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를 다친 후 수년 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은 현 섭정, 스카이볼라.
달의 섬을 지배해온 그의 권위는 공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찍어 눌렀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가는 잡아먹힐 것이라는 피식자의 본능.
섭정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들 중 누구도 옛 왕국의 이름을 몰랐으니 그렇게 믿을 수도 있겠지. 우리 조상이 살던 옛 왕국의 이름은 가나폴리 였고 그들이 살던 땅은 지금 필멸의 땅이라고 불리는 대륙의 사막일세."
형법을 집행하는 검의 사제, 나우폴리온이 외쳤다.
"지금 섭정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우리 들의 조상이 대륙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달 여왕의 전설이 날조된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멍청하군, 나우폴리온. 우리가 대륙 출신인 것이 바로 달 여왕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을 어째서 모르는가? 위대한 가나폴리는 마법사들이 고위층을 차지했네. 그들은 태양의 힘을 가져와서 마법을 사용했고 그 힘으로 삶을 이어갔지. 그래서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그들이 모두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을 잊었기에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는 걸세!"
섭정은 에키온이 가져온 물 한 잔을 마신 후에 말을 이었다.
"가나폴리 왕국에서 살아남은 사람 들은 달 여왕을 숭상하던 우리 조상 뿐 이라는 것을 자네들도 이제 알지 않는가? 그것은 오로지 달 여왕이 우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일세! 태양을 숭상하던 저 이단들은 달 여왕의 분노를 사 아무도 구원 받지 못했지.
그리고 자네들은 지금 대륙에 가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군. 대륙인 들은 야만인 들일세.
가나폴리의 이단 들의 발 밑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던 야만인 들이란 말이야.
그런 야만인들과 달 여왕의 선택을 받은 우리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건가?"
리리오페가 손을 들고 사람들을 둘러본 후에 말했다.
"아버지는 대륙인 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럼 다프넨은 뭐가 되는 거죠? 한낱 야만인 따위가 신성찬트를 계승하고 차기 섭정의 부군으로 지목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어리구나, 리리오페. 그것은 그가 야만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신성찬트는 태양의 힘을 이용하는 마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달 여왕의 후손들은 그 힘이 점차 사라지게 하는 동시에 옛 왕국을 잃지 않기 위해 명맥이 완전히 끊어지게 둬서는 안된다는 의무가 있지. 따라서 야만인인 다프넨을 통해서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만든 것이란다."
"그리고 다프넨과 너를 약혼 시키려 한 것 역시 위대한 달 여왕의 사랑을 받는 자 로써 상처 입은 야만인을 도와줄 것을 명령받았기 때문이지. 본디 동정이란 가진 자만이 줄 수 있는 것이란 것을 알아두렴."
이솔렛이 말했다.
"당신의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옛 왕국의 유산이 완전히 소실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프넨에게 신성찬트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하지만, 옛 왕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논리학, 음악, 미술, 수학, 과학 등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이 소실되는 것은 당연할 터,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왜 스콜리에서 가르치도록 하지 못하게 하십니까?"
"이솔레스티 자네는 세상에 대한 판단력을 좀더 길러야 할 것 같군. 자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버리지 않고 쌓아 두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원래 쓸모 없는 것들은 버려야 새 것을 채울 수 있는 걸세. 자네가 말한 논리학, 음악, 미술, 수학, 과학 등이 가나폴리의 멸망을 막아냈었던가? 그 참혹한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을 구해낸 것은 그런 학문 따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의 마법'과 티그리스와 티엘라를 비롯한 극히 일부의 검술 일세. 자네는 자네가 방금 말한 것들이 우리와 새로운 세대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이솔렛이 반박했다.
"핑계 대지 마십시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에키온을 시켜 장서관을 불태우지도, 제 아버지를 죽게 하지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증거 있나?"
"네?!"
"증거가 있냐고 물었다."
"하, 생각보다 훨씬 뻔뻔하시군요. 제로 씨가 말씀하시길 당신이 찾아와 장서관을 없애라고 말한 것을 거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재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검의 사제님께서 제 아버지가 죽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골모답 토벌에 나서게 압박했다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섭정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겨우 그것이 증거라고 말하는 건가?
첫째, 에키온이 장서관에 불을 질렀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만약 그가 방화범이면 이미 익사형을 당했을 거네.
둘째, 설사 에키온이 방화를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내 지시라는 증인이나 증거가 있나?
마지막으로 세번째, 섭정으로써 마을에 나타난 괴물을 막기 위해 검의 사제를 보내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란 것을 모르는 건가? 그리고 자네와 현 검의 사제가 친한 것을 섬 주민 모두가 아는데, 자네와 검의 사제가 짜고 거짓말을 지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논쟁이 격화 되자 지팡이의 사제인 데스포이나가 손을 들어 시선을 집중시킨 후에 말했다.
"아무래도 잠깐 쉬면서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 이어나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점심을 먼저 먹은 후에 다시 모이도록 합시다."
필멸의 땅에서는 보리스와 친구들이 옹기 종기 모여 에피비오느 앞에 앉아 있었다.
보리스가 대표로 물었다.
"소멸의 기원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십니까?"
"소멸의 기원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4년전, '달의 섬'에서 봉인이 일부 풀린 악의 무구가 넘어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멸망이 확장되는 것을 막는 것 만으로도 한계가 있던 소멸의 기원에 구멍이 뚫리고 '풍요의 기둥'이 붕괴되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아이언페이스가 메타모르포시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풍요의 기둥이 붕괴되는 속도가 가속화 되고 있다."
조슈아는 달의 섬이라는 곳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물어보느라 보리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보리스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필멸에 땅에 들어온 악의 무구를 파괴하고 아이언페이스를 죽이면 자연스럽게 복구될 것이란다. 단, 문제가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이미 누군가 악의 무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를 죽여야만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풍요의 기둥의 붕괴를 늦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시민이 말했다.
"알겠으니까 그 방법이나 설명해봐요."
"풍요의 기둥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의해서는 다량의 마법재료와 신성찬트가 필요하다. 정확히는 찬트를 이용해 메타모르포시를 멈춘 사이 마법재료들을 이용해 기둥을 보수하는 거지. 물론 그것 역시 신성찬트로 해야 한다."
조슈아와 막시민이 보리스를 쳐다보자 낌새를 눈치챈 티치엘과 쥬스피앙이 조각상으로 변해 버렸다.
"보리스, 네가 해야 한다."
"에피비오노, 전 신성찬트를 사용하지 못 합니다."
"안다. 네 몸에 있는 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가나폴리의 마법사 들에게 그 정도 금기는 주사위 놀이에서 진 사람이 받는 벌칙 정도의 난이도일 뿐이다."
에피비오노는 보리스에게 다가와 머리카락 한 올과 피 한 방울을 뽑아 청동 그릇에 넣은 후 말했다.
"잠시 후면 네 금기가 완전히 풀릴거다. 그리고 아마 네 연인에게도 지금 그것이 필요한 것 같구나."
과거 공화국의 붕괴를 정확히 예측했던 한 소공작은 보리스에게 여자친구가 있을 가능성을 한번도 상정해보지 않았기에 어버버하다가 그것을 보고 한심해 하던 어떤 시골 거지에게 뒤통수를 얻어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엎어진 소공작을 바라보며 거지가 말했다.
"야, 숯가마 저 자식이 네냐플 교수들도 모르는 별별 이상한 것을 많이 알고 경험했다는 것을 잊어버렸어? 그 여자친구란 사람이 보리스 보다 훨씬 강하고 똑똑해서 숯가마 놈이 스승으로 모시는 거면 몰라도, 여자친구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공회당으로 가던 보리스의 연인은 귀가 간지러웠지만 옆에 있던 나우폴리온이 놀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가 어릴 때부터 나우폴리온이 그녀를 봐왔기 때문에 생각이 그대로 읽힌다는 것 이었다.
"누가 네 이야기를 하고 있나 보군"
"네, 그런것 같네요. 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너를 일이년 본 것도 아니고 벌써 십년 넘게 봐왔다. 그 정도도 못 알아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
그들이 공회당에 들어가자 리리오페가 다가와 자리로 데려가서 앉게 했다.
사람들에게 금기를 건 재단 중 하나가 무너진 것은 그때였다.
섬의 금기가 풀린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고 놀란 섭정이 데스포이나 사제에게 누구의 금기가 풀린 것인지를 물었다.
"다프넨에게 걸어 둔 금기가 풀렸습니다."
상식 밖의 사태에 당황한 섭정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륙인에게 걸어둔 금기가 풀리다니!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의 말은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반대편에 앉아있던 이솔렛에게는 섭정의 표정이 빤히 보였다.
찬스였다. 오전에 있었던 논쟁을 한번에 뒤엎어 버릴 찬스.
"데스포이나 사제님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다프넨에
걸어 둔 금기가 풀린 것이 이 섬에 있는 누군가의 개입에 의한 것인가요?"
"아니다. 그의 금기를 풀려면 얻은 지 얼마 안 된 다프넨의 머리카락과 피가 필요한 바, 여기 있는 누구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있다 해도 재단을 결계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사제들의 허가가 없이는 금기를 풀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대륙에 있는 누군가가 다프넨의 금기를 풀어주었다는 거군요."
"스카이볼라, 당신은 대륙인 들이 야만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프넨은 그들에 의해 금기가 풀렸고, 그것은 대륙 마법사의 마법 능력이 달 여왕의 힘을 파훼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말대로 대륙인 들이 야만인이라면 그것이 가능했을 까요? 방금 일어난 일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대륙인들이 야만인이라 섬과 격리시켰다는 역대 섭정들의 행동이 뻔뻔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머리 속이 하얗게 된 섭정이 제 정신을 찾기 전에 이솔렛은 말을 이었다.
"두 번째로, '가나폴리 이주의 역사'에 따르면 섬 바깥에서는 태양의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프넨의 금기를 푼 것이 태양의 마법이고 달 여왕의 힘은 그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사실입니다.
스카이볼라 당신은 방금 태양의 힘으로 만들어진 여러 학문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가르치지도 않고 사라지게 둔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달 여왕의 가호 조차 무력화하는 힘이 쓸모 없는 힘일까요? 그 힘이 없어서 이득을 얻는 자는 단 한명 뿐입니다. 달 여왕을 팔아서 권력을 유지하는 바로 당신 말입니다!"
에키온이 외쳤다.
"어디서 그런 망발을! 섭정 각하는 우리를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대륙 야만인에게 물든 이솔렛 당신이 우리를 모함하고 있어!"
"그래서 10여년 전, 골모답이 나타났을 때와 북쪽 마을에서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섭정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골모답을 죽인 것은 제 아버지가 사용한 티엘라이고 전염병으로 부터 사람들을 살린 것도 가나폴리에서 전승된 의학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태양의 힘을 이용한 것입니다.
달의 섬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달 여왕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태양의 힘만이 사람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섭정은 사장시키려 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사람들을 위한 일 이었을까요?"
리리오페가 이어 말했다.
"스카이볼라, 당신이 말했습니다. 너는 차기 섭정이니 네가 원하면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권력을 이용해서 이솔렛으로부터 다프넨을 뺏으라고. 그런 당신이 일리오스 사제에게 죽을 곳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말하면 그가 거절할 힘이 있었을까요?
저와 다프넨을 혼인시키려 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차기 검의 사제 였던 그와 내가 약혼하면 이솔렛은 고립될 테고, 그녀를 쉽게 제거함으로써 남아있던 위대한 옛 왕국의 유산을 없앨려는 수작이었습니다."
스카이볼라는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없었다. 공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는 거짓말을 일 삼은 쓰레기가 된지 오래였다.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눈 앞에서 다프넨에게 걸린 금기가 풀린 순간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었음을.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었다.
달 여왕의 군대.
이 순간을 대비해 양성한 그의 친위대가 저놈들을 처리하면 위기는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스카이볼라가 손을 들어 올렸지만, 식은 땀만 흘릴 뿐 손을 내려 친위대에 명령하지 못했다.
달의 섬의 경비대장, 헥토르가 섭정의 목에 검을 대고 말했다.
"스카이볼라"
" 당신을 '위대한 옛 왕국' 가나폴리에 대한 반역 혐의로 체포한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80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
첫댓글 님이 쓴건가요?
네
@최온유 👍🏻
연재 말머리 달면 좋을거 같아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