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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아웃인의 대표VIP들
최사장이 진회장에게 한 말은 본심과 조금 다르다.
최사장이 카페 아웃인에 매일 출근하는 건 다른 커피샾이나 카페보다 마음 편하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안 마셔도 눈총안주고 마셔도 그만인 이곳엔 그리고 친구들이 있고 아름다운 쁘리쌰가 있다. 처음엔 쁘리쌰의 작살애교에 꽂혀 하루에 몇 번이고 들랑거렸지만 ‘쁘리쌰는 제비를 좋아하는 중’ 이란 사실을 눈치 챈 뒤엔 그냥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쁘리쌰가 제비를 소개했고 최사장은 제비에게 반했다. 어떻게 보면 연적일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또는 벨도 없는 사람 아니냐? 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속정이 가장 깊게 들면 모든 사고를 초월한다. 김장김치 익듯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건 애정이 아니고 우정이다. 애정은 항상 사기그릇 같지만 우정은 스텐그릇 같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사러오는 고객의 깐깐하고 쫀쫀한 언행을 고스란히 아다다지존백치으로 받아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 마땅한 친구도 없던 최사장에겐 제비는 별에서 온 인간이었다.
격의 없는 싹싹한 대화와 앞뒤 재지 않는 성격의 제비는 아무리 언짢은 일에도 항상 미소를 내세우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를 우선 이해하는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천방지축 같기도 한 제비의 유머는 최사장을 단번에 친구로 만들었다. 매사에 막힘없는 제비를 만난 것은 최사장에게 행운이었다. 최사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최사장이 제비와 단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쁘리쌰가 제비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눈치 챘다. 제비를 알고 난 후 쁘리쌰를 과녁으로 여겼던 자신의 무모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쁘리쌰의 목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최사장은 제비와 쁘리쌰의 연줄이 전생현생前生現生 짝꿍이라는 점에 의의가 없었다.
그 대신.
주제도 모르면서 차기대권주자가 되려는 사람처럼, 최사장은 쁘리쌰를 향했던 시위를 풀지 않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머잖아 자신의 과녁이 될 쁘리쌰의 주위 여자가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이 확신이란 게 사람 미치게 한다. 때가 오면 꼭 될 거 같거든. 자기 아니면 조준할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확신이다. 김치 국물 맛에 아직 배지도 않은 옆집 아이 백일 떡 기다리는 우리 집 양반처럼. 진짜 웃겨. 주제모르는 차기대선주자도 웃기지만 최사장도 그랬다. 기약도 없는 불확실성 속의 막연한 기대는 골프모임 올인을 창립할 때까지 계속됐다.
두드려라 열린다. 또는 기다려라 나타난다 가 아니라 최사장에게 요행이 찾아왔다. 그 요행으로 인해 최사장의 불확실성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채은숙이란 여자가 나타났거든. 허지만 아직 도장도 파지 않은 상태다.
또, 최사장은 제비가 광고업체오너란 점에 주목했다. 최사장의 주목은 정확했다. 제비와 친해지는 만큼 최저경비의 광고제작비로 매출을 올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진회장을 알게 된 것도 제비 때문이다.
신간미술서적이 수입되면 20년 단골인 제비에게 제일먼저 공급하던 진회장을 제비가 소개해준 것이 계기가 됐던 것이다. 진회장을 제비에게 소개해준 것은 쁘리쌰지만 진회장을 최사장에게 소개한 것은 제비다. 이 작은 사실을 미루어 보면 한세상 산다는 것은 얽히고설킨 것이 아니고 궤도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궤도위에서 서로 인연을 만들어가며 사는 것이다.
이렇게, 카페아웃인의 대표VIP가 된 제비와 최사장 그리고 진회장의 우정은 충무로에서 이미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안다. 이들의 우정은 가정용 칼이나 가위에는 절대 잘리지 않는 케블라합사다. 게다가 이 세 사람의 우정을 케블라보다 더 질기고 단단하게 결속해 준 또 하나의 매개체가 있다.
골프다.
진회장은 수입도서를 취급하다 골프에 손댔고, 제비는 박세리의 경이로운 해저드 티샷을 본 후 골프에 입문했으며, 최사장은 전자제품최우수판매대리점 수상자가 되어 받은 골프채 한 세트를 두고 고민하다 골프를 시작했다.
쁘리쌰의 경우는 달랐다.
쁘리쌰는 모태부터 골프를 했다. 뭐라고? 모태골프라니? 놀랄 거 없어. 쁘리쌰가 아직 조립중일 때부터 엄마가 쁘리쌰를 알집에서 빼내면 꼭 프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태교를 골프 채널에 고정했으니까 하는 말이야.
조립이 끝나고 태그tag를 붙이자마자 쁘리쌰는 어머니의 장난 아닌 뒷받침에 영문도 모르고 골프를 배웠던 것이다. 다시 말해 딸을 투어프로 만들려는 어머니의 지나친 과심이 빚은 참사였다. 허지만 쁘리쌰는 성장하면서 첫사랑에 눈 뜨고 상처받고, 어머니의 꿈을 이루려다 자신의 진로에 상처만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쁘리쌰는 모진 결단을 했다. 그 계기는 아버지가 만들어 줬다. 아버지의 사업실패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어머니의 채근에 못 이겨 골프채를 들고 골프연습장과 골프장을 누비거나 아니면 어머니와 대판 싸운 후 가출해서 행불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골프가 쁘리쌰의 인생 중 골든타임을 망치게 했지만 쁘리쌰는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한다. 아울러 어머니의 꿈을 이루어 주지 못했지만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다. 투어골프프로는 전세前世에서 신으로부터 상속받은 재능과 행운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쁘리쌰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것은 골프로 인해 제비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상대의 성격을 알려면 고스톱 세 번만 때려보면 안다지만 상대의 인간 됨됨이를 알려면 단 한 번의 골프라운드로 족하다.
첫댓글 골푸로 맺어지는 우정 이야기
최사장은 제비를 알게 되어 사랑이 싻트는 것일까??
잘보았슴니다.
골푸? 골 푸는 운동아닙니다...ㅋㅋㅋ
모메 좋고 당뇨에 좋은 보약입니다.
아직 젠틀맨님 골프 안하시나 보네요...골프 배우면 오디 따기도 편하실텐데...골프공으로 오디 맞혀 따는 기분 상상해보세요...미치게 재미 있습니다.....ㅋㅋㅋㅋ
오늘밤도 편하세요.
골푸 이야기로 엮어가는 소설이야지감 해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녀 가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