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 속으로 가라앉는 양파
- 이윤학
유리컵에 물을 붓고
싹이 나기 시작한 양파를
올려놓았다. 양파의 하얀 뿌리들,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파란 양파의 머리카락들
꿈을 꾸고 있는 머리를 보는 듯했다.
꿈은 갈수록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파란 양파의 머리카락들
TV 화면을 가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곧 잘려나갔다.
양파의 발들은 바닥에서 엉켜
둥그런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꿈을
다 꾸어버린 머리통인 양파 속은
텅 비어있었다. 유리컵은
뿌옇게 변해있었다.
가벼워진 양파,
자신의 둥지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시집『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개정판 간드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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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서 희망을 볼 수 있으니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컵에 올려놓은 양파, 쟁반에 놓은 고구마, 화분에유리컵 속의 양파는 심은 관엽식물...
실내 공기를 확 바꾸는 난향은 볕이 잘드는 공간을 독차지 하지요
얼마전 '인간극장'에 양대파를 가꾸는 청년농부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뿌리만 먹는 줄 알았던 양파에서 대파를 길러내는 새로운 농법입니다
유리컵에 올려놓은 양파는 머리카락을 한두번 잘리면 몸통이 줄어들고 이내 쪼그라듭니다
그러나 밭에 심은 볼품없는 양파들은 싱싱한 대파로 거듭나서 새로운 식재료가 됩니다
우리의 짧은 민주주의 정치역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으며
더러는 성공적(?) 더러는 실패작(?) 이라고 평가합니다
유리컵 속에서 더이상 양파의 기능을 할 수 없다면 컵도 물도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