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는 몇 가지 징조가 나타나는 법이다. 감각이 밝은 동물 들이 집단으로 이주하거나 달보다 큰 별똥별이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커지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 들은 인간의 영혼에 본질적인 공포를 느끼기에는 부족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저기 식탁에 앉은 사람들 중 거렁뱅이 탐정은 '그래서 뭐?'라고 말할 것이고 금발 머리 애는 '와! 세상이 멸망한다고? 재밌겠다!'하고 동네 방네 뛰어 다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지금 떨고 있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자 여기가 저승인가 싶어 서로의 볼을 꼬집은 것이 열번이 넘은 상태였다.
발단은 일행이 모두 거실로 나왔는데 보리스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일은 지난 2년간 한번도 없었기에 도토리즈는 보리스의 방으로 황급히 달려갔고 이스핀 샤를은 어리둥절해서 따라갔다. 가서 보니 보리스는 아직 자고 있었고 다행히 아픈 곳은 없어 보였다.
자는 보리스를 보던 조슈아가 얼음물을 가져와 그의 얼굴에 부었다.
맙소사! 그 광경을 본 막시민과 루시안은 막지 않은 자신을 저주하며 어떻게 해야 저 미친 놈을 제물로 바치고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러나 정작 보리스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보라! 보리스가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자 일행은 조슈아를 쳐다봤지만 그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리스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친구들은 오싹한 기분에 입맛이 사라졌다. 귀신이 들린 것일까? 그러나 조슈아는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결국 해답은 직접 묻는 수밖에 없었다.
조슈아가 물었다.
"너 보리스 맞아?"
"? 그건 왜 물어?"
"아침에 물을 얼굴에 부었는데도 화내지 않질 안나, 지금도 실실 웃고 있잖아."
"아, 간밤에 내 유령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해 줬거든."
막시민이 물었다.
"너 하다하다 유령이랑 친구도 하냐?"
"엔디미온 이라고, 가나폴리의 소년왕이야."
이번에도 그 자리에서 화석이 되어 버린 일행 등을 보던 보리스는 의자에 등을 기댄채 그들이 발굴되기를... 가만, 에피비오노는 원래 화석이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생명체가 이중으로 화석이 될수가 있나?
10분 쯤 후에 발굴된 그들이 고개를 젓는 사이에 에피비오오가 물았다.
"폐하를 어떻게 만난 거지?"
"길을 잃고 헤메다 우연히 저승에 들어가는 바람에 처음 만났어요. 그 다음에는 절벽에서 추락해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저승에서 엔디미온과 같이 놀았고요. 지난번에 보신 주사위도 엔디미온이 직접 선물로 준거예요."
그 말을 들은 막시민과 조슈아는 숯가마 자식에 대한 연구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이 괜히 있지 않다는 것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티치엘이 물었다.
"그래서 그 좋은 소식이 뭔데?"
"이솔렛이 달의 섬을 떠났대."
친구들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본 이스핀은 확신했다. 보리스가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루시안이 짝 하고 손뼉을 치곤 말했다.
"아! 나 본 적 있어! 2년전에 칼츠 저택에 찾아왔었어. 금발에 흰머리가 섞였고 쌍검을 찬 누난데, 무지막지 하게 예뻐!"
그 말을 들은 조슈아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달의섬, 금기, 신성찬트, 에피비오노가 한 말.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솔렛이란 사람이 네 여자친구야? 그리고 신성찬트를 가르친 스승이고?"
보리스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막시민과 조슈아는 눈빛을 주고 받았고 쥬스피앙은 신성찬트를 배울 방법 101가지를 고안하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본 이스핀과 티치엘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쟤들 또 맞겠네.
그러나 그들의 계략은 해맑은 놈의 말에 물거품이 되었다.
"조슈아, 너는 여자친구 있어?"
조슈아가 당황한 사이 막시민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 엔젤릭 자식은 말야, 리체라는 여자애 한테 편지쓰는데 일주일 넘게 걸린다고."
눈이 희둥그레 변한 루시안이 말했다.
"정말? 너 연극 대본 쓰는데 하룻밤이면 충분하잖아!"
볼이 붉어진 조슈아가 막시민에게 말했다.
"그럼 넌, 좋아하는 여자애 있어?"
막시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그런건 없고, 한번 만나고 싶은 애는 있지. 내가 필경사의 조수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떤 여자애를 도와주니까 걔가 언젠가 다시 보자고 하더라고."
"그, 그럼 티치엘 너는?"
"난 그런 경험 전혀 없어."
해탈한 조슈아가 말했다.
"설마 대공녀님에게 연인은 없을테고..."
"나도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있지. 내가 어릴때 오빠랑 한 시골에 여행을 갔다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거든. 그때 어떤 시골애가 찾아줬어. 이름도 모르고,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니 다시 만나고 싶어도 찾을 방법이 없지만."
그말을 들은 조슈아는 친구들의 꿍꿍이에 찬 얼굴을 보고 36계 줄행랑을 쳤다.
대륙에 상륙한 이솔렛과 나우폴리온은 뒤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리리오페가 다가와서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지?"
이솔렛이 말했다.
"우리는 렘므 땅을 거쳐 아노마라드 왕국의 폰티나 공작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새로 자리잡을 땅을 찾는 한편 다프넨의 위치를 파악할 것입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이솔렛은 요즈렐을 불렀다. 다프넨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해야 할일이 우선이었다.
"이 편지를 폰티나 공작에게 전해줘."
아노마라드의 폰티나 저택에 사는 소녀가 생각에 잠긴 채 방안을 맴돌고 있었다
어릴때부터 영재 소리를 듣던 그녀지만 지금 이 상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 저택에 손님으로 있는 사람은 여기 들어와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왕국 8군에 끌려가서 처형당할 것이 분명함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손님으로 대접했다. 그녀가 모르는 다른 사실이 있는 걸까?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84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