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시의 강물처럼 -심우기의 시창작
 
 
 
카페 게시글
내가 읽은 시 스크랩 ‘우리詩’ 2월호와 백서향
시강 추천 0 조회 21 12.06.26 18: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詩’ 2월호는 달의 끝자락에서야 도착했다. 한 두어 달 너무 춥다 했더니, 변고가 있었음을 안 보아도 알 것 같다. 우리詩 칼럼 - 조병기 이사장의 ‘시의 변화와 지속성’으로 시작하여, ‘이달의 신작시 24인 선’은 임보 정순영 김민형 유진택 이영준 이윤경 주수자 손옥자 민문자 안현심 최윤경 이설야 이미숙 박동남 도복희 이사랑 김채운 박승출 남대희 서동균 서영택 심우기 안은주 이언주의 시를 2편씩 실었다.

 

  이어 홍해리 선생을 집중 조명하는 특집 1부로 <대담> 명창정궤를 벗삼아(박수빈), 자선 대표작 ‘투망도’외 9편, <시론> 고운야학의 시를 위하여(홍해리), <시인론> 난정기(임보)가 실렸고, 3월호에 2부가 이어진다.

 

  특별 연재 ‘이 詩, 나는 이렇게 읽었다’는 신현락의 ‘풍경이 풍경 속으로’와 홍예영의 ‘겨울 기나긴 밤’, 신작 소시집(1)은 이병금의 신작시 ‘나프탈렌’외 4편과 (2) 한수재의 ‘몸에서 몸’으로 외 4편, 기획연재(10) ‘시로 쓰는 사계’는 ‘문경의 겨울과 꽃밭 터널’, 영미시 산책으로 백정국 교수의 ‘바다 앓이’(존 메이스)가 실렸다.

 

  여기서는 ‘이달의 신작시 24인 선’에서 8편을 골라, 잘 피어 향기 가득한 백서향과 같이 올리고, 다음에 홍해리 선생의 특집을 내보낼 예정이다.

 

 

♧ 황혼에는 - 정순영

 

이렇게 황혼에는 홀로 강가에 앉아

지그시 감은 눈으로

황금빛 너울거리는 강여울을 바라볼 일이다.

세월의 찬바람에 시린 손을 부비며

발그레한 볼의 손주딸을

흐뭇한 가슴으로 안을 일이다.

혹 시간의 눈치살이 한가해지면

기억으로나마 굽이굽이 느린 걸음으로

스쳐간 인연들을 그리워할 일이다.

 

 

♧ 몽롱시편 - 김민형

   - 지옥

 

  오늘 아침 밥상에는 공양주 보살이 겨울을 한 토막 썰어왔다. 얼음 아삭거리는 배추김치 한 포기. 안 먹으면 아가리를 벌려서라도 쑤셔 넣는 성품이라 먼저 젓가락이 갔다. 요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겨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해에게 빚을 많이 지어서 부지런히 갚아도 모자랄 판인데 이 겨울을 맛보고 있으니 착한 일을 제아무리 많이 한들 죽어 혹한 지옥을 면하기는 글러먹었다.

 

 

♧ 탁란 - 유진택

 

봄 한철이면 뻐꾸기에게 떠도는 풍문 무성해진다

골 깊은 산자락일수록 더하다

애간장 찢는 울음으로 그 풍문 잠재우려 하지 마라

비통한 울음에는 뭇 생명들을 속이는 위선이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제 배 아파 난 핏덩이를 남 둥지에 슬쩍 밀어놓고

왜 서럽게 우는지,

서러운 울음소리야

그믐달빛에 젖어 흐느끼는 소쩍새에 비기랴

 

가슴 치며 산자락 짖뜯는 통곡 속에

요사스런 웃음이 있다

그 웃음 산자락에 닿으면 살구꽃 서러워 피고

그 웃음 강기슭을 휩쓸면 복사꽃 놀라서 지는,

꽃처럼 고운 세상의 한 복판에도

뻐꾸기를 닮은 사람 하나 있다

 

내 이웃에 사는 봉순이 엄마다

채 백일도 되지 않는 자식을

남몰래 성당 앞에 내려놓고

뭇 사내와 눈 맞아 집을 뛰쳐나간 여자,

굴참나무 우듬지보다 더 아스라한

빌딩의 룸살롱에서

환한 대낮에도 사교춤을 추는 여자,

밤낮으로 신음 섞인 교성을 지르다가도

사람들 앞에서는 얼굴색 바꿔 애절히 운다

자식 잃어버렸다고 뻐꾹뻐꾹 숨 넘어갈듯 운다

 

 

♧ 미술시간 - 이윤경

 

반사된 물체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반사된 세상을 제대로 관찰해야 한다.

둥근 스테인리스 숟가락에 반사된 꽃병과 신발과 열쇠

깨진 유리창에 반사된 네 사람과 약속과 믿음

잘 그리다 보면 본체를 알 수 있다.

잘 관찰해 보면 본성을 알 수 있다.

일그러질 모양들을 추리할 수 있다면,

무너질 모습들을 예감할 수 있다면,

그리 놀랄 것도 없다, 아픔도 작아진다.

꼭, 무언가에 의해 부풀어질 모양이 있다는 걸,

꼭, 누군가에 의해 엉클어질 모양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난히 버틸 수 있다.

너도, 너를 아는 그 사람도,

그러면 쉽게 이해해 줄 수 있다.

 

 

♧ 감나무에게 배우다 - 손옥자

 

가끔

레벨이 안 되는 데도

과하게 욕심을 부린다

모자랄수록 더 욕심이 난다

 

저기,

허공에 턱-하니 걸려 있는 홍시

올라갈 때는 발 빠르게 올라갔겠지만

저기까지다

더 올라갈 수도

그렇다고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홍시는

스스로 묽어지는 법을 터득했나 보다

까마득한 허공에 몸을 걸치고

겉으로 물렁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속으로, 조용히, 홀로, 서서히 삭히는-

 

그래서 밝은 우주, 그 안으로

또 하나의 둥근 축을 세우는

진하게 붉은 오후 2시

 

 

♧ 사람의 성채 - 안현심

 

  기울고 차는 달의 주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여성일 수밖에 없었다.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모난 이성을 이리저리 들이대기도 하는 반쪽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등신불로 사십 년, 뜨거운 피를 태워버린 몸뚱이, 이제 더 이상의 윤회는 없다. 가벼운 몸과 정신만으로 존재하는, 여성과 남성을 한 몸에 품고 세상 풍경을 내려다보는 신선이다.

 

  비로소 완전해진

  사람의 성채.

 

 

♧ 아무도 몰랐다 - 최윤경

 

나도 몰랐다

너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세월이 벗어놓은 짐이

눈덩이처럼 무겁게

머리는 머리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처음과 끝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녹아서

흘러내려서

뒤뚱거리는 삶이 될 줄

세상은 몰랐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시간의 부스러기들

낙엽만도 못하다

 

 

♧ 독백 - 이설야

 

삶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무형의 마음에 따를 뿐

 

변하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흘러가는 세월 탓이니

시간에 구속되지도 말라

 

그 무엇에 집착하지 말라

그 어떤 욕심도 흘러가는 물처럼

놓아버려라

 

나고, 너고 하는 경계도 버려라

세상엔 원래 경계가 없었으니

살아생전 땅에 금을 더 많이 그으면 뭣하랴

 

마음이 우주요

우주가 한자락 마음이라

마음을 어디로 향하지도 마라

 

그냥 그렇게

허허, 웃고 마는 하회탈처럼

허허허 웃으며 살아야지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