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되었다.
만산이 진초록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고향 집에 내려온 영섭은 갑자기 혼자 산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간단히 배낭을 꾸려 메고 감악산에 올랐다.
군에 입대를 얼마 안 남기고 보영과 오른 후에 감악산 등산은 처음이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영섭의 인간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산은 거기에 그렇게 변함없이 있다.
바위는 그곳에 그냥 서 있고 나무들도 옛 모습 그대로이며 산새 소리도 물소리 바람 소리도 꽃 내움도 옛날과 다름이 없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며 보영과 같이 손잡고 오르며 하던 이런저런 행동들이 생각이 난다.
정상에서 그때 앉았던 자리에 앉은 영섭은 그녀가 해 가지고 왔던 여러 가지 맛있던 음식들과 보영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며 취하던 이런저런 동작이 아른거리고 재잘거리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음식을 집어주며 먹으라고 권하며 수줍어하며 미소 짓던 보영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남의 여자가 된 여인
아련했던 추억에 젖어 있는 영섭에 귀에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노랗고 탐스러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한 소쩍새. 그 새가 그렇게 봄부터 피나게 울어야 한 송이 국화꽃은 피는가?
그리고 누이는 머~언 먼 뒤안길에서 돌아와 겨울 앞에 서는가?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이 된 나라를 그리워하며 울다울다 죽은 촉나라 망제의 혼이라는 소쩍새, 그 소쩍새가, 밤에만 운다는 소쩍새가 이 한낮에 우는 까닭이 무엇인가.
돌아갈 수 없는 옛날에 대한 그리움이 여울지는 영섭의 마음에 울리는 한낮의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무엇을 뜻함인가.
믿었던 법령에게 배신당한 망제처럼 상처받은 영섭의 마음을, 노란 국화꽃같이 피어나던 영섭의 못 이룬 사랑을 위로함인가? 애달아함인가?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고 남은 사람은 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간 사람은 남은 사람을 못 잊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애달파 함인가?
방황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늘 손을 잡아 준 사람
그 선을 잡고 설 수 있던 자기
그 사람이 진정 자기를 사랑한 사람이고 자기가 사랑한 사람이 아닌지
희수 대한 사랑은 현영과의 감정 대결에서 이기고픈 생각이 앞섰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지금은 남의 아내가 되어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이제야
깊은 속 그곳에서 포말이 일어난다.
후회와 같은
그러나 미망에서 깨어 다시 들은 소쩍새의 소리는 건넛산 깊은 숲속에서 아련히 들리는 뻐꾸기 소리다.
옛날의 환상에 젖어 있던 영섭이 뻐꾸기 소리를 소쩍새의 소리로 들은 것이다.
영섭에 입에서 허허로운 웃음이 인다.
32
새해가 되면서 태만과 보영의 부부싸움은 더 심해지고 막혔던 물줄기가 한번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는 전에 한 태만의 말대로 한번 싫어지기 시작하면 돌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감정인지 아니면 태만의 성격인지 태만이 자기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까지 했던 보영을 두고 바람을 피더니 나중에는 공공연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집으로까지 끌어들인다.
어쩌면 영섭을 만나려 다니는 보영에 대한 시위인지 모르겠다.
밖에서는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좋으니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것만은 삼가 달라는 보영의 말에는 나는 누구처럼 숨어서 딴짓하지 않는다고 반박을 한다.
그래서 자기도 영섭을 만나지 않을 터이니 당신도 여자관계를 끊으라는 보영의 말에 왜 전에 내가 그렇게 말할 때는 안 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내 마음을 알겠느냐?
그렇지만 너무 늦었고 또 더 이상 당신에게 매여 전 같이 전전긍긍하며 살기 싫다는 태만의 말에도 한 달여간을 정시에 퇴근하고 보고 싶은 영섭도 안 만나며 가정을 지키려고 보영이 노력했지만, 태만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참고 견디던 보영은 드디어 갈 데까지 다 갔다고 생각하고 태만에게 이혼을 청하게 된다.
상황이 거기까지 가자 태만이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며 다시는 안 그럴 터이니 이혼만은 하지 말자고 보영을 잡았으나 이미 서로에게 정이 떨어진 상태로 매어있던 두 사람에게 다시 파탄이 온다.
두어 달을 별일 없이 잘 지내던 태만의 외도가 더 심해지며 다시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
한번 외도를 해본 경험이 태만을 강하게 유혹하는 모양인지
아니 어쩌면 태만의 정욕이 한 여자에게만 머무를 수 없는 모양인지
이제 바람을 피우며 잘못을 저지르는 태만이 보영에게 반찬이 맛이 없다는 둥 코을 골아 잠을 못 자겠다는 둥 저녁에 영섭을 만나느라 집에 오는 것이 늦었느냐는 둥 말이 되지 않는 일로 공연한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하고 그것을 빌미로 밖으로 나가 여자와 같이 지내느라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고 한다.
마침내 더 갈 수 없는 한계에 다 달은 이들은 한여름이 시작되던 6월 어느 날 드디어 파국에 이른다.
합의 이혼을 하고 법원 정문을 나서는 보영은 태만과의 결혼식 전날 영섭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너무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냐?⌟고 영섭이 책망하고 원망하는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것을 다시 한번 떠 올린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오늘과 같은 결과를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느낌이 이렇게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그 느낌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는 운명적으로 영섭과 자기의 영혼이 어떤 꼭지점에서 만날 것 같은 아니 만난 것 같은 기대감이 들며 영섭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첫댓글 즐~~~감!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무혈님!
다락방님!
이초롱님!
행복한 왕비님!
구리 천리향님!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좋은 꿈꾸세요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