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상일보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 이원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 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