왜 저 사람은 키가 크고 나는 작은가? 왜 저 사람은 나면서부터 잘 생겼고 나는 못생겼는가? 왜 저 사람은 가문이 좋고 나는 사생아로 태어났는가?" 라고 의문을 품으며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든 것이 다 공장에서 찍어 낸 공산품처럼 다 똑같다면 작품이 아닙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다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세계 80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지문이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사람이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은 참으로 차별이 아닙니다. 구별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기때문에 다 다른 것입니다. 피아노 건반이 다르면 다른 소리를 내듯 다 다르지만 하나의 화음을 소리를 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성가대의 찬양이 화음을 맞추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는 이 지상에 살 때 서로 다르게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백인, 황인, 흑인,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역과 기후와 상황에 따라 인종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 똑같이 만들어 놓으셔서 내가 너하고 똑같다면 얼마나 고민이 많겠습니까? 갈색눈, 까만눈 파란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미를 만드셨고 균형과 조화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섭리였던 것입니다. 주인은 각각의 종에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균형과 조화를 시기심과 이기심과 미움으로 바꾼 것이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마귀가 들어와서 비교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갖게 만들고 우월감을 갖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한 것과 질투심과 경쟁으로 바꾸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얼굴이 밉다 예쁘다, 키가 크다 작다, 뚱뚱하다 날씬하다, 똑똑하다 멍청하다는 등의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 섞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조화이며 축복입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키가 크면 큰 대로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장미는 장미대로 좋고, 국화는 국화대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장미꽃이라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저 깊은 산 속에 이름 모를 조그만 꽃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혼자 자랑스럽게 태양을 향해 아주 자신만만하게 피어 있습니다. 꼭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느 부속품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감사하고 감격하고 충만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잊지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는 많으나 적으나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많다고 교만한 필요가 없습니다. 많으면 그만큼 책임이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맡았든 그 맡겨진 달란트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 결국 맡은 자가 구할 것은 더 많은 물질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충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청지기 정신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것은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진 것을 가지고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적게 주셨든지 많이 주셨든지 다 맡기신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쓰라고 맡겨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16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그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를 몰랐습니다. 주인이 와서 달라면 땅에 묻었다가 캐내어 주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목적을 몰랐습니다. 아니 주인이 어떤 분인가를 몰랐습니다.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주인은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냉정하고 포악하고 완고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나의 창조자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결국 땅에 묻고 캐내어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26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를 감사하지 않고 시시하게 여기고 파묻어 버리는 사람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한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땅에 파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까?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 내가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가정과 교회공동체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세 가지로 믿고 있습니다. 1)파수꾼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자고 있습니까? 깨어 있어야 나도 살고 내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사는 것입니다. 2)추수꾼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가장 귀중한 사명입니다. 주님이 이땅에 오시는 목적은 바로 추수한 열매를 거두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합니다. 내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내 사랑하는 가족들, 내 이웃들, 하나님을 알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너무 소중한 사명입니다. 그래서 2024년도 표어가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교회입니다.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구원의 역사가 끝납니다. 노아홍수심판 때 노아가 문을 닫지못합니다. 왜요, 홍수가 나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오시면 이 모든 은혜의 역사가 문을 닫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니 열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6: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여러분,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지금이 지나면 우리가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현상을 보면 종말의 때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의 징조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그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어서 이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서 나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이 이 교회당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충성된 성도의 사명입니다. 3)마지막으로는 예수꾼입니다.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의 원형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가까이 하면 주님의 모습이 여러분의 삶속에 인격속에 베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외면하고 육신이 원하는대로 살면 마지막 심판 때 한 달란트 받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책망을 받습니다. 그려나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받는 사람처럼 충성을 다하면 칭찬과 함께 영원한 상급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이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했습니까?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도 똑같은 평가를 하셨습니다. 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기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평가하면서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상급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적은 일은 오늘 나에게 주신 현재의 달란트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가정이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 마지막 결산은 분명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많은 시험도 있습니다. 갈등도 있습니다. 역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생각하시고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충성하면 반드시 더 큰 일을 맡겨주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생명, 시간, 재산, 능력,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내 능력만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을 가지고 땅에 묻어 두면 안됩니다. 맡겨 주신 것을 활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직분을 받고 은사를 받았으면 그것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득을 남겨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명령입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 큰지 작은지, 위대한지 어떤지 따지지 마십시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고 주어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여 갑절을 남기는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