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만 년 동안 지구상에는 약 1080억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데 거의 절반인 약 520억 명이 이것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미국 콜로라도 메사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티모시 와인가드 박사에 의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이 살인자는 바로 ‘모기’다.
그는 최근에 펴낸 저서 ‘모기 ; 가장 치명적인 포식자의 역사’에서 지난 수천 년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모기라고 주장했다. 모기는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치쿤구니아열병, 지카바이러스, 일본뇌염, 웨스트나일열병 등 여러 질병으로 지금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15년에 말라리아만으로 43만 8000명이 사망했다. 2000년에 설립된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이 후진국에 약품 및 살충제 등을 지원해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률은 감소하고 있지만, 지카바이러스나 웨스트나일열병의 위험성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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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브라운대학의 로버트 허트 박사팀은 그래핀이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 Hurt Lab(Brown University)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모기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기간이 그만큼 더 길어지므로 질병의 확산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모기에 의한 질병이 10% 증가했다.
지금도 인류는 모기를 없애기 위해 유전자 조작 등의 첨단 기술을 동원해가며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때 DDT가 모기 박멸에 효과가 있었지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 사용이 금지됐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암컷 모기가 인간의 피를 빨지 못하게 입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 변형된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돼 약 10세대 후에는 모두 피를 빨지 못하는 모기가 탄생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미래의 신소재로 주목받는 그래핀
하지만 이런 유전자 조작 기술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다. 모기도 나름대로 생태계에서 선순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벌이나 나비처럼 꽃가루를 옮겨주기도 하며, 툰드라 지역의 철새나 물고기 등의 주요 먹이가 되는 것도 바로 모기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것이다. 모기는 큰 턱과 작은 턱을 이용해 피부를 톱질한 다음 윗입술로 혈관을 정확히 찾아 찔러 피를 빨아들인다. 이 같은 모기의 날카로운 톱날과 빨대를 회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밝은 색깔의 옷이나 맥주를 피하는 것이 좋다. 모기는 그 같은 요인들을 선호한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운동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체온도 높아져 모기를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라리아모기의 경우 사람의 발 냄새에 이끌리므로 발을 잘 닦아 냄새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 브라운대학의 로버트 허트 박사팀이 모기에게 물리지 않는,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비결은 바로 미래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는 그래핀이다. 그래핀은 벌집 모양의 육각형 그물처럼 배열된 탄소 원자의 단일층이다.
두께는 0.2나노미터(nm)에 불과하지만 물리적, 화학적 안정성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 전기는 구리보다 100배 이상 잘 통하며, 전자 이동성도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른 데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은 맨살, 다른 그룹에게는 얇고 느슨하게 짜인 천, 나머지 한 그룹에게는 그래핀으로 피부를 덮게 한 다음 이집트 숲모기가 가득한 상자 안에 팔을 넣게 했다.
결과는 연구진의 예상대로였다. 맨살이거나 얇은 천을 두른 그룹은 5분 동안 모기에게 5~20회 물린 반면 그래핀을 두른 그룹은 한 번도 모기에게 물리지 않은 것. 그래핀이라는 기계적 장애물이 모기의 뾰족한 입을 막아낸 덕분이다.
모기를 혼동시키는 방법 찾아내야
그런데 연구진은 실험 장면이 찍힌 비디오를 계속 지켜보던 중 예상과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모기들은 그래핀을 덮은 그룹의 피부에는 덜 앉았으며, 착지한다 해도 그 시간이 더 짧았다. 모기들은 그래핀 그룹의 실험 참가자들을 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즉, 그래핀이 방패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그래핀이 인간 피부에서 발산되는 화학물질을 막아 모기가 피부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래핀 층에 물이나 사람의 땀이 들어갈 경우 더 이상 모기의 접근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이때도 그래핀은 여전히 기계적 장벽이 되지만, 일부 모기들은 그 장벽을 뚫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사실 그래핀은 아직까지 고가의 소재여서 일반인들의 모기 방지용 의복으로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연구진이 이 실험 결과에 주목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래핀이 모기를 혼동시키는 방법을 정확히 이해할 경우 비슷한 전술을 사용해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작은 분자조차도 투과시키지 않는 그래핀의 특성이 아마 모기가 피부에 사는 미생물에서 나오는 유기 화합물 등을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환경에 무해한 비화학적인 방법일뿐더러 인간의 건강에 대한 부작용이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