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 부부가 신혼여행을 떠날 즈음,
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나눌때,
사돈댁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하시는 한 말씀이,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는데,
며느리 한테 잘 좀 해주시라고 하신다.
무덤덤하게 사무적인 인사를 하는거 같은 인상을 주었을 소생의 타고난 언행에 비추어 본다면,
외동딸을 시집 보내는 어머니의 걱정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나, 대 놓고 요청을 하니 난감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잘 좀 보살펴 주세요라고 맞불을 놓을 수도 없고.
그러나, 며느리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닭살 오르는 장면을 연출하기에는 체질이 아니니 어색하기만 할 것이고,
쿨하게 금일봉을 건네면서 용돈이나 하라고 폼을 잡기에는 형편이 되지 않으니,
자주 찾아가 술상 내오라고 귀찮게 안하고, 생활비 좀 보태주고 용돈이나 좀 주었으면 하고
손 안벌리는 거나 다행으로 알아라고,
아들 둔 것이 유세였던 과거의 뻔뻔한 노인네 처럼 큰 소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 일이란게 관 뚜껑을 닫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더구나 소생은 스러져 가는 별이요, 어쨋든 며느리는 떠오르는 달의 나이가 아닌가?
큰 소리 쳤다가 나중에 불가피하게 물심양면 조금이라도 신세지는 날이 온다면
무슨 낯으로 며느리를 대할 것인가?
헌데 우연히 소생의 생일 날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 불쑥 옛 직장 후배가 찾아와 인사를 하며,
초대장을 건네는게 아닌가? 빨간 겉 봉투에 VIP 초대권이라고 금박으로 써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소규모 고메 스타일 브랜드 음식점 체인을 성공시킨 후배가,
이번에는 좀 큰 투자자를 모시고 서울에 국제적 체인인 아메리칸 프라임 립 스테이크 하우스를 열려고 하는데,
개업인사 차 한번 모시겠다고 하던 기억이 났다.
며느리 앞에서 받고 열어보았으니, 초대권 두매를 들고 마누라랑 가자니 웃 사람의 폼이 안 날 것이고,
자식 부부에게 그 자리에서 줘 버리자니, 후배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우물쭈물하다,
집에 돌아와 마누라 한테 아메리칸 스테이크는 양이 많을테니,
우리 노인네 부부는 한장으로 둘이 나누어 들기로 하고, 자식 부부를 불러서 일인 분만 계산하면
체면치레가 되지 않겠느냐고 묘수를 내었더니, 좋다고 한다.
소생은 원래 소고기는 밥 반찬이나 국이나 끓여 먹는거로 치부하는 사람이기도 하려니와,
주머니가 넉넉한 적이 없었던지라, 스테이크를 내돈 주고 사 먹은 적은 십년에 한번 정도 있을까 말까하는
희귀한 행사인데다, 마침 마누라가 랍스터를 먹어 본적이 없다고 해서 부페에서 먹어 보았을텐데 하면서,
요새는 흔해져서 많이 싸졌고 지나가다 보면 전문점이 많으니 언제 한번 갑시다하고 약속했던 말이 기억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 스테이크 하우스에 예상한대로 랍스타 테일도 메뉴에 있는게 아닌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일석이조가 되겠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서울의 중심이 된 삼성사옥 건너편에 물결치는 외관의 빌딩으로 유명해진 건물의 삼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이
얇은 지갑걱정을 하는 사람은 아예 엄두를 내지 말아라는 무언의 분위기를 잡아,
짠돌이가 공짜 이인분에다 유료 일인분만 추가 하고 시치미를 떼게 하지는 않을 뿐더러,
이런데 와서 레드와인 없이 무료 초대권에 있는 메인코스만 달라고 해 생고기를 먹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와인 한병. 스프 이인분. 마누라 입막음 용 럽스타 테일 하나, 커피와 차 각자 입맛대로 시키고 말았다.
원래 메인 보다 앞뒤의 사이드 디쉬와 후식이 비싼게 레스토랑이다.
어쨋든 이렇게 했으니, 며느리에게 잘 한 셈이고, 자식 면을 처 앞에서 세워준게 되지 않았을까?
집에 와 주부 본색으로 돌아 온 마누라가 계산이 얼마나 나왔느냐? 물어서,
그냥 부페 가격으로 디너 드셨다고 생각하시라고 하고 말았다.
몰라서 속기도 하지만,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며 사는게 인생살이 아니던가?
그리고 십년만의 행사요, 아들 내외와는 평생 한 번이 될지도 모르는 행사이니 만큼,
이왕 폼생폼사로 쏜 돈, 돈 계산은 하기 싫다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