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직선화의 열망은 결국 컴퓨터의 출현과 눈부신 발전 그리고 로봇의 등장을 이끌어냈다. 보다 빠르게 보다 짧게 보다 강력하게를 열망하던 인간은 그 소원을 이뤄 로봇이라는 노예를 양산해 낸 것이다. 하지만 단지 단순 노동에 그칠줄 알았던 로봇의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더니 급기야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자부했던 영역에 까지 로봇이 활동무대를 장악해 버렸다. 최근 모 회사의 쳇@@@이 기존 구글의 유튜브 등의 세계를 부셔버리고 새로운 영역을 만들냈다고 난리다. 그 쳇봇이 만들어냈다는 논문이 인간의 논문을 제치고 최고의 수준을 보였다는 뉴스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시작이란다. 어떤 놀랄 아이템들과 프로그램이 등장할지 지금 개발 당사자외에는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놀랄 일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로봇이 그림을 그리고, 기사를 작성하고, 인간 바둑을 완전히 짓밟고, 병을 진단하고 수술하고, 범죄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등 인간만이 할 수있을 것이라 여겼던 영역까지 로봇이 점령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그런 획기적인 결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활동무대를 대거 잠식한다는 말이다. 언론사에 뭐하러 비싼 돈 들여 기자를 뽑겠는가. 로봇 한 대 근사한 것 사다놓으면 알아서 척척 기사화해준다. 자료 제공만 해주는 인력만 있으면 오케이다. 공정 보도를 놓고 저항하는 기자들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임금 인상해 달라 주장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회사측은 이래저래 대만족 아니겠는가. 적당히 세파에 호응하는 기사를 무한정 제공하면 된다. 판 검사도 마찬가지다. 뭐하러 그 비싼 돈주고 판검사를 양성하겠는가. 유능한 로봇 한 대면 오케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체포하는 인력만 있으면 된다. 진술서를 로봇에 주면 구형량을 정해줄 것이고 그것을 법원에 비치된 로봇에게 넘기면 판사 로봇이 알아서 형량을 결정하면 그만이다. 공정성 시비니 권력에 눈치를 본다느니 그런 잡음도 줄이고 유전무죄니 무전유죄니 하는 구시대적인 단어를 듣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정치 검사도, 정치 판사도 사라질 것이니 어쩌면 민주화에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또 어떤가. 병원에 로봇 몇 대만 있으면 오케이다. 환자가 오면 로봇이 알아서 진단하고 수술하고 처방한다. 그 비싼 의사 임금을 줄일 것이고 병원의 이런 저런 인력도 대거 줄어드니 병원장입장에서는 일석 백조 정도 될 것이 아닌가. 수천억 하는 그림도 로봇이 다 그려 줄 것이고 외로울 때 알아서 인간을 애무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니 정말로 편하고 좋은 세상이 될 듯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인간들이 갈수록 할 일이 없어진다. 그냥 놀고 먹으면 된다. 로봇의 발전에 따라 선진국 후진국이 결정될 것이니 선진국에서는 로봇개발 인력만...아니다. 로봇 개발도 로봇이 할테니까 인간은 그냥 놀면 된다.힘든데 아이는 왜 낳는가. 로봇이 다 알아서 해주는 상황인데 인간이 왜 귀찮은 일을 하겠는가. 운동은 뭐하러 하나. 로봇이 알아서 진단하고 살도 빼주고 인공 장기도 교환해주는 상황이니 그렇다. 하루종일 섹스만 하면 될 것이고, 하루종일 골프만 하면 될 것이고,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면 될 것이다. 로봇이 성의를 다해 제공해주는 음식을 맘껏 먹고 퍼질러 자면 그만이다. 정말 살판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매일 허구헌날 그것만 하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얼마나 질리겠는가. 그러니 갈수록 생각할 힘도 의지도 없어진다. 머리는 멍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능성도 잊어버린다. 그런 상황을 상정해 만들어진 영화가 한 편 생각난다.바로 이디오 크러시( idio cracy)이다. 2006년도 작품이다. 미국의 마이크 저지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디오(idio)는 바보라는 뜻이고 크러시(cracy)는 통치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바보가 통치한다라는 의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로봇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그런 세상이 되니 인간은 할 일이 없어진다. 아이를 낳는 것은 오로지 바보들만이 하는 일이다. 머리좋은 인간들이 왜 힘들여 애를 낳겠는가. 여자들은 몸 스타일 다 버리지, 남자들은 책임감속에 살아야 하지, 하여튼 머리좋은 부류는 아이가 없다. 하지만 정말 멍청하고 아무생각없는 부류는 그냥 본능대로 저질러 낳고 보는 사회가 된다.그러니 그 자식들의 머리가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 로봇이 하라는 대로 하는 동물로 변한다. 책을 뭐하러 읽는가. 로봇이 알아서 모는 것을 다 해주는 세상인데. 생각자체가 없어진다. 엄청나게 더운 날 멍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게 귀찮아진다. 로봇이 하라는데로 하면 편하고 좋다. 바보들가운데서 대통령도 선출되고 그냥 나라를 이끈다.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방치상태에서 아무렇게나 굴러간다. 지적할 언론도 지적할 잔소리꾼도 없다. 대통령은 국민과 그냥 놀면 된다. 영화에서는 먼 과거에 두 남녀가 특수목적으로 동면상태로 있다가 5백년후에 깨어난다. 그당시 아주 평범한 남녀였는데 저능아들의 사회에서 그둘은 그냥 천재중의 천재가 된다.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결국 그둘은 대통령이 되고 결혼해서 과거 자신들이 배우고 행한 아주 평범한 것을 마치 엄청난 정책인냥 내놓으면서 살아간다는 줄거리이다.
이 이디오 크러시 영화는 그냥 보면 참으로 웃기고 황당하다. 하지만 그 맥락을 들여다 보면 웃음이 사라진다. 정말 머지않은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한 2006년에 지금 상황 그리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2006년도이면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 미국은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이다. 2006년에 한국의 중요뉴스는 한미 FTA 협상과 격렬 반대 시위,북한 핵실험 강행, 피겨의 김연아 수영 박태환 돌풍, 부동산 광풍에 쏟아지는 부동산 대책 등이다. 그야말로 한참 된 듯한 역사속 뉴스들이다. 미국의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아프칸 등에서 전쟁하느라 그야말로 조지고 부수고 정신이 없던 시절이다. 그럴때 인간에게 닥쳐올 머지않은 미래를 리얼하게 풍자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2023년 1월 3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