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귀신의 솜씨로 빚은 칠보산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6.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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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 귀신의 솜씨로 빚은 칠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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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3. 01:5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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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귀신의 솜씨로 빚은 칠보산
『택리지』에는 백두산에서 비롯하는 백두대간이 지리산까지 뻗어내려오다 만난 산, 즉 금강산ㆍ설악산ㆍ오대산ㆍ태백산ㆍ소백산ㆍ속리산ㆍ덕유산ㆍ지리산을 일컬어 “지금까지 돌아본 여덟 개의 산이 우리나라 중심에 자리한 산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중환은 이어서 “만약에 이 산들을 떠나서 명산을 말한다면 함경도 일대는 산이 모두 크기만 하고 계곡이 황량하여서 명산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오직 명천에 있는 칠보산(七寶山)이 동해 가에 위치하여 골짜기에 들어가면 돌의 형세가 깎아지른 듯하며, 그 기묘한 형상은 거의 귀신의 솜씨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칠보산은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에 위치한다. 해발 894미터인 이 산은 원래 일곱 개의 산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기 때문에 칠보산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섯 개의 산은 바다에 가라앉고 이 산만이 남았다는 전설이 내려 온다. 함경북도의 8경 중 하나로 알려져온 칠보산에는 고려 때 창건된 개심사(開心寺)1)가 있고, 개심사 동쪽에 있는 ‘제1강산’이라고 쓰인 바위에 서면 온 산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개심사에는 주대명의 탄생 설화가 전해내려온다.
400여 년 전쯤이었다. 칠보산의 개심사 주지가 아침을 먹으려는데 큰 거미가 밥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주지가 밥을 주어서 키웠더니, 자꾸 배가 불러왔다. 어느날 새벽이었다. 거미가 산통 끝에 아이를 낳고 사라졌는데, 그 남아 있는 거미줄을 따라가보니 백두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기는 ‘거미 주(蛛)’ 자에서 ‘충(虫)’ 자를 떼고 ‘주(朱)’로 성을 하고 이름을 대명이라고 지었는데, 그 뒤 그 자손이 금나라의 황제가 되고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명태에 얽힌 설화도 있는데,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보는 고기를 많이 잡아 명천(明川)의 ‘명(明)’ 자와 ‘태(太)’ 자를 합해서 명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칠보산은 ‘관북의 금강산’, ‘함북의 금강산’,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린 아름다운 산이다. 금ㆍ은ㆍ진주ㆍ산호 등 일곱 가지 보석이 묻혀 있다 해서 칠보산이라 부르는 이 산에서 그 누구도 보물을 캐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칠보산은 이름 그대로 칠보처럼 아름다운 산으로,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와 함께 나한봉ㆍ천불봉 등 산봉우리들의 이름에서도 불교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백두산 칠보산 © 이종원
1766년 8월 29일 칠보산을 유람한 박종이 지은 『칠보산유람기』에는 동행한 김 영감이 시를 지으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개 산수를 구경할 때 눈으로 좋아하는 자도 있고, 마음으로 좋아하는 자도 있으며, 정서로 느끼는 자도 있는데, 눈으로 좋아하는 것이 마음으로 즐기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 정서로 느끼는 것만 못합니다. 내 지금 나의 정서를 표현할 말마저 잊었거니 하물며 시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더니 김 영감이 “그대의 산 유람이야말로 비로소 참된 경지에 들어갔음을 알겠습니다” 하기에 “나는 산수를 알았거늘 김 영감은 또 나를 알았으니, 어찌 서로 즐겁지 않겠습니까?” 하며 나는 웃었다.
박종의 글을 보면 옛사람들은 산을 오르며 마음으로 보는 것을 즐겼고, 무엇보다 동행한 사람과의 합일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칠보산뿐 아니라 명산에는 사대부만이 아니라 관가의 유람객들도 많이 찾아왔으므로 관청에서는 그들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향청(鄕廳)을 지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손님접대란 만만찮은 일이었는지 박종이 금장사(金莊寺)에 있는 스님에게 들은 바로는 관행(官行)이 산에 들어오면 침해와 폭행이 빈발하여 승려들 중에는 곤장을 맞아 죽는 사람도 있어 이것 때문에 많은 승려들이 환속하기도 하고, 도망치기도 하여 오래지 않아 절은 폐사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길손은 모두 똑같은데 길손에도 급수가 있으니 도대체 함께 길을 가는 도반(道伴)을 어떤 방법으로 찾을 것인가? 『법구경(法句經)』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는 길벗이 되지 마라
칠보산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솟아 절경을 이루므로 북한은 1976년에 이 산 일대를 명승지 제17호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 산에서 기이한 것으로는 금강굴 아래에 있는 샘물이 으뜸이고, 이상한 것으로는 푸른 산중에 외로운 배같이 서 있는 선암과 빈 집의 만 권 서적 같은 책암(冊岩)을 으뜸으로 꼽는다. 칠보산에는 만사봉ㆍ종각봉ㆍ노적봉 등이 있는 오봉산과 맹수봉ㆍ조아봉ㆍ가람봉에 만월대ㆍ해망대ㆍ무희대ㆍ회상대ㆍ우산바위ㆍ토끼바위ㆍ기와집바위ㆍ강아지바위ㆍ배바위ㆍ절바위ㆍ피아노바위 등 기암이 널려 있고, 용소폭포ㆍ개심사 등도 자리한다.
내칠보는 산세의 특징과 등산로에 따라 만사봉ㆍ제1명산ㆍ상매봉으로 구분한다. 외칠보는 명천읍의 북쪽 동해 황진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내칠보에서 바다 쪽에 위치한 해칠보로 내려가는 16킬로미터 구간에 펼쳐진 명승지다. 외칠보에는 내칠보의 수려하고 당당한 모습에 비해 좀 더 웅장하면서도 기이한 봉우리들이 많다. 이곳엔 처녀바위ㆍ형제바위ㆍ노적봉 등 경승지와 옥류폭포 등 일곱 개의 폭포가 있으며, 황진리에는 황진온천이 있다. 외칠보는 심원탑 구역, 만물상 구역, 노적봉 구역으로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귀신의 솜씨로 빚은 칠보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