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의 죽음을 지켜보던 막시민이 고개를 돌렸다.
이스핀은 어떻게 해야 그를 위로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는 어떤 말도 막시민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이스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핀은 막시민을 이끌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히스파니에의 집에 도착한 그들은 짐을 챙겨 떠났다.
아이언페이스의 공격이 코츠볼트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단 친구들과 합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란지에와 란즈미, 클로에가 머물고 있는 폰티나 저택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들이 아무 말 없이 걷는 동안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났다.
그 마을도 마찬가지 였다.
불타는 마을에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고 그 사람들은 또다른 괴물로 변했다.
막시민과 이스핀은 괴물들을 피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만큼 사람이 적은 곳으로 다니면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들 사이의 고요가 깨지고 막시민이 입을 열었다.
"그 괴물들은 대체 정체가 뭐지?"
항상 누구보다 빠르게 진실을 알아내는 막시민 이었기에, 이스핀은 막시민의 말에 놀랐다.
그러나 그럴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떠올린 이스핀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막시민은 항상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친절을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프시키 였어."
"뭐?"
"사람과 변종 프시키가 강제로 융합되어서 기존의 자아는 사라지고 신체 변형이 일어난 거야."
막시민은 며칠전의 일을 떠올렸다.
이스핀이 베르나르 공자의 칼에 쓰려지고, 죽은 에투알들의 시체들이 그들을 공격하던 광경을.
어쩌면 그 일과 지금 상황이 관련이 있을 지도 몰랐다.
설사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륙 전체에서 저 프시키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북쪽에 오를란느에서도 한창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도인 오를리를 포함한 국가 전역의 도시들에서 괴물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투입된 군대는 그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검도, 화살도, 마법도 통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공격하려다가 괴물에게 잡아 먹히거나 또다른 괴물이 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보호할려고 싸우는 군인들의 시야에 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마치 접시를 닮은 그 물체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비행접시가 수십개는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비행접시 들에 빛이 들어오고, 수많은 포탄이 성으로 날아 들었다.
1천년 전, 고대 가나폴리 왕국에서 사용되었던 병기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노마라드의 폰티나 영지에서 사병들을 지휘하던 란지에가 숨을 돌렸다.
다른 곳과는 달리 아노마라드는 폰티나 가문에서 만든 총과 대포, 그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달의 섬 사람들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란지에에게 클로에가 다가갔다.
"괜찮아?'
아무리 피해가 적어도 장장 12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가 힘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란지에가 요청한 일이기는 하지만 클로에는 란지에가 잠깐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인 란지에가 클로에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전해 달라는 뜻이었다.
란지에가 대륙 각 지역 피해 현황 보고서를 읽는 사이 클로에가 차분하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아노마라드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무너졌어."
보고서에 따르면 대륙에 모든 국가들에서 칼과 화살을 통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괴물들과, 정체 불명의 병기를 달고 있는 비행접시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거기에다 그것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나타나면 국가 하나가 멸망하는 것은 필연일 뿐이었다.
마침내 란지에가 보고서를 내려 놓자 클로에는 그를 끌고 란즈미의 방으로 향했다.
란지에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귀여운 동생을 통한 힐링과 수면 이었으니까.
란지에가 노크를 했지만 란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란지에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란즈미의 자는 모습은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란지에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를 돌아본 란즈미가 입을 열었다.
"누가 내 눈을 가져갔나봐."
란즈미가 란지에를 향해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너는 예쁜 눈을 가지고 있구나."
란지에는 란즈미의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란즈미의 눈이 있던 곳에는 시신경과 붉은 구멍 밖에 없었다.
란즈미의 눈알 1개는 마치 요요 처럼 시신경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방바닥을 향했다.
그리고 마치 자해를 한듯이 란즈미의 머리카락이 두피에서 뜯겨 나갔고 란즈미의 한쪽 손에는 눈알로 추정되는 막이 들린 채 하얀 액체가 묻어있었다.
란즈미는, 대륙 전체에서 나타난 괴물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란즈미가 란지에에게 걸음을 옮겼다.
"너의 두 눈을 내게 주렴."
란즈미의 목소리에 실린 광기는 그녀가 물리적으로 란지에의 눈을 빼앗을 생각임을 분명하게 했다.
멍하게 서 있던 란지에가 뒤로 당겨 지고 그의 주머니에서 권총이 빠져나갔다.
란즈미에게 총을 겨눈 클로에가 란지에의 눈을 가렸고 달려온 하인들이 순식간에 란지에를 제압했다.
팔을 잡힌채 끌려가며 란지에가 소리를 지르며 란즈미를 불렀다.
클로에가 본 란지에의 모습 중에서 가장 격렬한 감정의 폭발 이었다.
떨리는 몸을 애써 참으며 클로에는 란즈미를 향해 총을 쐈다.
란즈미의 머리에서 피가 쏟아지며 방의 카펫을 붉게 물들인다.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클로에는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렸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하인들이 방안을 들어다 보고는 헛구역질을 했다.
그들은 위에서 부터 올려오는 역겨운 느낌을 참으며 란즈미의 사체를 수습했다.
비록 지금은 괴물의 형상이었지만 그동안 란즈미와 정이 들었기에 하인들도 어린 아이의 마지막을 괴물 대하듯이 하고 싶지 않았다.
클로에는 진정제를 맞고 잠든 란지에를 바라보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자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란즈미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렇기에 클로에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자기를 세뇌했다.
란즈미는 인간으로 되돌아 올 수 없을 것이고 설사 돌아오더라도 그 아이에게 남은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 뿐이다.
그 아이의 이성이 사라진 상태였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란즈미는 통제되지 않는 몸과 오빠를 해치려는 충동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테니까.
만약 란즈미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란즈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란지에도 죽었을 것이다.
그는 란즈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란즈미의 손에 죽거나, 아니면 란즈미가 죽은 후 그 아이의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클로에가 란즈미를 죽인 이상 그는 살 것이다.
클로에를 죽이기 위해서.
그렇게 끊임 없이 자신의 행동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클로에는 깨닫지 못 했다.
그 모든 행동들이 친한 동생이 고통을 겪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과 자신을 증오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는, 슬픈 사랑이라는 사실을.
란지에가 잠에서 깬 것은 그로부터 대략 7시간이 지난 후였다.
잠깐 멍하게 서있던 란지에가 책상에 올려진 권총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그는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 클로에의 방에 도착했다.
노크를 하지 않은 채 그는 문을 열고 들어 갔다.
클로에가 책상에 엎어진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살짝 붉어져 있었고 눈물의 흔적이 있었다.
그리그 그 옆에는 공책과 바느질 도구와 하얀 천이 놓여 있었다.
공책이 하늘색 머리 소년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는 드레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란즈미에게 선물하고 싶다면서 물어 보았던 란즈미의 옷 사이즈와 함께.
그것을 보던 란지에는 마법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스핀 에게서 온 메시지는 아이언 페이스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말했고 로즈니스가 보낸 메시지는 그녀의 아버지, 벨노어 전 백작이 아이언페이스를 네냐플에서 꺼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란지에가 죽여야할 사람은 클로에가 아니라 벨노어 였다.
그렇기 때문에 란지에는 더 이상 클로에의 감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동안 성장 시켜온 그의 두뇌가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행동했는지 대략 알려 주었기에.
그리고,
"그럼 우리 여행가자! 나랑, 오빠랑, 클로에 언니랑 셋이!"
"응? 걔는 왜?"
"클로에 언니가 나 재미있게 해주기도 하고, 오빠랑 있을 때면 언니가 행복해 보여서!"
무슨 말이지? 란지에는 동생의 말에 의아해 했다. 아니, 무슨 뜻인지 알지만 모르고 싶었다.
란즈미가, 나와 클로에가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비록 이제 란즈미는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제 란지에는 자신의 행복을 외면해서는 안되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났을 때, 자기가 아프고 일찍 죽어서 오빠가 힘들게 살았다고 란즈미가 울지 않게 하려면.
말해주어야 했다. 란즈미가 없어서 외로웠던 때도 있었지만 오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고. 오빠도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어가는 대신 란즈미가 원했던 대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란지에는 담요를 찾아 클로에를 덮어준 후에 등불을 껐다.
그리고 어두운 방을 떠나, 복도를 비추는 달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란즈미가 죽은지도 2주가 지났다.
흩어졌던 일행들과, 대륙 곳곳에서 온 피난민들이 폰티나 가문의 영지로 모여 들었다.
20억명의 대륙 인구 중 살아서 이곳에 도달한 사람들은 약 50만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로즈니스와 루이잔 강피르, 렘므 땅의 이자크 듀카스텔도 섞여 있었다.
그 모든 사람들은 아이언페이스와 벨노어에 의해 가족, 친구, 친척, 삶의 터전 중 최소한 하나를, 어쩌면 모든 것을 잃었다.
그것들은 여기 까지 함께 오지 못했고 그렇기에 제대로된 작별은 하지 못했다.
방부제로 보존된 란즈미의 관이 사람들을 지나서 나아갔다. 란즈미는 클로에가 만들어 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피난민들은 란즈미의 관이 지날 때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의 유품을 꺼냈다.
란즈미의 장례식이기도 하지만 모든 희생자들을 위한 장례식이기도 했다.
마침내 란즈미의 몸이 불태워 지고, 재가 되어 뿌려졌다.
란지에가 단상에 섰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했다.
이 모든 비극을 일으킨 원흉의 정체를.
그리고 이제 그놈 들은 이 일의 대가를 목숨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었다.
란지에는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줄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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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