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로 본 남북통일
제4장 통일의 근본 이론
제6절 위함의 철학과 통일
4.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1) 참사랑은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나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대상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니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사랑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타락한 이후에 썩었습니다. 모든 철학이 그것을 만든 자의 사욕을 위주로 이뤄져 있습니다. 차라리 이것을 싹 쓸어 버려야 됩니다.
무기나 경제력, 지식 등을 가지고 썩어 버린 철학을 없앨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오직 참사랑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면 반드시 주관성과 독립권, 그다음에는 상속권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학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작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입력보다 출력이 더 큰 것입니다.
참사랑은 무엇이냐? 위하는 사랑인데 얼마든지 주고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준 것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어 주어도 지치질 않습니다. 90이 넘은 부모가 70이 된 아들보고 '애야! 차 조심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몇십 년 동안 그 말을 수없이 되풀이 했다 하더라도 싫증나거나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모도 이렇거늘 하물며 본질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받을 때 지칠 리가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참다운 하나님의 대상권을 확정 짓고 사랑의 영광이 불변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때에, 우리 인간의 사랑을 중심 삼고 영생의 윤리를 타당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얼마 전 내가 미국에서 감옥에 들어가 옥중 침대에 홀로 누워 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니콰라과 사태를 해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실 인간이 어디 저밖에 없습니까? 선진국을 대표한다는 미국엔 2억 4천만이라는 국민과 수없이 많은 교역자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찾아가실 수 없어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랑을 찾아 가실 줄 알기 때문에 다행입니다. 그때문에 세계를 위해 내가 일을 하지 않았으면 남미는 이미 쑥대밭이 되었을 것입니다. (1986.3.14)
참사랑은 뭐냐 하면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겠다고 하는 사랑입니다. 거짓사랑은 주고 보태서 장사하는 사랑이요, 주었으니 너는 그 이상 갚아라 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탄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거짓 사랑은 한번 주었으면 거기에 본전과 이자까지 합하여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같은 사랑은 지상에 와서 '원수를 사랑하라!'하며 원수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원수까지 잊어버리고 사랑만을 하고 싶어 하는 그 자리가 이 우주 만존재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왔었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아들 닮은 분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은 예수 닮은 분이지요.
그러므로 예수 닮은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어떠했습니까?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수를 잊어버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때문에 죽을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하나님! 날 살려 주세요!' 하고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나 '당신이 필요합니다. 주인으로서 당신 같은 주인은 우주에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그런 주인이 있어요?
여자가 행복한 여자라면 어떤 것이 행복이냐 하면,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를 위하고 또 위하고, 또 위하고 잊어버리고 또 위하려고 하는 남편을 가졌을 때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이요,
남자도 그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또 위하고, 또 위하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도 잊어버리고 또 사랑하려는 모습일 때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참 아내와 참 남편의 도리가 이러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뭘하자는 것이냐? 오늘날 인간 욕망의 모든 것을 완전히 채워 만인 공유의 하나님이 즐거워 할 수 있는 평형적 세계화운동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 삼고 통일화하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1986.1.21)
(2) 천국의 구조와 종교의 가르침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은 영적 체험, 혹은 영계(靈界)에 대한 내용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본연의 세계, 오늘날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니 극락이니 하는 그런 곳의 구조(構造)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되어 있느냐 하는 의문의 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위해서 나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 본향(本鄕)의 이상적 구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세계에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역사과정에 수많은 종교를 세워 가지고 훈련시켜 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종교가 온유 겸손해야 되며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영계에 돌아가야 할 인간들에게 영계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지상생활 과정에서 그 영계에 알맞도록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보다 차원 높은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평소의 생활을 그 세계에 일치시키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게 될 때에 이러한 내용을 제시하는 자체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섭리해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방대한 경전으로 되이 있다 하더라도 단 두 마디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다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하기를,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말을 한 것도 결국은 위해서 존재하는 본연의 세계의 원칙에 일치시키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75-320)
가정의 천국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1백 퍼센트 존재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살고 그를 위해서 죽는다는 입장에서 서게 될 때에 그 가정이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격언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자는 자기 존재의 가치가 자기의 주권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데에 있으며, 그 백성은 백성 자체를 위하기 보다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되는 날에는 그 나라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칙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국가 민족을 초월해서 서로 위해 주는 세계를 이룬다면 그 세계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유토피아적 사랑의 세계일 것이며, 이상의 세계일 것이며, 평화의 세계일 것이며, 행복의 세계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을 들고 나가게 될 때는 어디나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75-325)
(3)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흔히 세상에서 말하기를, 아! 인생이 무엇이냐고 하는데 인생관(人生 觀), 국가관(國家觀), 세계관(世界觀)의 확립, 그다음엔 우주관(宇宙觀)에 대한 확립, 더 나아가서는 신관(神觀)의 확립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계통적 단계와 질서를 어디에다 둘 것이며, 그 차원적 계열(次元的 系列)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입각해서 보게 될 때에 가장 가치있는 인생관은 내가 전인류를 위해 있고, 전세계를 위해 있고, 국가를 위해 있고, 사회를 위해 있고, 가정을 위해 있고, 아내를 위해 있고, 자녀를 위해 있다는 입장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인생관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가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적인 국가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자기 나라만을 위하려고 하는 나라는 나쁜 국가로 지탄받아 온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