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세기 당시 예루살렘왕국의 판도.
"아니,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어째서? 안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어."
"젊은 치기에 정신을 잃었구나, 내 동생아. 아버지는 알고계시는 거냐?"
"아버지는 늘상 우리에게 하는 말씀을 하셨지."
그리고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가문에 먹칠을 한다면, 내 장담컨데 네가 지옥불에 떨어지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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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의 고령에 허옇게 백발이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나의 아버지.
가난한 남작가조차 기억못할, 우리에게 있는 클레임을 찾아보려면 증조부까지 가야만하는 그런 빈곤한 귀족가문을
어엿한 블루아백작가로 만들어놓은 나의 아버지.
선왕인 루이7세에서 현왕인 필립2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장과 저 플렌테저넷악마들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리며 오직 가문의 명예하나만을 끝까지 고집해온 나의 아버지.
그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깊게 그늘이 져있었다.
나이를 이기지못한 피부들은 밑을향해 쳐지기 시작했으나, 그의 매서운 눈만큼은 그누구도 감히 대적할수없는 ..
그래.. 나는 광기라고 하겠다. 광기를 품고있었다.
혈연관계의 최상위, 아버지와 아들. 그러나 단한번도, 단언컨데 단한번도 그는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준적이 없었다.
"둘째 도련님이십니다."
"그 빌어먹을 성지얘기를 꺼내려면 당장 내 성에서 꺼져버리라고 해!"
참지 못했던건, 자식의 염원을 이리도 내팽개치는 아버지에대한 분노였을까.
감히 문을 힘껏열어젖히고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 도대체 왜 안된다는 겁니까? 신이 은총을 내려주신 저희 프랑스왕국에 귀족이 반기를 드는 것 말고도 할수없는 것이 이렇게나 많단 말입니까?! 아버지는 형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놈의 빌어먹을 가문의 영광이랍시고, 형의 오른눈을 잃게 만드셨죠. 그것으로도 부족합니까? 뭐죠 그럼? 이번엔 제가 다리한쪽을 잃을 차례인가요?!"
순간 눈에서 강렬한 불꽃이 튀었고, 바닥에 나자빠진 나는 터져나오는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고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활화산같았고, 코에 있는 두개의 분화구는 금방이라도 용암을 분출해낼듯 씰룩거리고있었다.
"감히. 어디서 니가 감히!"
이 한밤중의 소란법석을 들은 어머니는 금새 당신의 소매로 나를 포근하게 감싸왔다.
"아이에게 기회를 줄순 없나요? 이토록 하고싶다고 하는데, 당신은 기회조차 줄수없단 거에요? 얘도 이제 내년이면
20살이 되요!"
"여자가 뭘 안다고 나서는게야?! 저 놈은 사내라고 할수도 없어. 쥐새끼한마리 죽이는데도 벌벌 떠는 성격하나는 꼭 당신을 닮았군그래!"
"세상에, 내가 이런 짐승과 같이 살고있다니. "
다시한번 아버지는 커다란 손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내 가늘게 떨리던 아버지의 눈은 가라앉았고, 그는 다시한번 내게 강조하여 말했다.
"마지막이다. 니가 네 말대로 종군사역가가 된다면, 단 한푼도, 단 일말의 지원도 해줄수없어. 그냥 꺼져버려. 하지만 명예롭게 블루아가(家)의 기사로서 종군에 참여하게 된다면, 필요한 장비는 물론 종자와 여비까지 너에게 주겠다. "
그리고 내 말을 가로막으며 그는 재차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 이상으로 너에게 호의를 보일거라 생각하지마라. 가문에 먹칠을 한다면 네가 지옥에서 활활타기를 온종일 예수그리스도께 기도하마."
차갑게 내던져진 바닥에서 나는 그대로 엎드렸다. 두손을 나란하게 펴고, 차가운돌바닥에 왼쪽뺨을 붙이고서
세상에 한분뿐이신 하나님께 물었다. 주님께 간청드리건데, 어째서 이토록 저를 외면하시나이까.
어째서 제게 이 길을 허락해주지 않으시나이까.
만약 이길이 제 길이 아니라면, 주께서 이길이 제길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그 뜻을 따르겠나이다.
하지만 만약 이길이 제 길이라면, 이것이 주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면, 제게 이적을 행하옵소서..
" Frère! (동생아!)"
친숙한 목소리였다. 하나뿐인 나의 형. 블루아백작가(家)의 후계자이자 총애받는 아버지의 아들.
"기도를 방해했다면 미안하다. 단지 네게 알려줄것이 있어 왔다."
"괜찮아. "
그는 머뭇거리며 그답잖게 팔짱을 끼고서 한참을 뜸들였다.
그리고 이내 결정했다는듯 와인을 마시고서 나에게 말했다.
"기억나니, 어렸을때 우린 종종 전쟁놀이를 하며 지냈지. 대장간의 프랑수아, 목수집의 레니비에. 아버지께서 그아이들과 노는것을 보시고 우리를 한번 가두어버리신 이후로는 나는 그들과 놀지않았어. 하지만 난 봤단다. 그때 네가 가족몰래 그들과 만나 여전히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위그와 검술연습을 할때에 너는 주교와 함께 성서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
그는 목이탄다는듯 다시한번 와인을 들이켰다.
"우리의 길이 다르다는것을 잘 알고, 우리가 생각하는것과 이해관계에도 큰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 사랑스런 동생아. 나 역시 마지막으로 묻겠다. 정녕 기사도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는 너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보거라. 있을지모를 성전에서의 죽음이 네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어 두귀와 두눈을 막아버린것이냐?"
"아니. 내가 만약 그것이 두려웠다면, 그곳에 가려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을꺼야. 단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싶어. 그들을 보고 그들을 겪고,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진정한 성전과 성지의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천국으로 향하는 순교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마지막 유언을 기록하고싶어. 그들의 일대기와 그들의 역사는 후세에 저 잔악한 이교도들의 모습들을 전해줌과 동시에 귀감이 될거라 확신해. "
그는 이제는 암흑으로 뒤덮인 오른눈의 눈두덩을 만지며 말했다.
"끊임없는 전쟁은 내 오른눈을 앗아갔지. 그 전까지 나는 패기에 어쩔줄 몰라하는 한 사람의 젊은이었다. 전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적을 베느냐가 항상 술자리의 주된 안주거리였고, 찌그러지고 더럽혀진 갑주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오른눈을 잃고서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칼과 비명, 함성, 약탈.. 그 너머에 있는 어떠한 것을 이 잃은 오른눈으로 볼수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는 단한번도 꿈꿔보지못한 신의왕국에 대한 갈망. 하늘에 있는 천국의 왕국에 대한 갈망이었다. "
말문이 막혀왔다. 더이상의 말은 불필요했다. 형은 나를 으스러지듯 껴안았지만, 어느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많은 것보다 아버지와 내가 한가지 다른점은, 난 너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내 동생아."
그리고 곧 묵직한 자루가 탁자위에 금속음을 내며 놓여졌다.
"말과 종자를 마련해뒀다. 충분치는 않지만 이정도면 성지까지 가는데 지장이 있진 않을것이다. 새벽에 출발하거라. "
숨이 턱 막혔다. 계시인가?.. 이것이 주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길이란 말인가?
"금은 어머니께서 마련해주셨다. 내가 한것이라곤 고작 말과 종자일뿐이야. 성지로 가는 길은 복잡하진 않을것이다.
남동쪽으로 난 길을 향해 툴루즈를 거치고 프로방스와 로마를 거쳐 메시나로 가거라. 그곳에서 수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너는 성도로 갈수있을 것이다."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내 고개는 밀려오는 벅찬 감동과 곧 떠나야할 정든 땅을 사이에 두고 한없이 떨구어졌다.
수많은 미련들을 제쳐두고서, 진정으로 인생에 뛰어들 준비가 비로소 완성된것이었다.
아아..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인가.. 내 심장은 강하게 고동치며 성도를 향하여 첫걸음 내딛을 준비가 되었다.
이제 온전히 주에게 기대어 이 길고길 여정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말고 더이상의 준비는 남아있지 않다.
부디 저와 함께하소서..
-언젠가 한번 중세나 십자군을 주제로 소설을 써보고싶단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아 심심풀이하여 프롤로그를 써봅니다.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고,
본편은 혹시나 한분이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신다면 시간나는데로 한편씩 써보겠습니다.
본 글은 어느정도의 역사적배경을 바탕으로 두고있으나, 허구의 인물이 등장 합니다. 그러나 아예 역사자체를 바꾸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큰 흐름에따라 써보며, 전쟁과 그 경과에 관한 글을 써나가기보다, 전쟁속에서의 인간애, 전쟁 한가운데에 서있는 인간으로써의 감정들과 권력암투와 음모등을 배경으로 써나갈 구상입니다.
첫댓글 (아버지와 내가~) 틀린 점은 -> 다른 점은
십자군 배경이라니. 기대되네요
새로운 재미가 오는군요.
ㄷㄷㄷ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연재를 해야겠군요..
재밌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