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을 가득 채운 질문에 감전된 보리스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녀와 나우폴리온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때, 설명해줄까?'
"그녀한테 직접 듣고 싶어."
친구들과 있을 때에도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던 보리스의 얼굴에 봄꽃 같은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저것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그의 마음은 조개의 진주 처럼 꼭꼭 숨어 있었기에 좀 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엔디미온이 다프넨의 즐거움을 마주한 것은 오직 그가 기억을 잃었을 때 뿐이았다.
그래, 이것은 귀여운 후손들의 권리다. 이솔렛은 다프넨을 보자마자 달려와 껴안을 것이고 어쩌면 입을 맞출 것이다. 나우폴리온은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프넨을 놀리고 다프넨은 나우폴리온에게 어릴 때처럼 떼를 쓰겠지. 그리고 그들은 방에 들어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면서 울고 웃겠지.
그들이 좋았기에 엔디미온은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그들의 미래를 위해 한 가지는 알려주어야 했다.
'다프넨, 너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어.'
보리스가 의아한 얼굴을 자신을 바라보자 엔디미온이 말을 이었다.
'너도 필멸의 땅에 악의 무구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겠을거야. 그것은 달의섬 북쪽에 있는 동굴에 봉인되어 있던 투구이고 4년 전에 스카이볼라가 봉인을 풀어 대륙으로 보냈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
'아니, 그것까지는 못 봤어. 하지만 그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거야. 워낙 에너지가 강력했거든'
"고마워, 엔디미온"
보리스는 엔디미온이 그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의 무구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윈터러 뿐 이기에, 목표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앞으로 큰 힘이 될 터였다.
보리스와 엔디미온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보리스가 말하면 엔디미온이 듣는 방식이었지만 유령 세계에서 만난 친구들의 근황을 엔디미온이 말해주기도 했다.
보리스가 필멸의 땅에 들어간 일, 네냐플에 입학한 일, 빌라 전쟁에 대한 이야기, 고향에 찾아가서 골모답을 처치한 이야기.
너무나도 할 말이 많았기에 그들은 다음에 다시 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엔디미온이 보리스에게 주사위를 달라고 했다.
주사위를 건네 받은 엔디미온이 손가락 1개를 접자 주사위에서 푸른 빛이 감돌다 사라졌다.
'이제 내가 보고 싶으면 주사위를 굴려서 부르면 돼.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올 테니까.'
"이제 가는 거야?"
'대륙을 한번 구경해 볼려고. 하지만 너는 내 친구니까 꾸준히 지켜볼거야.'
보리스가 손을 흔들어 주자 엔디미온도 손을 마주 흔든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동물 들조차 숨 죽이고 있는 새벽의 숲에 가면을 쓴 사람이 서 있다. 남성의 체격을 가진 그 사람은 손을 쥐었다 펴며 비취반지성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걷히며 찬란하게 빛나는 나뭇잎 사이에서 하나, 둘 반딧불이가 나타난다. 이윽고 반딧불이가 수십, 아니 수백마리가 되어 그의 맞은 편을 비춘다.
그 빛을 바라보며 남성은 앞으로 나아간다. 나무에 달린 빛에 손을 대본다. 차가운 빛에 그리운 이가 떠오른다.
그래, 그때 네가 나를 끌고 나갔었지. 반딧불이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말하는 너는 배시시 웃고 있었어. 반딧불이에 손을 대고는 뜨겁지 않다고 신기해 하면서 나도 만져보라고 내 손을 잡았지. 그렇게 신나게 놀던 너는 나한테 업힌
채로 잠들었어.
동이 트면서 반딧불이가 점차 자러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자는 마지막으로 성을 바라본다. 이 성에서 자고 있을 너가 좋은 꿈을 꾸기를 기도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나우폴리온은 그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두 소녀를 바라봤다. 어제 그들은 나우폴리온에 집에 모여 음식과 술을 먹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 결과 정작 집주인은 맨 바닥에 누워 추위에 오슬오슬 떨면서 자야 했지만 그건 넘어가기로 하자.
노크 소리에 나우폴리온이 문을 열어주니 데스포이나 사제가 서 있었다. 집에 들어온 그녀는 자고 있는 이솔렛과 리리오페를 바라본 후에 이불을 여며주고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이런 이른 아침부터 찾아 오셨습니까?"
"내가 자네를 찾아 온 것은 알려줄 것이 있어서네."
자세를 고친 나우폴리온이 진지한 낯빛을 하고 물었다.
"어제 오후에 이곳을 떠나 대륙으로 갈 사람들이 정해졌네. 헌데 중요한 것은 우리 대륙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지. 그래서 대륙에 도착한 후의 여정은 전적으로 자네와 이솔렛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이솔렛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나우폴리온이 내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데스포이나가 말을 이었다.
"나우폴리온, 지금부터 하는 말은 사제로써 하는 말이 아니라 한 친우로써 하는 말이다."
"무슨 일입니까?"
"네 미래를 엿보았다."
"그 미래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조만간 너는 스쳐 지나간 옛 인연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의 손을 잡아라. 그래야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있어."
데스포이나 사제가 돌아간 후 나우폴리온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가 끈질기게 물었음에도 그녀는 예언에서 본 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를 만나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겠지.
잠에서 깬 이솔렛이 그에게 걸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배고프니까 빨리 아침 먼저 먹자. 마침 해야할 이야기도 있고."
리리오페를 깨운 그들은 서둘러 베이컨에 계란, 샐러드를 곁들인 식사를 한 뒤 둘러 앉았다.
데스포이나 사제의 말을 전해 준 후에 나우폴리온은 이솔렛의 의견을 물었다.
"아노마라드에 있는 폰티나 공작을 찾아가면 될거예요."
리리오페가 물었다.
"다프넨을 찾아 가는 게 아니라?"
이솔렛이 대답했다.
"그가 우리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거든. 그를 찾아가면 다른 사람들도 지낼 곳을 찾기 쉬운 것은 물론 실버스컬 때 다프넨과 만난 적이 있으니 다프넨을 찾아가기에도 훨씬 나을거야."
<다음편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83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