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역사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한 학생이 질문합니다. 그러면 예수가 행한 것과 비슷한 것이냐고요. 선생님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 : 43 - 44) 그러니 예수님의 방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공적인 수업 시간에 성경이 인용되었고 특정 종교의 교주라 할 수 있는 예수가 언급되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학교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타협안이 제시됩니다.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서약을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신앙을 강요한 것도 아니고 포교를 한 것도 아닙니다. 질문하였기에 그 분의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해준 것뿐입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단호합니다. 학교 측 변호사도 선생님의 사과와 다짐을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선생님 측 국선 변호사가 그렇게 타협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래야 별일 없이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손해될 일도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냥 동의하고 사과하고 문서화하는 것뿐입니다.
징계를 하려는 학교 측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공적인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신앙을 주입했다는 것입니다.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해서 공적 자리에서는 결코 개인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법을 위반하였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류의 질문이 또 나온다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종교적인 색채의 설명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개인의 종교를 강요하는 발언으로 인정하여 벌칙을 적용해야 하는가? 그레이스는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법정으로 문제가 넘어갑니다. 이제 소송이 되었고 만약 패배하면 그레이스는 모든 경비까지 짊어지게 됩니다.
원고 측은 있지도 않은 신을 믿으라고 강요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과연 실존 인물인가, 하는 문제로 나아갑니다. 문제가 산만해지고 어찌 보면 수업시간에 벌어진 사건이 신의 존재 논쟁으로 빗겨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무신론자나 불신자들 또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나 유리한 논리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배심원들 속에 설령 그리스도인이 있다 할지라도 혹시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평결을 이끌지 모를 일입니다. 불리해지는 법정 심리에서 전환점을 찾습니다. 이것은 신의 존재 문제가 아니라 수업시간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여러 증인들이 출석하여 중언합니다. 원고 측에서는 증인들을 통하여 그레이스 선생이 개인적 신앙심을 학생에게 은근히 주입하고 있었다는 주변 사실을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질문하였던 학생 브룩은 자기 고민을 선생님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더구나 죽은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오빠가 남겨준 성경을 갖게 되었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운 오빠 생각에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과도 오빠에 대한 아픔과 더불어 신앙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상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 선생인 그레이스가 상담할 자격이 있는 선생인지도 문제가 됩니다. 이래저래 불리하게 심리가 펼쳐집니다.
법정 밖에서도 두 편으로 갈라져 시위를 합니다. 하나님은 없다, 죽었다, 라고 피켓을 들고 나온 사람들과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 살아계시다, 라고 피켓을 든 사람들로 나뉩니다. 누가 옳은가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려고 법정 싸움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존재여부가 옳고 그름의 문제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국선변호사 톰이 반전을 꾀합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되레 원고가 유리할 수 있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원고 측도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피고의 편을 들게 해주었지요. 이렇든 저렇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자기 신앙이 억압당하는 것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과연 실존 인물인가? 현재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록만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믿든 안 믿든, 또 알든 모르든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BC와 AD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바로 예수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그냥 만들어낸 가상인물이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사용하고 있으면서 말이지요. 믿지는 않아도 사실은 사실입니다. 믿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도 사실은 공적인 지식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때도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 : 15) 그레이스 선생님도 바로 이 질문 앞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우리로 신자와 불신자로 나누게 합니다. 분명한 것은 부인한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믿고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2’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즐감입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하루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