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일을 끝내면서 생긴 황혼이 흰색 눈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방금 사랑하는 소년을 떠나보낸 한 소녀는 창을 통해 하늘과 산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사라지고 바람이 별과 달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던 이솔렛은 창문을 닫고 들어갔다. 책상에는 다프넨이 남겨둔 책이 올려져 있었다. '가나폴리 이주의 역사'
그녀의 첫사랑이 남긴 선물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기에 이솔렛은 코코아를 가져와서 책을 폈다.
종이가 사락 사락 소리를 내면서 이솔렛을 충격에 빠트렸다.
달 여왕은 섭정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섬 사람들이 지식을 쌓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가나폴리 왕국의 유산을 파괴했다.
다프넨의 추신에 따르면 섭정은 그녀의 아버지를 죽음에 몰아넣고 에키온을 충동시켜 장서관을 불태운 것은 물론 이솔렛을 견제하기 그녀의 연인을 자신의 딸과 약혼시키려 했다.
이솔렛의 손이 떨리는 가운데 그녀는 생각했다.
왜 다프넨이 이것을 남겼을까?
그는 이솔렛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한동안은 슬프겠지만 이별의 아픔은 언젠가 추억으로 남을테니까.
그럼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섭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섭정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섬을 떠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금기를 새기지도 못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기존에 새긴 금기도 풀 수 있을 것이다.
금기가 깨지면 다프넨이 신성찬트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섬을 나가 다프넨과 만나는 것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들은 산을, 강을, 바다를 오가며 신성찬트 수업을 하고 같이 차를 마실 것이다.
행복한 상상은 다프넨이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다음 날에 이솔렛은 마을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그녀의 눈길을 피하면서 속닥거리고 있었다. 이솔렛은 나우폴리온의 집을 찾아갔다.
나우폴리온과 식사를 하며 이솔렛은 말했다.
"다프넨이 떠난 것 때문에 소란스러운 것 같네요."
"그것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리리오페가 아프다고 한다."
이솔렛은 나우폴리온과 작별 한 뒤 리리오페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섭정이 이솔렛을 노려보았다.
"무슨 일로 온거지?"
"따님이 아프다고 해서 병문안을 왔습니다."
"자네와 리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아는데."
"차기 섭정이 되실 분과 사실상 유일한 검의 사제 후보인 제가 사이가 계속 좋지 않으면 언젠가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갈등이 해묵어서 풀기 어렵게 되기 전에 화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수긍한 섭정이 자리를 비키기 위해 일어나자 의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며 소리를 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솔렛은 리리오페를 찾아갔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통의 화제 거리는 있었다.
다프넨. 이솔렛은 아버지가 죽은 후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가운데 자신을 찾아온 다프넨이 어떤 의미 였는지 리리오페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다프넨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었고 가족들의 유품을 노리는 암살자 들에게 쫓겨 섬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그의 상처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음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리리오페도 자신의 속마음을 꺼냈다.
대륙을 떠나 섬에 온 다프넨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돕고 싶었고 자신이 아니라 이솔렛만 바라보는 것에 질투가 났다고.
병이 나은 리리오페는 이솔렛의 집을 찾아갔다. 외출중인 이솔렛을 문앞에서 30분 쯤 기다리자 그녀가 보였다.
이솔렛이 문을 열어주자 리리오페가 집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 한권이 올려져 있었다. 장서관이 불탔기에 그 책은 분명 다프넨이 살린 책일 것이다.
리리오페가 말했다.
"이솔렛, 이 책을 한번 읽어도 될까?"
이솔렛이 허락하자 리리오페는 책을 한줄 한줄 꼼꼼히 읽고 충격에 빠져서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다시 이솔렛을 찾아온 리리오페는 자신이 어떤 섭정이 되어야 할지 알겠다고 말했다.
"이솔렛, 나와 같이 이 거대한 거짓말을 무너트리자."
몇달 후 섭정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리리오페의 대리청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책을 장려하고 스콜리의 교육 내용을 대폭 강화했다. 음율 대신 신성 찬트를 이솔렛이 가르치게 되었고 티엘라와 티그리스가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었다.
나우폴리온이 쓰러지자 리리오페는 대륙에 나가서 치료약을 찾아오라고 이솔렛에게 명했다. 치료약을 얻기 위해서는 대륙인의 도움이 절실했고 이를 기꺼이 해줄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와 그의 연인이 만나게 할 방도를 마련한 리리오페를 바라보며 이솔렛은 말 없이 미소지었다.
이솔렛이 떠나자 섭정은 은밀하게 에키온을 불렀다. 그는 최근 리리오페의 행보가 마을에 들지 않았다. 에키온의 도움을 받아 섬 반대 쪽의 동굴로 들어간 섭정은 미리 준비해 온 소원거울을 설치했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75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
첫댓글 자기전 읽을것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