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긴 복도는 어둡고 조용했다. 그들은 복도의 끝에서 대금붕왕에게 그들이
온 것을 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화만루가 조그맣게 물었다.
"그의 신발을 벗길 수 있을 것 같은가?"
육소봉이 말했다.
"그럴 것 같지 않네."
화만루가 물었다.
"자네는 어떤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겠나?"
육소봉이 말했다.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할까?" 화만루가 말
했다.
"자네는 그럼 두 가지 방법을 나에게 말해 보게!"
육소봉이 말했다.
"일부러 그의 발에 물을 쏟을 수도 있고, 일부러 그의 신발이 좋다고 얘
기해서 그가 벗어서 내게 보여주게 할 수고 있지." 화만루가 얼굴을 찌푸리
며 말했다.
"자네는 그 방법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육소봉
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바보 같은 일에는 나도 바보 같은 방법을 생각
해낼 수밖에 없지."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대금붕왕은 여전히 크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흥분되고
절박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급하게
물었다.
"자네들은 세 사람의 배반자를 찾았는가?"
육소봉이 말했다.
"두 사람만 찾았습니다."
대금붕왕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육소봉이 말했다.
"벌써 죽었습니다."
대금붕왕이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그들을 죽일 수 있었나?"
육소봉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대금붕왕은 추운 듯이 무릎에서
부터 치렁치렁 비단으로 짠 천을 덮고 있어 발은 보이지 않았다.
화만루가 간단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곽휴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주 찾기 힘든 인물이었습니
다." 이것은 그가 첫 번째로 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한순간 거짓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미안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금붕왕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그들을 한 번도 못 보았네. 그들이 나를 볼 수 있는지 한 번 보고
싶군." 화만루가 말했다.
"지금 나도 한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대금붕왕이 물었다.
"누구인가?"
화만루가 말했다.
"주정입니다."
대금붕왕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자네들에게 물어보려던 것인데, 내가 두 차례나 사람을 보내 그를
청했지만 그는 오지 않았네." 화만루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 그가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육소봉이 갑자기
말했다.
"이 모피가 참 좋아 보입니다. 정말인지 한 번 보고 싶어요." 이 말은 정
말 어리석었고, 이어서 그는 어리석은 일을 했다. 그는 모피를 열어젖히고는
정말로 바보같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대금붕왕의 바지 다리는 텅
비어 있는 것이었다. 양다리는 무릎에서부터 잘려져 있었다. 대금붕왕이 말
했다.
"당신은 내 다리가 갑자기 어떻게 사라졌는지 이상하지요?" 육소봉은 쓰
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금붕왕이 말했다.
"내 다리는 중한 병이 있어서,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아팠어요. 나이가
들수록 병도 많아지는 것이지." 이 말은 사실이었다. 저번에 육소봉이 왔을
때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대금붕왕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 같은 늙은이한테서 술 마시는 걸 빼놓으면 무슨 즐거움이 있
겠나?" 육소봉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몰래 술을 마셨나요?"
대금붕왕이 말했다.
"처음엔 한 모금 마시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했지. 세 잔을 마
시자 양다리가 붓기 시작하더니 그렇게 썩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서..... 그래서 나는 아예 유여한을 시켜 다리를 잘랐지." 그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다리는 없지만 이제부터는 마음놓고 술을 마실 수 있네. 오늘 저녁 나는
자네들과 한 번 이 늙은이의 주량이 자네같이 젊은이들과 비교해서 어떤가
마셔보려고 하네." 육소봉은 그를 보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금붕왕이 말했다.
"자네들이 며칠만 일찍 왔어도 잘려진 내 다리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자네들도 알고 있듯이 나 같은 늙은이는 독사에게 손을 물리면 손목을 자르
는 호기가 있다네." 육소봉이 궁금한 듯 물었다.
"지금 두 다리는 어디 있습니까?"
대금붕왕이 말했다.
"벌써 태워버렸지."
육소봉이 의아한 듯 물었다.
"태워버렸다구요? 왜 그것들을 태웠나요?"
대금붕왕이 말했다.
"그 다리가 십 년이나 술을 못 마시게 나를 괴롭혔는데 내가 그것들을 태
우지 않으면 설마 안주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육소봉이 말을 하지 못하고
기 노인의 얼굴에 나타난 자랑스럽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바보같고 어리석은.
복도는 아직도 어두웠고, 그들은 천천히 걸어나왔다.
화만루가 갑자기 웃더니 말했다.
"지금 자네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군."
육소봉이 말했다.
"그렇네!"
화만루가 말했다.
"자네가 그의 신발을 벗길 방법까지 생각지 않았어도 되는 건데, 그는 신
발이 없었잖아." 육소봉이 쌀쌀맞게 말했다.
"자네가 언제 그렇게 익살스럽게 변했나?"
일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곽휴조차도 이 대금붕왕이 진짜인
지 가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었다.
교묘하게 일치된 일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이런 공교로운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교로운 일이 아니면 대금붕왕은 어떻게 이 비밀을 알았을까? 곽휴의 작
은 집을 떠나서는 곧장 여기로 달려온 것인데 대금붕왕이 천리안을 가지고
있거나 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이 그의 발을
보러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육소봉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만약에 술을 마셔 다리가 부어 버린다면, 나도 두 다리를 모두 잘라 버
려야 했을 거야." 화만루가 말했다.
"세상에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은 것 같군." 육소
봉이 말했다.
"자네는 그 집에 남아 있게. 왜 잠깐 잠을 자러 가지 않는 건가? 오늘밤
에 자네에게 술 마시자는 사람을 잊지 말게." 화만루가 물었다.
"자네는?"
육소봉이 대답했다.
"나는 사람을 찾아봐야겠어."
화만루가 물었다.
"누구를 찾는다는 건가?"
육소봉이 말했다.
"당연히 여인을 한 사람 찾아야지, 발이 있는 여인을." 화만루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말했다.
"맞아. 자네는 빨리 가서 발가락이 여섯 개인 여자를 찾아봐야지." 육소봉
이 말했다.
"뭐라구?"
화만루가 말했다.
"금붕왕조의 첫 번째 자손은 모두 발가락이 여섯 개인 것을 잊지 말게.
그것은 유전이니 상관단봉이 대금붕왕의 친자식이라면 발가락이 여섯 개가
아니겠는가? 자네는....."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육소봉이 벌써
봐버린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황혼이 지려 하고,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다. 꽃밭의 꽃은 아직 피어 있어
서 바람 속에는 꽃향기가 가득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볼 수가 없었다.
상관설아는 꽃밭에 있지 않았고, 육소봉도 상관단봉을 찾는 것은 아니었
다. 그는 상관단봉이 절대로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대금붕왕은 그의 딸에 대한 행적을 묻지 않았다. 이것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육소봉은 지금 이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빨리 상관설
아를 찾아 한마디만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주 중요한 한마디만을.
그가 생각지 못할 때 그녀는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지금 그가 급
하게 그녀를 찾고 있는데 작은 요정은 오히려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
이었다. 육소봉은 한숨을 쉬고는 꽃이 가득 핀 길을 가로질러 가다가 문을
하나 발견했다.
문은 잠그지 않고 닫아만 둔 것이었다. 뒤쪽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정
원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는 문을 밀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상관설아를 찾았다. 이 작은
요정은 항상 이상한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금 그녀는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커다란 눈을 깜짝이지도 않고 앞
의 허공을 보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땅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풀 한 포기조차 없었다.
육소봉은 허공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몰라서 물어보았다.
"사촌누이,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설아는 소리를 내지도 않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공부에 몰두한 사람
이라도 그녀처럼 이렇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 작은 요물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육소봉은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도 설아의 옆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설아의 눈길이 머무는 곳
을 보았다. 그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듯, 땅의 흙이 말라 있었다. 바깥의 꽃밭
에는 꽃이 무성한데, 이곳은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는 것 같았다.
우물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두레박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
다. 정원 양쪽으로 나 있는 몇 개의 낡은 곁채의 문에 있는 자물쇠도 녹이
슬어 있었다.
육소봉은 이모저모 살펴보았지만, 설아가 쪼그리고 앉은 곳에서는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다.
설아가 갑자기 말했다.
"이곳은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좌선을 하던 곳이에요." 육소봉은 그녀
의 할아버지가 지난날 곽휴와 같이 부탁을 받은 대금붕왕의 부하인 상관근
이라는 걸 알았다.
설아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한해 전에 돌아가시고 나서 여기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
도 없었어요." 육소봉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설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 말은 내가 당신에게 물어볼 말인 것 같은데요. 당신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요?"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나는 너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서 무엇을 할 건가요?"
육소봉이 말했다.
"너와 얘기를 좀 하려고."
설아는 얼굴을 굳히고는 냉소를 지었다.
"내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와 얘기를 한다는 거
죠?"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너의 말을 내가 하나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설아
가 말했다.
"당신이 말했었잖아요."
육소봉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너는 내가 한 말이 모두가 정말이라고 생각하느냐?" 설아는 큰눈으로 그
를 한참 바라보고는 갑자기 웃었다.
육소봉도 웃었다. 그는 문득 설아가 웃을 때는 정말 얌전하고 말 잘듣는
소녀처럼 느껴졌다.
설아는 얼굴을 굳히더니 말했다.
"당신은 나와 무슨 얘기를 한다는 거죠? 지금 얘기하세요." 육소봉이 말했
다.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네가 마지막으로 너의 언니를 본 것이 언제
였지?" 설아가 말했다.
"그녀가 화만루를 데리고 온 그날이요. 우리들이 당신을 찾아 떠난 바로
그날이요." 육소봉이 물었다.
"네가 돌아오고 나서는 다시 그녀를 본 적이 없니?" 설아가 말했다.
"없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이 나타나면서 말했다.
"그녀는 나를 아주 좋아해서, 항상 어디를 나가면 나에게 알리고 갔어요.
이번에는..... 이번에 그녀는 다른 사람 손에 죽은 게 틀림없어요." 육소봉의
눈에는 생각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녀는 매일같이 외출을 하니?"
설아가 말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점점 대담해져
서 나가는 일이 점점 잦아졌어요. 뿐만 아니라 한 번 나가면 한 달 이나 보
름을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는 그녀가 바깥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했지만 그녀는 절대로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들은 계속 할아버지와 같이 있었어요. 그
래서 그녀는 하늘과 땅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할아버지만은 무서워했어
요." 육소봉이 물었다.
"너의 아저씨는 언니에게 신경쓰지 않았지?"
설아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가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에요. 어느 날 그는 언니를 방에 가두어 놓았
는데, 그래도 언니는 빠져나가 버렸어요." 육소봉이 물었다.
"그는 너의 언니를 좋아하지 않았나?"
설아가 말했다.
"좋아하지 않았어요. 언니가 우리 가문의 기풍을 망친다고 언니를 항상
욕했어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그가 언니를 죽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너의 언니는 아직 죽지 않았어."
설아가 물었다.
"누가 그래요?"
육소봉이 말했다.
"화만루가 얼마 전에 그녀를 보았대."
설아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언니를요? 그는 앞을 못 보는 장님인데 어떻게 언니를 볼 수가 있
죠?" 육소봉이 말했다.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어."
설아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더니 말했다.
"그것은 상관단봉이 언니를 사칭한 거예요. 그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
겨서 어릴 때부터 항상 서로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그랬어요. 언젠가는 그녀
가 얼굴을 가리고 언니의 목소리로 나를 속였어요. 나도 감쪽같이 속았지
요." 육소봉의 얼굴에는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이 일은 정말로 갈수록 난
해해질 뿐만 아니라 점점 흥미로워지는 것이었다.
설아는 힘껏 머리를 잡고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이제야 알겠어요. 언니를 죽인 것은 분명히 그녀
예요." 육소봉이 물었다.
"네가 말하는 것이 상관단봉이냐?"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는 우리 언니와 잘지냈지만, 언니는 항상 그녀가 겉으로만 잘하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언니가 그녀보다 더 똑똑하고, 더 예쁜 것을 항상
질투했어요." 그녀는 육소봉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그녀는 언니를 죽이고 나서 일부러 화만루 앞에서 언니의 흉내를 낸 것
이에요. 당신들이 언니가 죽지 않았다고 믿게 말이에요." 육소봉은 무슨 말
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한숨만 내쉬었다. 설아의 말이 황당무계한 것이기
는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설아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나를 도와주어야겠어요."
육소봉이 물었다.
"무엇을 도와 달라는 거지?"
"나를 도와 언니의 시체를 파내는 거예요!"
육소봉이 말했다.
"너는 언니의 시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고 있단 말이냐?" 설아가 말
했다.
"알아요. 분명히 바로 여기예요."
육소봉은 웃으려 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설아의 표정이 너무나 엄숙했다.
"나는 꽃밭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가 언니를 죽
이고 시체를 여기에 묻었다는 것을 방금 알게 되었어요." 육소봉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설아가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이가 드시자 스님처럼 변하셔서는 개미 한 마리도 밟
아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쌀가루로 먹이까지 주었어요 그래서 이 정
원에는 개미가 많아요." 그녀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두 시간이나 여기서 지켜보았는데 지금은 한 마리의 개미도 볼 수가 없
었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그래서 너는....."
설아가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이곳에 독이 있으니까 개미 한 마리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독이 있
다고?"
설아가 말했다.
"그녀는 독약으로 언니를 죽였을 거예요. 지금 독이 언니의 시체에서 나
와 흙 속에 침투했을 거예요. 그래서 여기 흙도 죽은 거지요." 육소봉이 물
었다.
"흙도 죽니?"
설아가 말했다.
"당연히 그렇죠. 흙도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두 가지가 있어요. 살아 있
는 흙에는 꽃과 풀도 잘 자라고 개미 같은 작은 곤충들도 많이 있지요." 육
소봉이 한숨을 쉬고는 이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는구나. 어려서부터 너무 생각이 많으면 커
서 빨리 늙어버린단다." 설아가 그를 보고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도와줄 건가요?"
육소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나는 바보 같은 일을 너무 많이 했단다."
설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육소봉이 나를 강간하려고 해요." 육소봉이 급하게
물었다.
"손끝도 만지지 않았는데 너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설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소리를 지를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내가 당신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당신이 나를 겁탈하려 했다고 말할 거예요!" 육소봉도 소
리를 지르며 말했다.
"내가 너를 겁탈하려 했다고?"
설아가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여러 차례 나를 겁탈하려 했지요." 육소봉이 말했다.
"너처럼 어린 계집아이의 거짓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설
아가 말했다.
"누가 안 믿어요? 내가 옷을 벗고 그들에게 보여주면 어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육소봉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중
얼거렸다.
"이 계집아이는 정말 미쳤군. 정말 미쳤어!"
설아가 말했다.
"좋아요, 내가 미쳤다고 치고 나는 소리를 지를 거예요." 그녀는 정말로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다.
이때 육소봉이 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지금 거래를 하자는 거니?"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손을 놓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당신은 대답한 거지요?
육소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누가 이런 방법들을 네게 가르켜주었냐는
거야." 설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를 상대하는 오래된 세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이지요.
지금 나는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다른 두 가지 방법은 무엇이지?"
설아가 여유있게 말했다.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겠어요? 나도 당신을 상대하려면 그
방법을 남겨 두어야지요." 그녀는 뛰어가면서 말했다.
"내가 가서 호미를 가지고 올테니 당신은 여기서 나를 기다려요. 오늘 저
녁에 내가 비둘기를 훔쳐서 당신의 술안주로 드릴께요." 육소봉이 말했다.
"비둘기라고?"
설아가 말했다.
"언니는 많은 비둘기를 기르고 있었어요.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만지지
도 못하게 했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녀가 뭐라 그러지 못할 거예요." 그녀
의 얼굴에는 다시 슬픔이 서렸다. 갑자기 몸을 돌려서는 뛰었다. 육소봉은
두 갈래로 땋은 그녀의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눈에 빛을 나타나더
니 갑자기 몸을 날려 설아를 쫓아갔다.
"나도 너와 같이 호미를 찾으러 가겠어."
설아가 물었다.
"왜죠?"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비둘기에게 물릴까 걱정이 되는구나."
그의 웃는 모습이 약간 일그러졌다.
설아가 그를 보고는 말했다.
"당신은 내가 언니처럼 갑자기 실종될까 봐 두렵군요?" 바람이 불면서 제
비가 꽃밭에서 날아올라 담장 밖으로 갔다. 하늘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
다.
육소봉은 서서히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제비의 그림자를 보면서 길
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제비도 여기에 있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상관비연도 제비
처럼 날아간 것일까? 땅속에 묻혀 있는 거일까? 상관단봉은 왜 갑자기 사라
진 것일까? 대금붕왕은 그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서 그녀의 소식을 물어
보지 않는 것인가? 잘려진 그의 다리에는 발가락이 진짜 여섯 개였을까? 이
런 문제의 답은 과연 누가 알고 있을까? 황혼이 지고 바람이 더욱 상쾌했
다. 서늘한 바람이 창 밖에서 불어 들어와서 화만루의 몸을 감쌌다. 그는 하
늘이 어두워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피부 또한 그의 코와 귀처럼 정상인보다 예민하였다. 지금 그는 사
월의 황혼의 서늘함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아주 혼란스러웠
다.
작은 주막에서 상관비연을 보고 나서부터 그는 마음이 혼란해지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그는 이 일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그도 헤아
릴 수가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도 육소봉은 돌아오지도 않고, 대금붕왕도 사람을
보내 그들과 식사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
사정이 급변하는 것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그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는 바람 속에서 특이한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것은 바로 그
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향기였다.
상관비연이 돌아온 것인가? 그는 손으로 창틀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
는 자신의 감각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그는 어떤 것도 볼 수가 없고, 그의 세계에서는 영원히 빛이 없고 색깔도
없고 단지 어둠뿐이었다. 절망이 가져다주는 어두움! 방금 전의 향기가 꽃향
기와 섞여서 그는 어느 방향에서 향기가 나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갑자
기 꽃향기가 짙은 곳에서부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돌아왔어요."
정말로 상관비연의 목소리였다.
화만루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고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돌아왔군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은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요?"
화만루가 말했다.
"몰랐어요. 단지 당신이 돌아오기를 바랐지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은 내 생각을 했습니까?"
화만루가 웃었다. 웃음 속에는 말 못할 감정이 섞여 있었다. 기쁨일까, 슬
픔일까? 상관비연은 걸어와서 그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내가 돌아왔어요. 당신은 왜 기뻐하지 않는 거죠?" 화만루가 말했다.
"나는..... 알 수 없는 일을 당했어요."
상관비연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화만루가 말했다.
"내가 두 번째 만났을 때 당신은 여러모로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요." 상
관비연이 물었다.
"누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화만루가 말했다.
"상관단봉이요."
이름을 말하고 나서 화만루는 상관비연의 손이 순간적으로 가볍게 떨리는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더욱 꽉 쥐고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나를 보면서 당신은 그녀를 생각했다고요?"
화만루가 말했다.
"네!"
상관비연이 물었다.
"왜 그렇지요?"
화만루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과 그녀가 한 사람인 것 같아서요." 상관비연이 웃
으며 말했다.
"당신은 왜 그런 감정을 가지는 거지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도
동생의 그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상관비연이 죽었다는, 지금의 상관비연은
상관단봉이 변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화만루는 입을 열지 않았다. 왜냐하
면 그는 속으로 그런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 앞
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은 최일동을 기억하나요? 눈꽃이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 보았
냐고 물어본 것을 기억하나요? 꽃봉오리가 봄바람에 천천히 피는 것을 느낄
수 있냐고, 그 신비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냐고 물었잖아요? 가을 바람이
먼산의 낙엽의 상쾌함을 전해 주는 것을 아느냐고도 물었잖아요?" 화만루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말들은 모두가 그가 한 말이었다. 상관비연이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말한 것이었다.
상관비연이 말했다.
"내가 상관단봉이라면, 어떻게 당신이 한 이런 말들을 알 수가 있죠? 어
떻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할 수 있나요?" 화만루는 웃으며 자기의 의심이 필
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느꼈다.
앞에 있는 이 소녀를 안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손을 내밀어 그녀
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상관비연도 그의 품에 안겨서는 그를 껴안았다. 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
는 행복과 만족으로 가득 차서 모든 의심을 잊을 수가 있었다.
이때 그는 갑자기 상관비연의 손이 자기의 뒷머리 혈을 찌르는 것을 느꼈
다. 그런 다음 그는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