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담당(오비 레귤러팀장)
87.9 - 92.2
하이네켄 출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84년 5월 다시 부산발령을 받았다.
판매2과에서 제주, 기장, 양산을 1년 정도 담당하다가
업무과 과장대리로 발령을 받고 6개월 후 판매1과 과장으로 임명되었다.
87년 인사이동에서 마케팅 1팀으로 발령받았다.
서울에 올라와 보니 마케팅 1팀, 2팀, 와인팀이 있었다.
부장님 말씀이 1팀은 올림픽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치루는 것이 주 업무라고 했다.
맥주부문 스폰서쉽을 따기위해 너무 많은 돈을 지불했기에
본전을 뽑으라는 것이다.
올림픽 스폰서가 되면 올림픽 로고과 호돌이 마크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부문별로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경쟁사는 점유율이 자꾸 하락하는 추세이기에
스폰서쉽을 획득하려 할 것이 분명하기에
입찰에서 과도하게 돈을 지불한 것이다.
마케팅 1팀에서 근무할 때 두산그룹 오너형제 중 1명도
마케팅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업무를 시작하자 마자 엠블렘과 호돌이를 이용한 판촉물 개발,
올림픽 선수 기자촌과 올림픽훼밀리타운에
생맥주 업소를 개설하고 판매하여 홍보하는 일
광고에 어떻게 활용할까 직원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직원들이 모두 노련하고 유능했기에
일을 잘 하도록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도 일을 잘 수행했다.
드디어 88서울 올림픽이 9월 17일 열리고 성황리에 마쳤다(10월 2일).
선수들 성적도 좋아서 (금메달 12개, 4위) 축제 분위기인데다
경제사정도 좋아 맥주도 많이 판매되고 홍보도 잘 되었다.
시장점유율도 고공상승하여 65% 정도 되었다.
회사에서도 투자한 금액이상으로 성과를 보았다고 좋아했다.
이어서 장애인 올림픽(10월 15 ~ 24일)도 성황리에 마쳤다.
올림픽을 끝내고나자 직원들이 타 부서로 가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느라 너무 지쳤다면서
본래 고향인 지점과 다른 부서로 가겠다고 했다.
당시 경쟁사에서는 일본에서 히트한 수퍼드라이 맥주로
진검승부를 보겠다고 드라이 맥주를 개발하고 있었다.
중요한 전쟁을 앞두고 자신들의 안위? 를 위해
이동을 원하는 직원들이 야속해서
다혈질인 나는 가고 싶은 사람은 가라고 하면서
부장있는 자리에서 화를 냈다.
89년 2월 올림픽을 관장했던 직원들을 보내고
새로운 직원들을 받아서 드라이 전쟁을 치렀다.
정말 피말리는 전쟁이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변비가 생겨 일주일씩 변을 보지못하고 머리는 띵하고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눈알이 튀어나왔다 들어가곤 했다.
아래의 글은 그 당시 새로이 합류한 직원의 이야기다.
추억의 커터칼
회사를 퇴직하고 여주에서 2막 인생을 살고있던 2013년 어느 날,
회사직원이었던 류**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옛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제가 생각이 나서 했다는 것이다.
전화번호를 몰랐는데 함께 있던 동료중에 내 번호를 알고있어
전화를 했다며 아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자들은 가끔 술좌석에서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전화기를 돌려가면서 안부를 전하고 옛일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전원생활하는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기에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되는데 보통은 9~10시다.
그들은 벌써 잠을 자느냐고 하지만 도시와는 다르게
해만지면 일찍 잠자리에 들기에 나는 꿈나라에 있는 시간인 것이다.
단잠을 깬 전화지만 즐겁게 통화하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저의(류**) 개인적인 회상 이야기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하지만 저에게는 나름
과거의 직장 초년병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커터칼 뒤에 붙여져 있는 "마아케팅부 안**" 라는 글귀
이 커터칼은 89년도 이후 얼마전 2013년 4월16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으므로 무려 24년만이네요
제가 89년 두산그룹 OB맥주 마아케팅부에 입사후
당시 부서에서 사용했던 커터칼인데
우연히 입수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안** 이라는 이름, 당시 우리부서 신입 여직원이였죠.
아마 지금은 아이 둘셋 낳은 어머니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만나지만 나의 사수였던 당시 우**씨,
상사셨던 지학남 과장님,
그리고 저희 마아케팅부 수장이셨던 안** 이사님등
많은 분들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 납니다.
이 커터칼의 입수는 실로 우연이였습니다.
지난 4월16일 아버님을 모시고 할머님 산소 손질을 위해
모래주머니 4포를 차에 싣고 망우리에 갔었죠.
도착해서 모래주머니를 개봉하기 위해 커터칼이 필요 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아버님 기사분께 커터칼 가지고 있냐 물어보니
그 분께서 사진의 그 커터칼을 저에게 주시데요.
저는 그 칼로 모래주머니를 개봉하고 1시간에 걸쳐
할머니산소 주변에 모래를 뿌린후
나중에 아저씨게 돌려 주려는 순간 커터칼 뒤면에
"마이케팅부 안**"이라는 글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아저씨에게 어떻게 이 커터칼을 입수했냐고 물어보니
아저씨께서는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그냥 차에 있던 커터칼을 저에게 주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끔 우연이란 말을 실감해 보고 싶었으나
실제로 나에게 생기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 커터칼은 여러번 돌고 돌았겠죠, 이사람 저사람,
그 동안 파손 되지 않고 저에게 온 시간이 무려 24년.
인생도 이러지 않을까요? 인생은 돌고 돈다는데..
현재의 삶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시 다가 올런지....
우리 모두 착하게 삽시다 !!!!
위의 이야기를 듣고 당시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88올림픽 공식맥주 OB마케팅을 나름 성공적으로 끝내고
올림픽 마케팅으로 고생한 직원들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고
새로 들어온 류** 대리를 비롯한 당시 팀원들...
잠시 쉴틈도 없이 신제품 드라이맥주 전쟁에 돌입한 당시.
정말 마케팅은 한시도 쉴 수 없는 전쟁입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위해~~
이제 그러한 시절을 거쳐 전원생활을 하는 요즈음
가끔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라는 시를 낭송합니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
마치 내 모습인양~~
녹슨 커터칼이 오래전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네요.
첫댓글
게시물 마다
보물입니다
한권의 책으로 발간 하셔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