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렛은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으며 스콜리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과제로 내준 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솔렛의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신성찬트와 티엘라를 가르치는 조건으로 책을 읽게 된 아이들은 4년 동안 책에 재미를 붙였고 그들의 즐거움은 어른들에게 전염되었다.
평생 무력만을 숭상하던 그들이 책을 읽게 되면서 4년 전에 있었던 장서관의 화재는 달의 섬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으로 받아 들여졌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서 상념에 잠긴 이솔렛에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또 다프넨 생각하지?"
뒤를 돌아보니 리리오페가 빙그레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4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꽃처럼 웃을 수 있는 거냐?"
"그냥. 애들이 책을 읽는 것을 보니까 다프넨이랑 신성찬트 수업을 하던 것이 생각나서. 산속의 계단을 올라가 보면 먼저 온 다프넨이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도 곧 끝나잖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책을 갈구하고 있으니 '가나폴리 이주의 역사'를 주면 헐레벌떡 읽을 테고, 헥토르도 다프넨에게 아직 빚이 있다면서 도와주기로 했잖아."
"그래, 그렇지"
"난 이제 너가 빨리 다프넨을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게 너랑 다프넨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니까."
에키온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변해갔고 이솔렛의 권위는 차기 섭정인 리리오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솔렛과 리리오페가 친하게 지내면서 섬을 개혁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몰락할 것이 분명했다.
에키온은 형인 헥토르를 찾아갔다.
"형, 이대로면 섭정은 무너지고 달의섬은 대륙에 개방될 거야. 이솔렛과 리리오페 그년들이 위대한 옛 왕국의 후손들을 야만인 손에 갖다 바칠 거라고! 형은 그렇게 되는 것이 보고싶어?"
"에키온"
헥토르의 눈빛을 본 에키온은 믿기 싫었다. '설마...설마...'
헥토르는 말 없이 일어나 방안에 들어간 뒤 책 한권을 가져와 에키온에게 건넸다.
"에키온, 섭정은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대륙에 있던 '가나폴리 왕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고 달 여왕은 그 진실을 숨기기 위해 섭정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거짓말 마! 우리가 저 대륙 야만인의 후손일리가 없어!"
"에키온, 나는 실버스컬에 출전하기 위해 대륙에 나갔었다."
"대륙을 여행하는 동안 달의섬에서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보다 좋은 것을 먹고 여기보다 훨씬 편한 곳에서 잠을 잤지. 실버스컬 경기장은 달의섬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규모였다."
"에키온, 우리는 대륙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져 있다. 기껏해야 신성찬트와 티엘라, 티그리스 정도만 우위에 있는데 그것도 이솔렛과 다프넨이 다음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명맥이 끊어지겠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현 섭정인 스카이볼라다."
그말을 듣고 절망한 에키온은 섭정을 찾아갔다. 섭정은 병이 깊어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아직 어린 에키온 보다 훨씬 노련했다.
"걱정마라. 4년전에 옛 왕국의 영토에 '악의 무구'를 보낸 것을 잊었느냐? 지금쯤 대륙에 큰 변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달 여왕의 전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들켰다고요!"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대륙은 머지 않아 멸망할 것이고 달의 섬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지. 우리가 옛 왕국의 후손이고 달 여왕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증거 말이다!"
산속에 사는 소녀의 연인이 쓴 편지가 찬트가 되어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 소녀의 머리카락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물들인 금색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이솔렛이 책상으로 걸어가 앉았다.
내일이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솔렛은 자리에 앉아 다프넨을 생각했다.
그를 떠올리자 신성찬트가 자연스럽게 흘려나왔다.
'이 세상의 비밀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네.
길을 걸으면서 밟히는 흙이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장애물을 치운다.
밤하늘의 별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나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친구가 말한다.
너랑 같이 이 길을 걸어가겠다고
모든 진실을 밝혀내어, 그를 만나러 가자고'
찬트의 마력이 이솔렛의 집을 감싼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종이에 글씨가 써진다. 복사된 '가나폴리 이주의 역사' 수십권이 마을에 있는 집들로 날아간다.
이솔렛은 잠이 들었다.
다프넨과 학교에 다니고, 숙제를 하고, 주말이면 마을에 나가 돌아다니는 꿈을 꾸면서.
보리스는 불안한 얼굴로 선실 안을 바라보았다.
티치엘이 새로 만든 마법약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티치엘, 이번에는 또 무엇을 만든거야?"
"아, 보리스 왔구나! 이건 바로!"
"냅둬. 보나마나 재료 한 두개 빼먹어서 쥐나 바퀴벌레로 변신시키는 약을 만들었겠지."
"막시민! 이건 모기를 쫓는 약이거든! 안되겠다. 너 먼저 발라줘야 겠다."
"어? 잠깐"
막시민이 줄행랑을 치자 티치엘과 조슈아가 우와와와 하면서 쫓아갔다.
이 광경을 본 루시안이 외쳤다.
"술래잡기 하는 거야? 재밌겠다!"
막시민은 루시안의 슬라이딩 태클을 빙글 도는 것으로 피하면서 주전자를 던져 조슈아를 맞추고 티치엘의 마법 올가미를 몸을 젖혀 피하는 것과 동시에 밧줄을 잡아 빼앗은 뒤 티치엘을 묶어버렸다.
그렇게 도망친 막시민은 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숨을 돌리던 막시민의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막시민이 오한에 떨면서 뒤를 돌아보자 쥬스피앙이 그를 내려다 보고있었다.
"네냐플에서 낙제를 했으면 조수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야할 것 아니냐? 원래 조수 몸에다 마법약 실험도 하는 법이다. 근데 너가 뭘 잘했다고 도망을 쳐?"
쥬스피앙이 막시민을 끌고 나가자 친구들이 양팔을 잡아 꽁꽁 묶었다.
"그러게 아무말 안하고 있었으면 편했잖아."
"아냐, 이건 음모야! 읍읍읍."
마법으로 막시민의 입을 봉인한 티치엘은 마법약을 조슈아에게 넘겼고 조슈아는 막시민에게 약을 알뜰살뜰 발라주었다.
"펑"
연기가 사라지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청개구리 한마리 였다. 막눈이(막시민+개구리 왕눈이)는 티치엘을 노려보며 외쳤다.
"대체 거기 뭘 넣은 거야?!"
곰곰히 생각하던 티치엘이 아!하고 말했다.
"트라바제스에서 나는 잡초를 넣었어야 하는데 까먹었다. 헤헤."
막눈이가 뛰어올라 철썩! 하고 티치엘의 따귀를 때리자 쥬스피앙이 외쳤다. "저놈 잡아!"
그렇게 그들이 방을 빙글빙글 돌면서 추격전을 벌일 때 문이 열리고 이스핀 샤를이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 꺄아악!"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소녀 샤를르트는 에투알에서 배운 돌려차기로 막눈이를 걷어차 금이 가득 들어있는 통으로 날려버렸다.
루시안이 경악하며 외쳤다.
"막시민! 거기 엔진이야!"
막눈이가 빠져나가기 전에 위에서 쏟아진 금들이 막눈이를 가두었다.
"막시민!"
황급히 달려간 이스핀은 손에 상처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들을 치운 뒤 막눈이를 꺼냈다.
손에 올린 청개구리를 바라보며 이스핀이 말했다.
"막시민...괜찮아?"
한바탕 쏘아 붙이려던 막시민은 이스핀이 울먹이는 모습을 보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와! 비행선이 멈췄다!"
루시안의 외침을 들은 친구들이 황급히 밖을 내다 보았다.
정말로 비행선이 정지해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던 조슈아는 아까 이스핀이 막시민을 구하기 위해 금을 파내서 바닥에 던진 것과 과거 미의 극치호를 타고 여행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냈다.
하얗게 질린 조슈아가 엔진으로 달려가는 사이 미의 극치호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78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