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여기 살았냐. 이 근처에 일가들이 모여 산다고. 여기서? 이 시멘트 바닥에서 말이냐. 그럼, 저기 보도블록 틈새에 납작 붙어 있는 애들도 너희 친척이겠구나. 깡마른 자갈밭에서 너의 동족을 본 일이 있단다. 그 애들은 물기도 없는 자갈을 헤치고 팔을 뻗치며 잘도 자라서 신통하다 여겼지.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을 좋아하는 무슨 특성이라도 가진 모양이네. 인류를 위해 하늘이 내려주신 사명을 다할 뿐이라고 말하다니. 네 진솔한 자세에 가슴이 찔리는구나. 너희들은 그저 길바닥이나 자갈밭, 빈터, 논두렁 밭두렁 마다치 않고 터를 잡고 살더라만.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을 텐데 참으로 용하다. 너는 왜 ‘땅빈대’라는 이름을 가졌냐. 고운 이름도 많건만 하필 빈대가 뭐냐 빈대가. 어느 얄궂은 식물학자가 지었나. 어느 민초가 그리 불렀나. 네 잎새가 납작 엎디어 있는 빈대 등짝을 닮았다고 그랬을까. ‘빈대’하면 초가집에 살던 옛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 여기던 흡혈 해충 아니겠냐. 오죽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이 생겨났겠어. 요즘 정치계에서는 독소를 암시하는 간접 화법으로 즐겨 이용하더라만. 어쨌거나 빈대는 혐오스럽고 좋지 않은 이미지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본 일이 있어. 잔디밭 속에서도 살고 있었거든. 코딱지만 한 꽃망울 하며 네 모양새가 썩 귀히 보이지 않다는 건 사실 아니냐. 땅 위에 비단 이불 덮어 놓은 것 같다 해서 비단풀이란 이름을 새로 얻긴 했다만서도 네가 사는 꼴하고는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조만간 내 그럴싸한 이름으로 개명해주고 싶어.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느끼겠지. 초고령사회인 지금은 건강하게 살려고 온갖 묘수를 찾으며 법석을 떠니까. 그중 최근에 네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된 사실을 아느냐. 명약으로서 말이다. 천덕꾸러기라 천대받던 땅빈대가 급부상하여 연구가들이나 약초 마니아들에게 관심거리가 되어 있는 줄 너는 모르겠지. 이제 비단풀이라고 불러주며 인기가 엄청 드높어져서 대우받는다는 소문에 눈을 밝힌단다. 어느 약초 연구가는 신묘한 약초를 찾아 온갖 고초를 겪어가며 아마존 정글에까지 가서 구해 왔단다. 그 약초를 연구하던 중 창밖의 고랑 옆에 난 풀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게 우여곡절 겪으며 구해왔던 그 신비의 약초 비단풀, 바로 너희들이었다는 게야. 등하불명이라. ‘땅빈대’. 너의 종족이 세계로 뻗어난 건강지킴이 일등공신임을 알리는 것 아니겠냐. 땡볕을 잘 견디는 걸 보아 기후가 더운 남미 쪽에서부터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네 말대로 사명감을 띠고서 말이다. 진즉에 알고 있던 바이지만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들풀에게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았으면 하는 진정한 마음에서란다. 뭐가 몸에 좋다 싶으면 씨를 말릴 정도로 혈안이 되어 야초들을 다 채취해 가버리니 말이야. 산야에 귀한 식물 지원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아무튼 세계 각지에 깔려 있는 야초들을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하지 않겠어. IT산업도 AI도 우주산업도 중요하지만 자연 속의 야초야말로 지구상의 동물과 인류 생존에 직결된 상황임을 재인식해야 한단 말이지. 너희들도 조금은 알아듣겠지.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수단을 식물로부터 의지하고 산다는 그 절실한 정신을 말이야. 너야말로 인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작지만 큰 존재, 생명 구제를 위한 사명을 띤 수호천사라 해도 손색이 없는 값진 식물이다. 황량한 들판에서 추위와 눈바람을 덮어쓰고 부동자세로 겨울을 나는 버펄로를 보며 가슴 저밀 때가 있었단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고원지대에서도 고행을 이겨내는 것은 곧 초록 세상이 펼쳐질 초원을 기다리는 꿈 때문이 아니겠어. 작은 풀 한 포기. 이제 소홀히 여기지 않기로 약속하마. 비단풀도 좋지만 지금부터 네 이름을 ‘월드엔젤’이라 부르면 어떻겠니. 좀 과하냐. 괜찮지 않겠어.
땅빈대(Euphoria humfusa) ○ 분 포 지: 한국 일본 중남미 중앙아시아 전 세계 각지 ○ 약명별명: 땅빈대 비단풀 지금초 오공초 선도초 혈견수 내금초 점박이풀 땅쟁이풀 녹말풀 ○ 효 능: 각종 항암 항염 항균 심혈관질환 결석 해독 진정 두통 이뇨 지혈 혈류 개선 양혈 유즙 분비 면역력 증대 종창 치주염 외상치료 대상포진 사마귀 원기부족 고약 원료 ○ 식 용: 여린 순(나물 김치) 담금주 녹차 건조 가루 ○ 꽃 말: 기쁜 소식 일편단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