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가 떨어지고 공포에 찬 에키온과 스카이볼라의 비명이 그쳤다. 과거에 인간 이었던 두개의 목이 길거리에 내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리스와 이솔렛은 말 없이 몸을 돌려 길을 걸었고 나우폴리온과 친구들이 그들을 따라 갔다.
부모님의 원수, 그리고 형이 죽은 후 처음으로 제대로된 안식처가 되었던 섬을 떠나게 만든자. 오랜 악연이었다. 그들이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은 마주 잡은 두손의 감각을 통하여 말 없이도 상대방에게 전해졌다.
나우폴리온이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을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아니, 친구들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굳이 그들을 끼어들어 이 순간을 끝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눈치 없는 종이 인형만 빼고는 말이다.
조슈아가 보리스와 이솔렛에게 다가 갔다.
"내가 연극을 하나 구상했는데, 들어볼래?"
이솔렛이 보리스를 보고 미소 짓더니 대답했다.
"궁금한데, 말해 봐."
"모든 것을 잃고 돌아다니던 어린 소년 검사와 그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러브 스토리야."
솨악!
연극의 정체를 눈치 챈 보리스의 검이 베고 지나갔지만, 조슈아는 베이지 않았다. 아니, 벨 수 없었다. 조슈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친구들은 눈을 멀뚱 멀뚱 뜬 채로 조슈아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조슈아의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 있기는 했다. 은색 으로 빛나는 야구공 크기의 탱탱볼 하나가 땅을 굴러 다녔다. 그 공으로 다가간 티치엘은 웃으면서 공을 소개했다.
"인사해, 조슈아야."
"......"
"그대로 두면 보리스에게 죽을 것 같아서 급하게 공으로 변신시켰어."
잠깐 놀랐던 도토리즈는 티치엘의 전적들을 기억해 내고 한숨을 쉴 뿐이었고 이런 상황을 처음 마주한 이솔렛은 놀란 눈으로 티치엘에서 조슈아를 받았다.
공을 관찰하던 이솔렛은 근처에 있던 나무를 향해 조슈아를 던졌다.
퉁! 데굴데굴!
조슈아에서 나는 소리는 이솔렛에게 어릴 적 아버지와 놀던 기억을 되살아 나게 했다. 이솔렛이 조슈아를 벽에 던지고 받는 것을 본 루시안은 이솔렛을 바라보며 외쳤다.
"나도! 나도 할래!"
그 말을 들은 조슈아는 루시안을 향해 말했다.
"그만해! 아프다고!"
그러나 공으로 변하면서 성대와 허파가 사라졌기에, 조슈아의 외침은 음파가 되어 친구들의 고막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행들이 돌아가면서 조슈아를 던지며 노는 사이 란지에는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 보기만 했다. 고개를 돌린 란지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의 혼란 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벽 곳곳에 붙은 종이들을 보고 있었다.
전제군주제의 해체와 입헌 군주제의 도입. 10여년 만에 사용된 단두대.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두려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혼란은 아이언 페이스가 움직이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 저기 지붕 위에서 이쪽으로 무언가를 발사하려는 복면인 들 처럼. 지난 몇년간 비범한 룸메이트들과 지내며 단련된 감각과 타고난 두뇌는 란지에가 무슨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게 했다.
주머니에 권총이 들어 있었지만 쏘아 맞추기에 어려운 각도를 적들이 잡고 있었다. 란지에는 친구들에게 달려가 조슈아를 빼앗아 들었다. 던졌다. 재빨리 권총을 빼든 란지에는 날아가는 조슈아를 맞추어 급 가속시켰다.
복면인들이 발사한 물체가 조슈아를 향해 날아갔다. 그 물체를 본 조슈아는 기겁했다. 1년전, 쥬스피앙과 티치엘이 마법 연구를 한다고 만들었다가 집을 날려버린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콰앙!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나 불꽃이 튀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하늘에서 날아온 파편에 맞고 머리가 터진 사람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아이들을 안고 사람들은 여기 저기로 뛰어 갔다.
도토리즈는 근처 가게의 가판대 뒤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 몸를 숨겼다.
콰앙! 콰앙! 콰앙!
땅에 무언가가 꽂히면서 계속 폭발이 일어났다.
"적들은 해를 등지고서 무기를 사용했어."
란지에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막시민이 말했다.
"저들은 원거리 무기로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견제하고, 그 사이에 암살자들을 접근 시킬 생각인 거야."
이대로면 독안에 든 쥐일 뿐. 움직여야 한다. 무언의 합의를 마친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란지에를 바라봤다. 적들의 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란지에의 권총 뿐.
란지에는 가만히 숨을 내쉰 후에 창문으로 적을 조준했다. 아까는 햇빛이 눈을 직접 공격했기 때문에 맞출 수 없었지만 이 위치에서라면 다르다.
탕! 탕!
란지에의 총이 불을 뿜고 적 중 한명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적들이 당황한 사이에 도토리즈는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가 3갈래로 갈라졌다. 폭탄으로 추정되는 무기로 공격해 온 이상, 모여 있는 것보다는 흩어지는 편이 나왔다. 티치엘과 에피비오노가 사용한 방어 마법의 도움을 받아 일행들은 건물 틈바구니로 뛰어 들었다.
콰앙! 콰앙!
계속되는 폭격에 건물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골목과 골목 사이로 오가던 이솔렛과 보리스는 급하게 몸을 틀었다.
건물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복면인들의 검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4명. 보리스와 이솔렛은 망설임 없이 검을 빼들고 그들을 덮쳤다.
채앵! 채앵!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이어지는 검격.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낸 보리스는 스텝을 밟으며 뒤로 물러난다. 뒤에 있던 사과 상자를 걷어차 사과를 날렸다. 사과를 피한 적이 주춤한 사이 보리스는 적에게 달려 들어 다리 동맥을 노렸다. 급하게 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아내자 보리스는 달려든 속도를 살려 힘으로 밀어 붙였다. 튕겨나간 적이 바닥에 쓰러지자 그의 심장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위화감에 보리스는 급히 몸을 숙였다. 사악! 그가 상체가 있던 곳에 검이 지나간다.
챙! 챙! 챙! 챙! 챙! 챙!
적은 그 사이에 일어난 동료와 합류해 보리스를 밀어 붙였다. 어느새 가까워진 벽. 등에 벽이 닿자 웃으며 달려 들었다. 채앵! 찌르고 들어오는 검을 보리스가 간신히 막아냈다. 그렇게 생긴 빈틈. 또 다른 복면인이 보리스를 향해 검을 휘둘렸다.
적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손이 닿을 만큼. 보리스는 자신을 벽에 고정시킨 적의 손목을 잡고 꺾어 검을 놓치게 한 후에 얼굴을 손으로 밀면서 몸을 돌려 순식간의 적과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다.
푸욱!
살이 꿰뚫리는 소리. 경악한 복면인은 칼에 찔린 동료를 보며 검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윈터러에 목이 떨어진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이솔렛을 바라보니, 어느새 늪으로 변한 골목길에 참수된 몸 들이 파묻혀 있었고 그 옆에는 머리 두 개가 굴려 다녔다.
고개를 돌려 보리스를 본 이솔렛은 벚꽃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보고 잠깐 정신줄을 놓았던 보리스는 자기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린 뒤 이솔렛과 함께 골목길을 달렸다.
티치엘, 에비피오노, 루시안, 나우폴리온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가 들렸다. 일행을 멈춰 세운 뒤 나우폴리온은 고개만 내밀어서 길을 살펴 보았다. 그를 본 은색 공이 데구르르 굴러왔다.
조슈아를 주워든 나우폴리온은 그것을 루시안에게 넘겼다. 딱봐도 여기에서 전투력이 없는 것은 루시안이 유일했기에 준 호신용품(?) 이었다.
눈 깜작할 새였다. 루시안은 자기가 본 것이 헛것이 아닌지 의심되어 눈을 비볐다. 갑자기 건물 안에서 검은 그림자 들이 튀어 나왔지만 2초가 지난 현재 그것들 중 2개는 시체일 뿐 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채 나우폴리온이 웃었다. 저 허술한 사람이 보리스의 스승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루시안이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사이 살아있는 암살자 3명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대치 상태가 지속되려는 찰라, 갑자기 내려친 번개가 암살자 중 2명을 태웠다. 에피비오노의 번개.
겁을 먹은 1명이 급히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던 루시안은 생각했다. '나도 돕고 싶다'
루시안의 표정 변화를 본 조슈아가 급히 외쳤다.
'잠깐! 루시안, 그거 아니야!'
물론 입이 없었기에 마음 속으로만.
루시안은 조슈아를 들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했다. 지난번 겨울에 눈싸움에서 보리스를 이기기 위해 갈고 닦은(물론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공 던지기 실력을 발휘할 때였다.
루시안의 손을 떠난 조슈아는 암살자의 뒤통수에 박혔고 복면인은 그대로 기절했다.
복면인 3명이 은신한 채로 숨어 있었다. 그들의 무기는 다른 암살자들과 달리 최신형 원거리 투척 무기 였다. 목표물이 나타나면 저격한다. 그들은 집중력을 유지한채 골목길을 지켜 보았다.
탕탕탕!
총성 세발이 울리고 암살자들은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죽었다. 란지에가 걸어가 그들 사이에 섰다.
"역시 뻔하다니까."
란지에는 일행들이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갈 때 같이 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들이 달릴 때 권총으로 엄호해 준 후에, 민중의 벗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알아두었던 비밀 통로로 빠져 나갔다. 지금 그가 서있는 장소 역시 민중의 벗 때 물색해 두었던 암살 포인트 였다.
폭탄을 날려대던 2명의 복면인들은 잠시 발포를 멈추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가 말했다. 예상 탈출 루트로 보내둔 세 팀의 연락이 끊겼다고.
"어쩔 수 없군요. 플랜C로 가겠습니다."
이스핀과 막시민은 지붕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암살자들을 쫓는 중이었다. 무언가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암살자들은 살기 위해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막시민"
고개를 끄덕인 막시민은 가방에서 카프라치오 바이올린을 꺼내어 연주를 시작했다.
그동안 틈틈이 연습해 온 덕에 이제 전력질주하면서 연주하는 것은 조슈아가 미친 짓 하기 만큼 쉬운 일이었다.
막시민의 연주에 프시키들이 공명한다. 어느샌가 거대한 해일이 된 프시키들은 적들을 덮쳐 갔다.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물기둥과 함께 날아간 한명을 제외한 적들은 그대로 프시키들에 휩쓸렸다. 질식하기 직전에 프시키들이 사라지며 숨을 돌렸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검을 든 이스핀이었다.
이스핀들이 적들을 처단하는 사이 막시민은 고개를 돌려 물기둥 들을 바라 보았다. 켈티카 시내 6곳에서 물기둥이 솟아 오르고 있었는데, 간격이 일정한 것을 보니 원형을 이루는 것 같았다.
에피비오노도 그것들을 보고 있었다. 분명 가나폴리 시절에 비슷한 것을 본적이 있는데,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녹이 쓴 기억력이 원망스럽기는 처음이었다.
"막시민"
어느새 따라온 란지에가 막시민의 어깨의 손을 올렸다.
얜 또 언제 올라왔대? 실 없는 생각을 하며 막시민은 란지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포격을 가했던 적들이 그들이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달렸다. 뛰어 넘었다. 적 들을 쫓아 지붕 위를 달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던 그들은 처음 적들이 있던 곳에 멈추었다. 아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오토마톤으로만 본 대포가 그곳에 있었기에.
하지만 그것을 신경쓰기에는 적들과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들을 족쳐서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대로면 놓칠 것 같았다.
그들을 쫓아온 티치엘이 말했다.
"저 물기둥을 이용하는 것 어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막시민이 생각하는 사이에 이스핀이 뭐든 해보자고 말했다.
"막시민, 카프라치오로 '남풍 교향곡'을 연주해줘"
티치엘의 생각을 눈치챈 막시민이 연주를 시작하자 솟아오른 물 들이 적들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티치엘이 냉기 마법을 시전하자 물의 겉부분만 두껍게 얼기 시작했다.
보리스와 이솔렛, 이스핀이 달려 나갔다. 보리스와 이솔렛은 신성찬트를 이용해 스케이트 타듯이 얼음 위로 미끄러져 나갔지만 이스핀은 발레로 익힌 균형 감각을 이용해 힘들게 얼음 기둥 위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막시민이 어느샌가 도착한 루시안에게서 조슈아를 받아 이스핀을 향해 던졌다.
"티치엘!"
"알았어!"
체념한 조슈아는 얌전히 티치엘의 마법에 맞고 스노보드로 변했다. 이스핀이 조슈아를 밟고 올라탔다. 추운 북쪽 지방 출신 답게, 이스핀의 데모닉보드 실력은 조슈아의 연기력 뺨치는 수준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보리스, 이솔렛, 이스핀을 본 복면인들은 기겁했다.
"안되겠다, 플랜C를 발동해!"
잡히면 어떤 꼴을 당할지 상상한 마법사가 주문을 외웠다.
"압둘라 마가나 후에바나"
주문이 발동하면서 켈티카 곳곳에 있던 물기둥이 순식간에 수증기로 변했다.
에피비오노는 그제서야 그 기술을 기억해 냈다. 강제 기화 및 냉각. 물 주위의 열을 강제로 빼았아 기화 시키고 주변은 급격히 얼어 붙는 기술.
"피해!!!"
물기둥에서 생성된 수증기 폭발. 이 거대한 폭풍이 켈티카를 덮쳤다. 엄청난 압력에 의해, 켈티카의 건물들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92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