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인 오른손을 가진 금발 머리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도착한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 거대한 도시는 거대한 충격파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샐러리맨의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술적으로 붕괴된 건물들과 사람들의 비명 따위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마땅히 있어야할 피 비린내가 없다는 것. 아무리 걸어가도 단 한구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호기심을 접어둔 채 그는 의뢰인의 저택으로 향했다. 물론 그곳도 완전히 박살난 상태겠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일말의 기적 따위가 아니라 선불로 받을 계약금 뿐이었다.
콜록 콜록!
공기 중에 흩날리던 먼지에 보리스, 이솔렛, 샤를르트는 기침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솔렛, 괜찮아요?"
"...멀쩡해. 너는?"
"저도 멀쩡해요."
샤를르트는 옆에서 벌어지는 애정 행각을 무심히 넘기며 몸 곳곳을 훑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킨 샤를르트가 주변을 살피는 사이에 보이스가 이솔렛도 높은 곳으로 뛰어 올랐다.
"아무래도 놓친 것 같네요."
경험이 많은 만큼 그들은 더 추격해 봤자 암살자 들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했다. 터덜 터덜 돌아가던 그들은 주변에 사망자와 중상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대포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도토리즈는 식은 땀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에피비오노에게 물을 먹이는 에피비오노에게 물과 에너지바를 먹이고 있었다.
그런데 불멸자도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나?
의문 가득한 눈들이 바라보자 에피비오노가 입을 열었다.
"마력 부족이야. 아까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 도시에 사는 생명체 전원과 이것(대포)에 보호 마법을 걸었지. 원래는 미리 도시 곳곳에 설비를 갖추어 두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내 모든 마력을 쏟아 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행들의 표정에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기에 에피비오노는 서둘러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지. 아무래도 '소멸의 기원'에 이상이 생기면서 내가 가진 불멸성이 무언가 바뀐 것 같다."
그럼 좋은 것 아닌가?
보리스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가 불멸성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던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된 삶은 에피이오노의 정신을 마모 시켰고 그를 가나폴리 왕국 시절에 가두어 버렸다. 심지어는 형의 뜻을 받들어 죽지 않고 살기를 원했던 보리스도, 에피비오노를 보고는 영생을 포기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리스는 이 상황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소멸의 기원을 완성시키면 에피비오노도 저주 받은 삶을 끝낼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티치엘이 대선배에게 물었다.
"그럼...얼마나 쉬셔야 마력이 회복되시는 데요?"
"이 속도로는 아마 몇달은 푹 쉬어야 될 것 같다. 내가 마력량이 좀 많이 크거든."
갑작스러운 전투에 지친 일행은 잠시 쉬면서 먹고 마셨다. 대포와 1000년 묵은 화석을 든채 터덜 터덜 걸어서 비취반지성에 도착해 보니 거지꼴의 사람들이 무기를 든 채 한 사람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막시민이 곧바로 옆에 있던 종이 인형의 뒤통수를 때렸다.
"야 이 미친 놈아! 샐러리맨을 여기에 부르면 어떡해!"
"우리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네."
조슈아가 실실 거리며 웃자 막시민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의뢰? 일 하겠다는 놈이 사람 머리를 들고 고용주를 찾아와?"
그렇다. 샐러리맨의 양손에는 세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던 것이다.
데모닉 답게 미쳐있는 조슈아는 헤실 헤실 웃으며 샐러리맨에게 다가가 왼손을 내밀었다.
"금액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샐러리맨도 왼손으로 마주잡고 악수를 했다.
"물론입니다."
"샐러리맨, 예전처럼 어떻게 저를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그건 저도 꽤 즐거운 추억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공작님이 제 의뢰인이기 때문에 제가 소공작님을 죽일 일은 없을 겁니다."
"근데 그것은..."
"아, 다름이 아니라 복면을 쓰고 수상쩍은 행동을 하길래..."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이놈들이 바로 켈티카를 날려버린 놈들 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폰티나 공작이 흠흠 소리를 내 주의를 집증시키고 말했다.
"여기에서 계속 있을수는 없으니, 일단 우리 영지로 가지 않겠나? "
그렇게 그들은 급하게 짐을 꾸리고 사람들을 시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수만명의 사람들이 늙고 병든 이들과 아이들을 돌보며 걸어가니, 흡사 이집트를 탈출하는 유대인 행렬과 같았다.
그렇게 7번의 밤을 지났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폰티나 가문의 영애, 폰티나 양과 달의 섬 사람들 이었다.
두 공작이 날랜 자를 골라(보리스 였다.) 걸음을 배로 하여 달리게 한 덕에, 그들은 죽과 의사를 준비하여 피난민들을 맞을 수 있었다.
그날밤, 도토리즈와 프란츠 공작, 폰티나 공작, 달의섬 사람들과 이스핀 샤를은 노약자 들을 돌보기 위해 방에서 쫓겨난 란지에의 천막에 모였다.
클로에가 피난민들의 인적 사항이 담긴 장부를 보며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켈티카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적들이 놓고간 대포를 연구하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달의섬 사람들이 가져온 책들을 확인해 본 결과, 공작님이 란지에 군에게 선물한 것과 유사한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총과 대포를 대량 생산 할 수 있으면 아이언페이스와의 전쟁에서 저 사람들도 큰 전력이 될 수 있을 걸세."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리리오페가 입을 열었다.
"섬 사람들을 시켜서 저 무기들의 사용법을 훈련시킬게."
너무나도 무례한 말이었지만, 그동안의 행실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햇빛이 드는 식당에서 한 남성이 나이프로 송로버섯을 썰고 있었다. 가니미드 다 벨로어. 과거 백작 지위를 가졌던 그는 2달전 귀족정이 무너질때 몰락하지 않은 소수의 귀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타격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라서, 그는 창고에 숨겨 두었던 애장품 몇개를 팔아야 했다.
그때 그 시동 놈이 나를 이꼴로 만들다니! 현 정부의 수장은 과거 '민중의 벗'을 이끌었던 지스카르 드 나탕송 이었지만 아노마라드를 이꼴로 만든 것은 과거 그의 시동이었던 란지에 로젠클란츠 였다.
벨노어는 분노를 달래기 위해 송로버섯을 한가득 입에 넣고 씹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귀족 출신이라 그런지 화를 내는 모습도 우아하군요."
"귀족 출신인 것이 아니라 귀족입니다."
저 손님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지만, 벨노어는 상관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답했다.
대답을 들은 남자가 활짝 웃더니 말했다.
"역시, 당신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어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리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나요?"
"저 빌어먹을 놈들을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물론이죠. 이 임무를 완수하면 당신은 옛 시동의 목을 안주로 삼아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다."
맞은편의 남성은 송로버섯 한 점을 음미한 뒤 말을 이었다.
"쇠의 왕께서 네냐플에 갖혀 있습니다. 가서 그를 해방시키세요."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494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