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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육발 미녀
(1)
실내는 진한 술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화로는 그다지 크지는 안지만 음
산하고 차가운 산 속의 움막을 온화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에는 충분했
다. 육소봉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군요. 게다가 제시간에 온 것 같습니다." 곽
휴도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왜 항상 내가 좋은 술을 마시려고 할 때에 자네가 나를 찾아오는지 이해
할 수가 없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빛나는 눈동자는 이 늙
은 노인이 아직 혈기왕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옷 더럽히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앉아서 술 한잔 받게나!" 육소봉은
자기의 붉은 외투를 바라보았고, 다시 하얗게 씻겨진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
다. 잠시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같이 부자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당신과 같은 옷을 입어야겠습니다."
곽휴가 물었다.
"뭐라고?"
육소봉이 대답했다.
"이런 옷은 당신 같은 부자 노인이나 입을 자격이 있지 나는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곽휴가 물었다.
"왜지?"
육소봉이 말했다.
"사람이 정말로 돈이 있게 되면, 어떤 옷을 입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곽휴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네는 영원히 돈을 모을 수 없을 것이네!" 육소봉이
물었다.
"왜 그런가요?"
곽휴가 대답했다.
"자네는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지, 너무 똑똑한 사람은 돈을 모을 수가 없
다네." 육소봉이 말했다.
"그러나 저번에 만났을 때는 나에게 조만간 돈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잖습
니까." 곽휴가 말했다.
"저번에는 자네가 이렇게 똑똑한지 몰랐기 때문이지." 육소봉이 말했다.
"그럼 당신은 언제 알게 되었습니까?"
곽휴가 말했다.
"조금 전에 알게 되었네."
육소봉은 미소를 지었다.
곽휴가 말했다.
"자네 말고는 이곳을 쉽게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네." 육소봉이 웃으며 말
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곽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 위의 '미시오'라는 글귀를 보고,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은 문을 밀
지 않았다네. 문을 열지 않으면 당연히 들어올 수 없는 것이지. '도시오'라
는 글귀를 보고 돌지 않으면 누구라도 여기 구곡미진(九曲迷陳)을 찾아올
수가 없게 되는 것이고. '멈추시오'라는 글귀를 보고도 멈추지 않으면 마침
내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같이 되어, 기름가마에 떨어져 피부가 벗겨지게 되
지." 육소봉이 말했다.
"가장 대단한 것은 저 방안의 미혼향(迷魂香)을 만난 것입니다. 화만루조
차도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으니까요. 두 잔의 술이 독약이 아닐뿐 아니라
사람의 독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요." 곽휴가 말했다.
"자네는 생각해 내지 않았나."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좋든 싫든 적어도 친구를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
는 것쯤은 알고 있지요. 당신의 친구는 많지 않아 한 사람이 죽으면 한 사
람이 줄어드는 것이니까요." 곽휴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
다가 물었다.
"자네는 또 무엇을 알고 있는가?"
육소봉도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 성의 곽이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의 원래 이름이 상관
목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곽휴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
답했다.
"맞네."
육소봉이 말했다.
"당신은 염철산, 독고일학과 함께 원래는 금붕왕조의 고관이었습니다." 곽
휴가 말했다.
"맞네."
육소봉이 말했다.
"금붕왕조가 멸망했을 때 당신들은 자식을 부탁받고, 창고의 보물과 재산
을 가지고 중원으로 왔습니다." 곽휴가 말했다.
"맞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양심의 가책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육소봉이 말했다.
"그런 다음 당신들은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리고 그 재산들을 착복했지
요. 당신들은 중원에 도착하고 나서 숨어 살면서 약속을 지키지도 않고 제
13대 대금붕왕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지요....." 곽휴는 갑자기 그의 말을 끊더
니 말했다.
"자네가 틀렸네."
육소봉은 눈살을 찌푸렸다.
"틀렸다고요?"
곽휴가 말했다.
"그것 한 가지는 틀렸네."
육소봉이 물었다.
"어느 것 말입니까?"
곽휴가 말했다.
"약속을 어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상관근과 함께 도망간 왕자라네." 육소
봉은 멍해졌다. 이것은 그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그는 믿을 수가 없
었다.
곽휴가 말했다.
"그는 우리들과 약속한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우리를 피해 다녔네. 우리는 수십 년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네." 육
소봉이 말했다.
"그럼 당신들이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들을 피했다는 것입니
까?" 곽휴가 말했다.
"그렇다네."
육소봉이 물었다.
"당신들은 그의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고관들이고 그의 재산도 가지고 있
었는데, 그가 왜 당신들을 피해 숨었다는 것입니까? 그가 미쳤습니까?" 곽
휴가 차갑게 말했다.
"그 재산은 그의 것이 아니고, 금붕왕조의 것이기 때문이지." 육소봉이 말
했다.
"그것은 무슨 차이가 있죠?"
곽휴가 말했다.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는 대단하다네." 육소봉이 말했다.
"무슨 뜻이에요?"
곽휴가 말했다.
"그는 재산을 이어받으면, 그 재산을 이용해서 잃어버린 금붕왕조의 권력
을 찾을 방법을 생각해야 했지.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아주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지." 육소봉은 왕족으로 태어
나는 것이 때로는 다행스런 일만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다.
"왕족으로만 태어나지 않도록 바랍니다."
이 말의 괴로움은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곽휴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의 빛이 서렸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왕자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소봉이 참
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곽휴가 말했다.
"그는 이후주(李後主)와 같은 시인이고, 송휘종(宋徽宗)과 같은 화가였지.
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시서화(詩書畵) 삼절로 불렸다네." 그는 한숨을
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런 사람의 성격은 자연히 세상물욕이 없어, 왕위를 잃게 되었을 때에
도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계속 시를 읊으며 술을 마시며 일생을
유유자적하며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것이네. 게다가....." 육소봉이 말했
다.
"게다가 어떻다는 것입니까?"
"상관근의 재산이면, 그들이 일생을 즐기는 데 충분했지." 육소봉은 더 말
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전적으로 믿어서가 아니었다.
곽휴가 말했다.
"자네는 믿지 못하겠나?"
육소봉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곽휴가 말을 했다.
"우리들은 금붕왕조의 부흥을 위해 군인들의 식량과 무기를 준비하였다
네. 자네가 방금 전에 본 것이지." 육소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휴가 말했다.
"우리들은 금붕왕조의 재산을 이용해서 많은 돈을 벌었지.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재산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네. 당신들이 조정의 중신이라해도 군
사를 빌어 출병한다 해도 왕자가 없으면 이름없이 출병한 것에 지나지 않
지?" 그 말을 육소봉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육소봉은 또다시 물어 보
았다.
"그가 정말로 당신들을 피해 숨었다면, 지금에 와서 왜 갑자기 당신들을
찾는 것일까요?" 곽휴가 쌀쌀하게 말했다.
"전에도 우리들을 찾아온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네?"
"자네가 조금 전에 밖에서 보았던 네 명의 노인들이지." 육소봉이 갑자기
물었다.
"그들 모두가 재산을 탐내어서 대금붕왕을 흉내낸다는 것입니까?" 곽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재산을 원하면, 나는 그들에게 하루 종일 저 앞의 황금과 보석을 주지.
그들이 제왕의 흉내를 내려 하면 나는 그들에게 하루 종일 곤룡포를 입히고
임금의 의자에 앉아 있게 해준다네. 그러나 그들이 재산을 빼앗으려 하면,
나는 그들을 푸대접할 수밖에 없지." 육소봉이 한숨을 쉬고는 쓴웃음을 지
었다.
"보아하니 당신도 군자는 아니군요. 군자는 절대로 이런 방법을 사람들에
게 쓰지 않습니다." 사실 그도 이런 방법을 그런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 알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곽휴가 말했다.
"이 일은 원래 우리 네 사람과 왕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
밀이라네." 육소봉이 물었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곽휴가 말했다.
"그들도 모른다네."
육소봉은 이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업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곽휴가 말했다.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고, 그들은 그 사람이 이용한 꼭둑
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네." 육소봉이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곽휴가 말했다.
"모른다네."
육소봉이 물었다.
"노인들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곽휴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만약 그라면, 자네는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겠는가?"
육소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곽휴가 말했다.
"그들은 모두 그 사람을 세 번 보았는데, 볼 때마다 그 얼굴이 같지 않았
지. 그가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바꾸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사람이 같은 사
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네." 육소봉이 말했다.
"보아하니 그 사람은 계획이 주도면밀할 뿐만 아니라, 변장술에도 정통한
고수인가 봅니다." 화만루는 계속 말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갑자기 말
을 꺼냈다.
"변장술에 정통한 고수라면 목소리도 쉽게 바꿀 수 있지." 육소봉이 말했
다.
"뭐라구?"
화만루가 말했다.
"변장술은 일본에서 전해지는 기술로, 그중에 어떤 무공은 수련을 하면
목 근육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말을 할 때 목소리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네." 육소봉이 물었다.
"자네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나?"
화만루가 말했다.
"그 무공을 닦은 사람이면 나도 분간해 낼 수 없지." 육소봉은 침울하게
말을 했다.
"이번에 우리를 찾아온 대금붕왕도 흉내를 낸 것이 아닌가!" 곽휴가 말했
다.
"내가 사공적성을 보내서 단봉공주를 훔쳐오라고 했지. 그가 진짜인 지를
알아내려고 했는데, 애석하게 그가 오히려 당신의 친구가 돼버렸지!" 육소봉
이 말했다.
"다행히 당신은 일을 순조롭게 처리하셨잖아요. 상관단봉은 이미 당신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곽휴가 말했다.
"그녀가 내 손에 있다고 누가 말하던가?"
육소봉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닙니까?"
곽휴가 말했다.
"아니라네."
육소봉은 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곽휴가 절대로 거짓말을 할 사
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곽휴가 말한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상관단봉은 어째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곽휴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네!"
육소봉이 물었다.
"상관비연도 본 적이 없습니까?"
곽휴가 대답했다.
"그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네!"
육소봉은 또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이 일은 복잡하고 이상야릇하게 변해
가고 있어, 완전히 그의 생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염철산이 내가 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나를 쫓아내려한 것
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군요. 그는 내가 내통을 하고 이 재산을 뺏으러 온
것으로 알고 있었군요." 곽휴가 말했다.
"그때 자네는 그가 비밀이 폭로되는 것이 부끄럽고 분해서 성을 내는 것
으로 알고 있었지" 육소봉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에야 염철산
이 죽으면서 상관단봉을 볼 때,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상관단봉이 정말로 재산을 탐내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인가? 그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정말 속임수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가 이 일에 참견하는 것을 막았을까? 청의루는 왜 사람을 보내어 그와 대
금붕왕이 만나는 것을 막았을까? 화만루가 갑자기 물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그 왕자를 만난 것이 언제였습니까?" 곽휴가 대답했
다.
"사십 년도 더 되었지."
화만루가 말했다.
"그때 그는 몇 살이었지요?"
곽휴가 말했다.
"열세 살이었다네."
화만루가 말했다.
"사십 년 전의 일이고, 그때 열세 살의 왕자가 지금은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이 되었습니다." 곽휴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세월은 무정해서 모두가 늙었지요."
화만루가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지금은 육십된 노인이, 그때 열세 살의 왕자였
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까?" 곽휴는 조용히 말했다.
"그것도 비밀이지. 이 비밀이야말로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네!" 화
만루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지켜야 하는 비밀이 있
다고 생각했다.
곽휴는 오히려 계속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자네들을 믿기 때문에, 이 비밀을 자네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네." 화만루는 감격의 빛을 나타내었다. 곽휴 같은 사람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곽휴가 말했다.
"금붕왕조의 첫 번째 제왕은, 모두가 나면서부터 이상한 사람이지. 그들의
발에는 여섯 개의 발가락이 있다네." 육소봉은 갑자기 말했다.
"당신은 그것으로, 저 네 명의 노인이 모두 가짜라는 것을 알아냈군요."
곽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비밀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해도 위장하기가 힘들지, 두 발 모두 발가
락이 여섯 개인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두 명째를 보지 못했다네." 육소봉이
말했다.
"나도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곽휴가 웃으며 말했다.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도 많지는 않지만."
육소봉도 웃었다.
곽휴가 말했다.
"자네는 대금붕왕의 신발을 벗겨 발가락이 몇 개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네." 육소봉이 말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곽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자의 신발을 벗기는 것은 적어도 여자의 속옷을 벗기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네." 육소봉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도 군자는 아니군요. 완전히 제가 사람을 잘못봤군요." 곽
휴도 작게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군자 노릇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나 같은 사람이 그러기는 어려운
일이지." 육소봉은 그의 말뜻을 알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재산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소인의 마음이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곽휴가 또 말했다.
"대금붕왕이 정말로 그 왕자라면, 나도 어깨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가 있을텐데. 그렇지 않으면....." 육소봉이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데리고 와서, 바깥의 노인과 함께 있게 하지
요." 그들이 이 신비한 움막을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봄바람이
차갑고도 산뜻했다. 풀잎 위의 이슬은 새벽 하늘빛을 받아 진주보다 더 밝
게 빛나고, 아주 아름다웠다.
육소봉은 깊이 숨을 들이쉰 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어. 오늘도 정말로 이상한 일에 부딪혔군." 이
일은 처음 상황에서 발전되고 변화되어서 이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되
었다.
화만루가 갑자기 말했다.
"자네는 정말로 이 세상에 양쪽 발에 모두 여섯 개의 발가락이 난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육소봉이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아직 본 적이 없으니."
화만루가 말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대금붕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
이지. 곽휴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 해도 진실처럼 여겨지지 않나?" 육소봉이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는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많
지." 화만루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 사람이 네 조각의 눈썹도 가질 수 있는데, 왜 여섯 개의 발가락을
가진 사람이 없겠는가? 애석하게도 자네의 네 조각 눈썹이 두 조각만 남기
는 했지만." 육소봉은 자기의 입술을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자네가 틀렸네."
화만루가 물었다.
"뭐가?"
육소봉이 말했다.
"수염은 아무리 깨끗이 깎는다 해도 다시 자란다구!" 그가 말을 마치자,
자욱한 안개 속에서 유령같이 걸어나오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지치고 초췌해서 더 아름다웠다.
육소봉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엽수주?"
엽수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여기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인가요?"
엽수주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어제 저녁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육소봉이 말했다.
"왜요?"
엽수주는 침울하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서 사부님과 자매를 묻고 나자, 큰언니는 지쳤지만 나는.....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미사수 중에서 가장 얌전한 사람
이어서, 남자하고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었다.
육소봉은 이 소녀에게 마음속에서 정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도 뭐라
고 말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엽수주는 계속 말을 했다.
"우리들은 서문취설을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셋째 사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육소봉이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서 그녀를 찾아오겠습니다."
엽수주는 고개를 수그리고 한참을 있다가 겨우 말했다.
"당신에게 알려드릴 말이 있어요."
육소봉은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엽수주는 말했다.
"셋째 사매가 직접 당신들에게 하려고 했던 말인데, 그녀는 이미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녀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조용히 소매
로 눈물을 닦아냈다.
"사부님이 이번에 중원에 온 것은, 그가 청의제일루가 주광보기각의 뒷산
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육소봉이 말했다.
"누가 전해 준 소식인지도 모르고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엽수주는 갑자
기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셋째 사매가 이 말을 하려다 죽임을 당했어요. 누군가 이 말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중
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신에게 알려주러 왔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슬픈 표정
이 나타나면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육소봉은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내가 이 일을 조사해서 반드시 당신
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엽수주는 고개를 떨구고는 오랫동안 말이 없더니 조
용히 물었다.
"지금 당신들은 어디로 가십니까?"
육소봉이 말했다.
"우리들은 발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엽수주는
고개를 들더니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돌려서는 잰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만루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지금 자네가 미친 것으로 알고 도망가는 것 같
군." 육소봉도 한숨을 쉬고는 쓰게 웃었다.
"지금 스스로 조금씩 미쳐가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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