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마라드를 대표하는 두 공작이 함께 방문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인데, 네냐플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들과 오를란느의 대공녀, 신성찬트의 전승자가 주렁주렁 딸려 온다는 것을 들은 아노마라드 국왕은 급하게 술상을 차리고 손님들을 맞았다.
아마 심볼리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논의하려 온 것이니라.
이렇게 짐작한 국왕은 폰티나 공작이 자리에 앉자마자 민중의 벗과 나이트워커의 수배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입안에 있던 술을 뿜고 말았다.
반역이다! 폰티나 공작이 반역을 저질렀다!
반역자들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국왕은 그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해 있음을 알게되었다.
왕이 술을 뿜은 것을 본 칼츠 상단의 후계자가 깔깔하고 웃으면서 데굴데굴 굴러 문 밖으로 나가 그대로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말없이 일어나 창밖을 내다 보았다. 안타깝게도, 하늘이 너무나도 맑았다. 이래서야 옛 성현의 말씀에 따라 벼락이 무서워 술을 뿜었다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은 국왕은 폰티나 공작에게 민중의 벗을 풀어주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 이유를 들은 국왕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자 프란츠 공작은 란지에를 국왕에게 소개했다.
민중의 벗에 핵심 간부 이자, 과거 왕국 8군에 체포되어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는 말을 들은 국왕은 란지에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녀석에 대한 보고는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프란츠 공작이 태연히 대답했다.
"저희 가문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에 황망해 하던 국왕은 앞에 놓여진 술잔을 들어올렸다.
이걸 던지면 군사들이 몰려와 반역자들을 끌어 내리라!
술상 한쪽에서 파란 머리 청년 검사와 그 스승, 신성찬트 전승자, 대공녀가 국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을 본 국왕은 슬그머니 술잔을 아래로 내려 옆에서 시중들던 신하에게 하사한 뒤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종이를 받은 왕은 말없이 조서를 적어 내려갔다.
'아노마라드 왕국의 국왕이 말한다.
현재 아노마라드는 귀족주의자와 공화주의자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 결과 필멸의 땅이 넓어지면서 세상이 멸망으로 달려가지만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왕위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기존의 전제 군주정을 폐지하고 입헌 군주정을 새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입헌 군주제란 왕실과 위대한 국민들의 투표로 뽑은 수상이 법에 따라 함께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정치 체제이다. 이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영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온 아르님 가문에 왕실을 넘겨주기로 결정했으며, 초대 수상은 '민중의 벗'의 지스카르 드 나탕송이 맡게될 것이다.'
옥새가 찍힌 조서가 말을 타고 아노마라드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언페이스를 레이드 하는데 필요한 동맹과 물자 지원을 요청하러 왕을 알현했다가 아노마라드 왕국을 멸망시킨 일행은 마차를 타고 비취반지 성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운 상태로 란지에는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이럴려고 민중의 벗에 들어온 건가...'
허무했다. 몇년 동안 개고생 했던 목표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줄이야. 완전한 공화정은 아니지만, 아르님 가문이면 공화정의 장점을 확실히 발휘할 수 있을테니 충분히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란지에는 막막해 졌다.
'이제 뭐하지...'
갑자기 동생이 보고싶었다. 란지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등불을 켰다. 종이에 펜이 스치면서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방을 채웠다.
이제 성을 떠나야할 때였지만, 일행들은 암묵적으로 한동안 켈티카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얼마후에 있을 멋진 구경거리를 놓칠수는 없었다.
아노마라드 왕국이 멸망하고 일주일 후, 에키온은 산속에 있는 이솔렛의 옛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린 여자애들이 알몸으로 갇혀 있었고 벽에는 각종 고문 기구와 검이 걸려 있었다. 대륙의 해안가에서 납치해온 소녀들을 겁탈한 후에 살해하는 것은 에키온의 새로 생긴 취미였다.
'어제는 채찍으로 고문해서 겁탈한 후에 목졸라 죽였고...오늘은 저년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한 후에 칼로 젖가슴을 도려내야겠다.'
핵폐기물 보다 못한 쓰레기가 여자애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목표물을 고르기 시작하자 겁에 질린 소녀들은 자신 말고 옆에 있는 애가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에키온이 한 소녀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가 침대에 던져서 눕혔다.
쾅!
바지를 내리던 쓰레기가 부서진 문짝과 함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겁에 질린 소녀들이 마주한 것은, 샤를르트 공녀의 명을 받은 로랑과 에투알이었다.
방안을 한번 보는 것 만으로도,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내 구출된 소녀들은 오를란느로 이송되어 샤를르트 공녀의 주치의에게 치료와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고 기절한 에키온과 스카이볼라는 체포되어 아노마라드의 왕국의 감옥에 갇혔다.
다음날 아침, 감옥의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들어와 스카이 볼라와 에키온의 몸을 꽁꽁 묶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에키온이 물었다.
"섭정 각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놈들이 섬에 쳐들어 와서 이렇게 했다."
화가났지만 에키온과 섭정은 질질 끌려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간식을 먹으며 구경하던 다프넨, 이솔렛, 나우폴리온이 그들을 보고 비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욕지거리를 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못한 채로 끌려가던 섭정과 에키온의 눈앞에, 자신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몰랐지만, 이솔렛은 '가나폴리 이주의 역사'에 대한 그들과의 결전을 앞두고 공회당에 신성찬트를 이용한 기록마법을 펼쳐 두었었다.
스카이볼라가 비웃었다.
"분명 너희는 다프넨을 찾으러 가겠지. 대륙이 곧 멸망할 것도 모르는 주제에 말이다."
이솔렛과 나우폴리온의 눈빛이 날카로워 졌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섭정 각하, 그것은 말하면 안되는 사항 아닙니까?"
"에키온, 어차피 저놈들은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실을 알아도 상관이 없지"
헥토르가 섭정의 목에 칼을 겨룬 상태로 말했다.
"헛소리 말고 본론이나 말해."
"달의 섬 북쪽에 봉인되어 있던 '악의 무구'의 봉인을 풀어 대륙으로 보냈다. 네놈들도 그 책을 읽었으니 무엇인지는 알겠지?"
"대체...언제?"
"글쎄, 한 4년 쯤 되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만간 대륙이 멸망한다는 것과 너희가 다프넨과 함께 그것을 저지하려다가 대륙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라는 거지."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자백이 담긴 동영상이 사라지고 앞에 있는 것의 정체를 확인한 스카이볼라와 에키온은 오줌을 지리면서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단두대 2개가 광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91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