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 살 때였다.
(물론 세 살때 일을 기억할 정도로 내가 대단한 놈은 아니다. 엄마가 말해 준
것을 내 시점에서 쓴 것이다)
당시는 부익부빈익빈이 현재보다 훨씬 실감나는 시기였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300만원 이상의 'DVD 벽걸이형'으로 쓰느냐 20인치 '평
범'텔레비전을 쓰느냐가 문제였겠지만 당시엔 텔레비전 자체가 '있느냐 없느
냐'가 문제였다.
CF에서 나오는 것처럼, 텔레비전이 동네 이장님댁에 한대 정도 있었던 시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집엔 텔레비전이 없었기에(가난하게 컸다 이원영 ㅠ.ㅠ)
옆집 순이네 집 문간방에 텔레비전 보러 하루 웬종일 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의집살이를 하던 어느 날, 아빠가 밥 먹으라고 순이네 집에 데리러
왔었단다.
"원영아, 집에 가서 밥 먹자"
"안 가"
"밥 먹자니까. 지금 안 가면 밥 안 준다"
"밥 안 먹어"
"오호~~ 니가 배가 불렀구나. 밥 안 먹으려고 하는 거 보니-_-+"
"나 배불러. 순이네 엄마가 밥 줬어"
"이눔자쉭! 지금 안 가면 너 집에 못 들어온다! 이 집에서 살아야 돼!"
"진짜? 아빠 나 진짜 이 집에서 살아도 돼??!! 나 순이네서 살고 시퍼!! 순이
네 집서 맨날 텔레비전 보면서 살고 시퍼!! 순이네서 살 거야!!!"
집에 안 가겠다고 버팅기는 날 보며 충격을 받은 아빠, 다음 날 36개월 할부
로 텔레비전 사 버렸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사 가지고 들어온 아빠는 날 부둥켜 안고 외쳤단다.
"싸나이는 갑빠로 사는거야! 그깟 텔레비전 때문에 순이년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면 안 된다고!! 순이년네 집보다 우리집이 훨 나아!!"
싸나이끼리 외치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 한 마디 하셨다.
"자꾸 순이년 순이년 하지 말아요. 나 보고 하는 말 같네"
엄마 이름이 순임이거든-_-
36개월 할부로 산 텔레비전은 GOLDSTAR 가 박혀 있는 '쌔빠'였다(지금의 LG가
그 때엔 골드스타, 즉 금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옷장처럼 열었다 닫었다 할 수 있는 텔레비전으로 순이년도 우리집에 텔레비
전 구경하러 왔을 정도로 최신식 텔레비전이었다.
비록 없는 살림에 할부금 값느라 허리가 휘었지만 싸나이 갑빠를 한껏 올려줬
다는 이유로 우리 집은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 모든 가전제품을 GOLDSTAR로
구입하였다.
"남자는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법이야!!"
이 글을 읽는 엘지 관계자 여러분은 우리 가정에 상 주기 바란다-_-
<다섯 살 싸나이에게도 갑빠는 있다>
다섯 살 때였다.
(이 때부터의 모든 사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경기도 서정리에 살던 나는 엄마 손잡고 송탄에 있는 고모네 집에 일주일
에 한번 이상씩 놀러 갔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갈 때마다 엄마와 나는 달리기 시합을 했었다.
"엄마를 이기면 짜장면 사 줄께"
"진짜루?"
"그럼"
나의 '기초체력'을 길러주기 위한 엄마의 꼬임에 빠져 든 나는 기를 쓰고 엄마
와 달리기 시합을 하였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내가 항상 엄마를 이겼다. 한 발자국 뒤쳐져서 '아이구! 힘
들다!'라고 소리치는 엄마를 이겨내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차 오를만큼 '존나
게' 달렸었다.
그러나, 꼭 마지막 순간 발목을 잡혀 번번히 질 때가 많았고, 난 '다 잡은 경
기'를 놓친 것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곤 했었다.
당시, 25살 갓 넘은 '젊은 처자'인 엄마는 내가 시합에 지고난 후 분통을 터트
릴때마다 신기하였다고 한다. 다섯 살 먹은 꼬마가 승패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패배한 것을 분해 하면서 이기기 위해 더욱 이를 악 물
었다는 게 놀라웠다고 한다.
사나이 갑빠로 인한 승부는 날 '고독한 승부사'로 만들었고 시합에 진 날엔 입
을 다물고 침울해 했다고 한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5대 5의 비율로 승패
를 '조율'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너는 시합에 지면 하루종일 침울해 있었단다"
"다섯 살 짜리 꼬마가 말이에요?"
"그래. 다섯 살 먹은 놈이 뭘 안다고 그랬는지. 또, 지면 한 판만 더 하자고
어찌나 날 괴롭혔는지 아직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 차라리 매일 져 주지 왜 5대 5의 비율로 져 주었어요?"
"이긴 날의 너는 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렀거든.어찌나 거들먹 거리던지 차라리
침울했던 편이 낫었다니깐"
그 때의 덕택으로 난 100미터를 11.2초로 뛰었고 학창시절 내내 달리기 계주
선수였다.
<여섯 살의 첫 가출>
유행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다.
그 당시 우리 동네의 유행이 '가출'이었다.
동네 형들이 걸핏하면 집을 나갔고 몇일 뒤에 돌아오면 반찬부터 고기반찬으
로 바뀌는 등 대우가 틀려졌다.
어린 마음에 그게 부러웠던 나는 엄마가 나물 반찬 해 주면 이렇게 외쳤다.
"반찬이 이게 뭐야! 자꾸 이렇게 하면 나 가출한다!"
"어이구.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겠나"
엄마의 이런 반응에 상당히 만족해 하던 나는(그때부터 상당히 단순했군-_-)
엄마가 말로만 '무섭다'고 했지 결국 반찬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심
각한 고민을 하였었다.
'내가 말로만 하니까 엄마가 무시하는 거 같어. 한번 가출을 해 줘야 내 말을
진짜로 믿어 주지. 한번만 더 나물 반찬 나와 봐라. 싸나이 갑빠가 있지!
바로 가출해 준다-_-!"
다음 날, 여지없이 나물 반찬이 나왔다.
그 즉시 가출을 했다.
가출을 한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으로 간 뒤에 몇 시간 동안 버스 지나다니는 거 구경했다.
동네 형들이 가출하면 버스 정류장에 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뒤에 어떻
게 해야할 지 몰랐다.
거기 앉아서 버스 구경 하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시내 나갔다가 돌아오던 옆집 아줌마가 물었다.
"가출했어"
"가출? 왜 가출했는데?"
"고기 반찬 안 해 줘서"
"가출한 거 엄마가 아니?"
"몰라. 아줌마 우리 엄마한테 말하지 마"
"집에 언제 갈 건데?"
"하룻밤 자고 간다고 엄마한테 말해 줘"
아줌마들이 간 뒤, 얼마 뒤에 엄마가 왔다.
"거기서 뭐 하니?"
"가출한 거야"
"지금 정육점에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정육점? 왜?"
"오늘 저녁에 고기 반찬 해 먹으려고"
"같이 가!"
싸나이 갑빠고 나발이고 고기 반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자도 갑빠가 있다-_-?>
그저께 음대 도서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앞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얼마나 세게 넘어지던지 발목이 부러지진 않았나 걱정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내려
가지 않는가...
한번쯤 쪽팔려서라도 주변을 돌아볼 듯 했는데 오히려 '무슨 일 있었어?'라는
듯 내색조차 않고 내려갔다.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아무 내색도 않하는 여자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뭣 해
서 말없이 뒤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앗!!"
그녀의 종아리 쪽을 보고 난 비명을 질렀다.
"저기요! 피 엄청 나는대요!"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면바지의 종아리 부분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바지를 걷어 보니 손가락 정도 되는 깊이로 살이 깊게 찢어져 있었다.
"안 아픈가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나와는 달리 당사자인 그녀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했
다.
"신경 쓰지 마세요. 별 일 아니거든요"
벙 쪄 있는 나를 뒤로 하고 그녀는 누가 볼까 쪽팔린 듯 계단을 얼른 내려갔
다.
암만 생각해도 열 바늘 이상 꼬매야 될 거 같았는데도 '여장부 갑빠가 있지!'
절대 아픈 척 안 하고 내려가더라.
하긴... 여자가 남자보다 갑빠가 크지...
<진정한 싸나이의 갑빠란>
나는 내 스스로 자유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움을 누리는 데 있어 그 어느 누구의 방해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싸나이의 갑빠란 자유를 방해하는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는 거라 생
각한다
그래서 나는 전철 안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또, 복권을 사지 않
는다.
내가 생각하는 '선하고 올바른 것'을 지키기 위해 내 육체가 바라는 '악하고
잘못된 것'에 대항해 이겨내려고 한다. 돈을 벌어도 정직하게 노력해서 벌고
싶다. 내 '잔대가리'는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것에 민첩하도록 요구하지만,
싸나이 갑빠가 있지 그딴 일들에 내 양심을 팔 수는 없다.
진정한 강자는 상대가 누구든간에 자신이 배워왔던 '올바른 것'들에 대해 인정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강자는 타인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싸나이들이여...
갑빠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시험 때 컨닝을 하지 말자. 출석 체크만 하고 토끼지 말자.
당신이 네티즌이라면 공인에게만 정직한 삶을 강조하지 말고 자신도 정직하도
록 노력해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지 말고 요리조리 핑계대지 말고
군대를 가라.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는 얘긴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유승준에게
나타내는 분노를 스스로에게도 적용시키길 바란다. 오노에게 내비치는 '정의
에 대한 분노'를 자신에게도 실천하는지 돌아보라.
진정한 싸나이의 갑빠란 '지킬 건 지킨다'는, 아주 작지만 위대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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