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커다란 물줄기를 바꾼 두 천재,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는 스스로를 "북극과
남극"이라 칭할 만큼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과 작품 세계를 가졌던 이들이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는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하여 한 화면에 담는 '입체주의(Cubism)'의
선구자로, 기존의 전통적인 공간감을 거침없이 허물어버린 혁명가였다.
반면 프랑스의 마티스는 강렬한 색채로 감정을 표현하는 '야수주의(Fauvism)'의 거장으로, 치밀하고
우아한 색의 조화를 통해 시각적 평온함을 추구한 완벽주의자였다.
거침없는 도전으로 형태를 해체하는 피카소와, 치밀한 절제로 색채를 다스리는 마티스. 이들의 성격적
대비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심리전으로 이어졌다.
1906년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서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립이 시작되었다. 20대의 혈기 왕성한
피카소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르던 열두 살 연상인 마티스를 보며 묘한 경쟁심을 느꼈다.
마티스가 색채의 혁명을 일으킨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피카소는 "마티스는 화가라기보다 장식가에
불과하다"며 그의 화려함을 깎아내렸다.
마티스 역시 피카소의 기괴한 해체를 보며 "정신 나간 그림"이라며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두 사람의 예술적 대결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06년과 1907년 사이에 탄생한 두 작품이다.
마티스는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에서 유려한 곡선과 조화로운 색채로 목가적 낙원을
그려냈다.
이 작품이 큰 주목을 받자, 피카소는 이듬해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로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마티스의 조화로운 곡선에 맞서, 피카소는 날카로운 각도와 파편화된 형태로 다섯 명의 누드를
화면에 배치했다.
아프리카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기괴한 얼굴들은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불안과 긴장감을
자아낸다.
마티스가 '조화'로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면, 피카소는 '해체'로 그 문을 부숴버린 것이다.
실제로 마티스는 이 그림을 처음 보고 "현대 미술을 조롱하려는 것"이라며 분노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907년 서로의 작품을 교환하기에 이른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행동의 이면에는 '상대의 장단점을 파헤치겠다'는 지독한 예술적 탐구심이 깔려 있었다.
비난하면서도 상대가 가진 그 '무엇'이 자신의 예술에 위협이 될 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환 방식은 여전히 치졸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작품 중 '가장 못 그렸거나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작업실에 상대의 형편없는 그림을 걸어두고, 그 약점을 매일같이 관찰하며 정신승리를 하고자
했던 인간적인 질투의 발로였다.
피카소는 심지어 마티스의 그림을 과녁 삼아 화살을 쏘는 시늉까지 하며 그의 존재를 의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적 충돌과 유치한 질투는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가장 강력한 '창작의 연료'가
되었다.
피카소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하며 기존의 공간감을 파괴해 나가자, 마티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수했다. 형체를 파편화하는 대신, 불필요한 장식과 입체감을 과감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사물의 형태를 극도로 단순한 선으로 줄여나갔고, 마침내 '색채 그 자체'가 곧 공간이자
형태가 되는 절제된 미학의 정점에 도달했다.
비난하면서도 상대의 화법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 했던 이들의
'적대적 공생'은 미술사의 커다란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여기서의 변곡점이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복제하던 오랜 '재현'의 전통을 끊어내고, 작가의
주관으로 형태와 색채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현대 미술의 탄생'을 의미한다.
결국 피카소와 마티스의 끊임없는 충돌은 현대 미술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 되었다. 두 천재의
자존심 대결이,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현대 미술의 자유와 상상력의 토대가 된 것이다.
<오늘의 팝송> Celos / Marc Anthony
Celos(질투)는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는 남자에대한 강렬한 질투와 그에따른 고통을 노래한
라틴 발라드다. 2001년 발매된 앨범 Libre에 수록되었다.
이곡을 부른 Marc Anthony(1968~)는 뉴욕 출신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으로, '살사의 황제'로
불리며 라틴 음악계 최고의 남성 보컬리스트로 손꼽힌다.
그래미상 및 라틴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에 1,2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https://youtu.be/mg-_TN2nLxo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의친구님.
좋은 하루 되세요...
스페인의 피카소
프랑스의 마티스의
자존심대결
서뢰의 그림의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했죠.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자존심 싸움은 심리전이 될수밖에 없지요 ㅎ
그리고 위대한 창작품이 탄생되니
인간적인 유치한 질투도 찬작의 연료가 될수있으니
그림 천재들의 치졸한 질투는 봐주어야 겠어요 ㅎ
두 사람의 그림 교환 방식도 정말 재미있네요
단점을 찾아내기위해 가장 못그린 그림을 서로가 가져갔다니~ㅋㅋ
미술사의 변곡전을 만들어낸 피카소와 마티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피카소나 마티스같은 천재들도
마음씀씀이는 우리 보통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캔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