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즈음에 환웅이 성장하였는데. 비록 소년의 나이였지만 하나님을 거스르는 부도(不道)한 세상을 보며
근심을 하며 자신이 태자 자리에 있음을 기뻐하지아니하시었소.

그리고 진정한 대의(大義)는 하나님을 섬겨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에 있음을
깊이 생각하시며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꿈꾸시었소.
니므롯이 미처 제거하지못하고 도처에 피해있던 전 왕조의 충신들을 만나고 그는 그의 아버지가
실제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님을 알게되고 고민하였소.
역도에 의해 찬탈된 환국을 되찾을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아버지이니 아버지에게 충성할것인가.
그러나 환웅님께서는 효(孝)의 길을 택하셔서 니므롯을 거스르지않으시면서도
또 다른 길을 찾으시었소. 그것은 바로 월식의 땅을 떠나서 홍익인간할 수 있는 땅을 찾는 것이었소.
이에 환국의 백성들은 물론 소전의 모든 족속을 설득하고 또 흑소와 백소의 족속들에게도 자신의 뜻을
알렸소.
이에 각지에서 뜻있는 백성들과 호걸들과 의사(義士)들이 모여 환웅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진정으로 있는
아침의 땅을 찾기로하였소.

환웅께서는 양아버지인 니므롯과 작별하고 니므롯은 아들과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환국의 임금의 상징들인 천부인(天符印)을 주었소.
환웅께서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환국을 떠나 머나먼 여정에 오르셨소.

환웅과 그 분의 무리들은 복희의 배가 머물러있는 아라리 고개를 넘으시고 검은 바다(흑해黑海) 너머
백소의 다른 후손이 이미 가 다스리는 나라로 들어섰는데. 동방의 역사서에선 그 곳을 곡(嚳) 임금의 나라라고
적고 서방의 기록인 창세기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선 스키타이,고멜,마곡,곡,로스라고 적고 있는데.
그 곳이 모스크바 토볼스크 소치,고미 공화국 등이 있는 러시아 땅이오.
곡 임금의 환대를 받아 환웅님은 거기에 잠시 머무르셨으나 그 곳에 바빌론의 음풍(淫風)이 닥치매
그 곳 백성들과 환웅님의 백성들이 다투게되자 장자(長子)의 정신으로 그 땅을 양보하고
이 곳은 우리가 찾던 아침의 땅이 아니다하며 다시 길을 떠나셨소.
이에 환웅님을 따라온 백소의 무리들 중 많은 수가 같은 백소족인 곡의 자손들을 떠나기가 싫고
머나먼 길에 지쳐서 그 곳에 머무르려하니 환웅님은 이를 허락했소.
그러나 백소족 중 도당(陶唐)과 후직(后稷)의 무리는 그 곳에 머무르지않고 환웅님을 따라갔소.
그렇게하여 '우랄'이라 하는 산맥을 넘어 추운 시베리아 땅에 들어섰는데.
환웅님께서는 추위에 떠시는 백성들이 병에 걸릴까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추위를 피하게하기위해
하나님의 지혜로 쑥과 마늘을 백성들에게 먹게하시니 백성들이 기운을 차려 길을 재촉하였소.
그런데 쑥과 마늘을 먹으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나그네같은 여정에 답답하고 힘들어 지친
또 다른 백소의 무리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호랑이 부족이라고 단군고기(檀君古記)에선 말하오.
또 곰 부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소전의 셋째 아들인 하백(河伯)의 후예였소.
이 두 부족에 환웅님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호랑이 부족의 여자는 부족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포기하고 떠나니 환웅님이 이별함을 슬퍼하였소.

이것이 후에 와전되어 곰과 호랑이 부족이 마치 곰과 호랑이인 것처럼 여겨지니 안타까운 일이오.
환웅님을 이별의 아픔을 억누르시며 곰 부족의 여인과 혼인하고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시니 드디어 환웅님의 백성들이 북해(北海)에 이르매 이 북해를 중원의 산해경(山海經)에선
대택(大澤)이라 하오.
이 북해는 바로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이니 호수가 커서 푸름이 사방을 뒤덮으니 그 경치가 아름답소.

백성들의 넋나간 얼굴을 본 환웅님은 말씀하시되 "이 곳은 아니라. 이 곳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다"
하며 계속 가시니 ..,
드디어 온갖 풍파와 고난을 이기시고 만주의 하얼빈에 도착하셨소.

환웅께서는 비로소 멈추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곳이 실로 우리가 찾던 홍익인간할 땅이라 하며
아침이 뜨는 땅이라는 뜻의 '아사달'이라고 그 땅의 이름을 지으니 이렇게 하여
장장 9만리의 대여정이 끝나게되오.
환웅님께서는 새 땅을 찾으신 것에서 멈추지않으시고
아라리 고개와 같이 하나님을 제사한 성산(聖山)을 찾으러 풍백,우사,운사만 대동하고 다시 길을 떠나시니
환웅님께서는 아주 높고 흰 눈으로 뒤덮인.., 마치 아라리 고개와 같은 큰 산을 찾으시매
그 큰 산의 정상으로 오르시니 하늘과 같은 연못이 그 산의 움푹파여진 정상에 있으며 이 곳을 하나님께
제사할 산으로 정하니 이 곳이 바로 백두산(白頭山)이오.

백성들이 환웅님을 나라의 임금으로 추대하려고하고 풍백 우사 운사가 청하니 환웅께서는 하늘의 뜻을
받아 백두산의 큰 박달나무 밑에서 임금에 오르시매 나라 이름을 신시(神市)라고 선포하시니 이는
하나님의 마을이라는 뜻이오.

이렇게하여 동방에 평화롭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으나 러시아와 시베리아에서 겪은 이별의 슬픔이
다시 벌어지게될줄은 아무도 몰랐소.
환웅님을 따라 먼 길을 같이 온 백소와 흑소족의 두령인 도당(陶唐)은 환웅의 의동생으로
환웅님 밑에 있기를 좋아했으며 신시의 천하에 같이 살기를 바랬으나 슬프게도
하나님이 먼 서방에서 바벨탑을 쌓는 니므롯의 나라를 심판하사 바벨탑이 진노로 무너지니
언어가 갈라져서 모든 민족이 서로간에 의사를 소통할 수 없게 되었소.


도당이 슬퍼하며 어쩔 수 없이 환웅님과 작별하고 백소와 흑소족을 대동하고 아사달을 떠나서
다른 땅을 찾으러가니 환웅님이 걱정하며 그들을 돕기위해 소전족들에서 일부의 무리를 내어서
소호(少昊)를 두령으로 하여 같이보내니 도당의 무리와 소호의 무리가 아사달의 서쪽으로 가서
요서(遼西)의 홍산(紅山)에 정착하니 이것이 바로 홍산 문화(紅山 文化)이오.
지금도 홍산의 적석총(積石塚)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외에 다른 유적,유물들도 많이 나왔는데.
도당의 무리인 중원 사람들과 소호의 동이 사람들의 유물이 같이 나와서 이들이 같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소. 지금의 중국 역사 학계도 홍산이 자신들의 원류임을 인정하고있소.

마침 소전족의 한 갈래인 예맥인들이 월식의 땅을 떠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하여
요서로 오게되자 도당의 무리는 그 땅을 형님 가문에게 양보하고 중원으로 들어가니 이 것은 환웅의 예(禮)를
본받음이었소. 소호의 무리는 그들을 도우려고 조금만 홍산에 남게 하고 도당과 함께 길을 떠나니
그들이 중원에 당도하자 도당은 소호에게 중원의 동쪽을 양보하고
스스로 거친 중원의 서쪽의 산서(山西)의 화산(華山)에 정착하여 석굴을 파고 집으로 삼고 거주하니
이것이 서토인들의 기원이 되오.

소호의 무리는 산동과 하남 양자강 이남에 거주하니 이들이 중국 기록에서 동이족이라고 불리게되오.
소호의 무덤이 산동에 아직도 있는데. 그 무덤이 마치 수메르의 지구라트와 비슷한 피라미드 형식이오.
이 동이 사람들이 후에 은(殷)나라를 세웠고 동이 사람들의 후손으로는 공자와 제갈공명 등이 있소.

도당은 그의 사는 평생에 하나님을 섬기며 동이족에게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의 예법과 가르침을
서토인들에게 받게하니 그를 중원의 사서에서 요(堯) 임금이라 부르오.
도당은 원래 '드단'이란 말을 한자로 쓴 것으로서 서방의 기록인 창세기 10장에 그 이름이 등장하오.

(중국인의 시조 도당(陶唐) )
한편 환웅께서는 멀고 먼 여정으로 인해 병을 얻으셔서 그 수명이 얼마 남지않으시니 웅녀(熊女)
에게서 낳은 아들인 왕검(王儉)에게 아사달의 임금 자리를 양위하시고 붕어하시니
모든 백성들이 통곡하였고 중원의 사람들도 이를 슬퍼하였소.
왕검께서 제위에 오르시니 왕검께선 아버지 웅(雄)을 홍제(洪帝)라 하고 할아버지 헌원(軒轅)을
홍제(鴻帝)라 추존했소.
왕검의 때에 비로소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직함을 단군(壇君)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는데.
단군(壇君) 이는 '제사터의 임금'이라는 것으로서 제사장들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게되셨소.
이 때 단군이 조선 땅 전역에 돌 제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제사토록 명령하시니
이 돌 제단의 형식을 보면 돌 두 개를 세로로 세우고 그 위에 돌 한 개를 가로로 얹는 것으로 위의 돌 한 개는
하늘 즉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이며 밑의 돌 두 개는 서방과 동방을 뜻하는 것으로
서방과 동방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만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께 서로 같이 제사드리는 날이
올 것을 기원하는 환웅과 단군의 뜻이 담겨있소..,
때는 기원전 2333년.., 이로써 2100년에 이르는 조선의 기틀이 세워지게되고 하나님의 자손인
천손(天孫) 한민족(韓民族)의 역사가 시작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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