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파니에는 끝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있는 맑은 하늘과 짙은 푸른 빛을 띈 바닷물의 경계를 한 갈색 암초가 나누고 있었다.
젊어서 부터 해적질을 하며 수많은 항해를 했었지만, 그럼에도 저 앞에 보이는 암초가 사람들이 살던 섬이라는 사실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
인기척을 느낀 히스파니에가 옆을 돌아보았다.
데스포이나 사제가 그의 오른쪽에 서 있었고, 리리오페와 헥토르가 그 뒤에 서있었다.
전에 로랑과 에투알이 전이문을 통해 달의섬에 들어가 섭정과 에키온을 체포한 일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섬의 주민이었던 이솔렛의 허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아이언페이스가 대륙 전역을 장악한 이상 전이문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섬 주민들의 인도에 따라 항해를 통해 섬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고, 이를 위해 히스파니에의 해적단이 심볼리온과 마법사들이 탄 배들을 호위하면서 달의 섬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섬을 보호하기 위한 결계를 지나면서 눈 앞에 있던 암초가 수풀이 우거진 숲으로 변했다.
배 들이 항구에 닻을 내리고 사람들이 섬에 내려섰다.
인원 점검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내린 것이 확인되자 리리오페와 헥토르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리리오페가 외쳤다.
"먼저 마을에 가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물품 들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헥토르를 따라가주세요!"
헥토르가 성큼 성큼 앞장을 서자 마법사 들이 잡담을 나누며 그의 뒤를 쫓았고 히스파니에의 부하들은 후방을 보호하고 있었다.
대륙민들이 섬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숲을 지나자 고대 유적들이 나타났다.
한때 가나폴리 왕국의 마법들을 복원하는 꿈을 가졌던 심볼리온의 마법사들은 유적들이 둘러보고 싶어졌고, 요청을 하기도 전에 헥토르와 리리오페는 10분간 구경해도 된다는 허락을 내주었다.
마법사 들이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통에 마법에 대해 문회한 이었던 해적들도 유적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대략 알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그러나 히스파니에는 옆에 서 있는 멀쩡한 얼굴과 해골 손의 마법사의 표정을 보고는 다른 이들 처럼 즐길 수 없었다.
그도 데모닉 이었기에 에피비오노가 왜 이러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괜찮으십니까?"
"자네는 내가 왜 이런다고 생각하나?"
히스파니에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유적들이 조만간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 이었기에.
그러나 에피비오노가 이은 말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자네 생각도 맞지. 이솔렛과 보리스가 계승한 몇몇개를 제외한 가나폴리의 유산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진짜로 참담한 것은 그것이 아니야."
에피비오노가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 유적에 손을 대었다.
"이 유적들은 가나폴리 때의 양식과는 다르네. 훨씬 과거에 지어졌던 건축물 들은 가나폴리의 색채가 많이 들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달 여왕 신화'의 색이 강해졌네."
하스파니에는 에피비오노를 바라 보았다.
그가 사랑했던 연인이 목숨을 바쳐 구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 남긴 선물들을 내다 버리고 엉뚱한 것을 추구했다.
만약 프란츠가 죽고 남긴 유품을 조슈아가 헌신짝 처럼 갖다 버렸다면, 히스파니에는 조슈아를 두들겨 팼을 것이다.
그렇기에 히스파니에는 에피비오노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더욱 절감했다. 한편으로 그를 위로하기에 자신은 너무 작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유적 구경을 마친 사람들은 마을에 도착하자 숙소를 배정 받은 후에 짐을 풀었다.
마법사들과 해적들이 3시간의 휴식을 취하는 사이 리리오페와 헥토르, 데스포이나 사제, 네냐플의 레오멘티스 교수와 쥬스피앙은 섬의 지도를 펼쳐놓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 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에피비오노가 헥토르와 리리오페를 불렀다.
소년과 소녀가 자신을 쳐다보자 에피비오노는 고향을 안돌아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눈빛으로 합의를 마친 뒤, 헥토르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 것을 알지 않나. 그대들은 이 섬 사람이라 추억이 어린 곳일 텐데, 오늘이 아니면 그것들을 마주할 기회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이번에는 리리오페가 대답했다.
"걱정해 주신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많은 섬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허락 받지 못했고 이솔렛의 경우 사랑하는 아버지의 무덤조차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원래 이 섬의 섭정이 되어야 했던 사람으로써, 그들을 남겨 두고 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에피비오노와 히스파니에 등은 아이들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아이들의 고향은 아이언페이스와의 전쟁이 끝나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질 예정 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하면서 어른의 길로 나아갔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해적들은 배에 실어온 수 많은 상자들을 섬 내부로 옮겼다.
아이언페이스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칼츠 상단이 대륙 전체에서 쓸어모은 마법재료들과 각종 무기들이었다.
그리고 심볼리온과 네냐플의 마법사들은 그날부터 '풍요의 기둥'에 달라 붙어 '소멸의 기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약 1달 반이 흘렀다.
대륙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노마라드에서는 란지에가 이끄는 중앙군과 가니미드 다 벨노어가 이끄는 괴물 무리가 접전을 펼치고 있었고 베르나르 공자는 혼자서 대륙 곳곳을 누비며 이쟈크 듀카스텔, 루이잔 강피르, 프란츠 폰 아르님, 폰티나 전 공작을 모두 상대했다.
베르나르가 악의 무구 중 하나인 '은빛 투구'의 힘을 제어하면서 일반 병사들로는 상대하기 힘들어진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도토리군단이 베르나르의 암살을 시도했지만, 그는 괴물 군단을 버리고 산을 넘어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했다.
한편 아이언페이스는 홀로 움직이며 도토리 군단과 추격전을 벌였다.
악의 무구조차 상대가 안되는 병기인 '윈터러'를 다루는 자와 프시키를 상대할 수 있는 '블러디드' 능력의 주인.
프시키와 악의 무구의 힘으로 생긴 아이언페이스에게 천적인 존재인 만큼 반드시 없애야 했다. 분명 처음에는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 그들과 제대로 대면 했을 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윈터러와 블러디드 능력 뿐만 아니라 이솔렛이는 여자가 쓰는 '티엘라'와 '신성찬트', 나우폴리온이라는 자가 사용하는 '티그리스'도 그에게 공격을 성립시켰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도토리군단과 아이언페이스는 곧 이유를 깨달았다.
명맥이 끊기지 않고 전해진 고대 왕국의 마법인 '신성찬트'와 '블러디드', 마법의 경지에 이른 검술인 '티엘라'와 '티그리스'는 모두 같은 파장의 마력을 가졌기 때문에 변종 프시키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상성을 통해 근본적인 능력의 격차를 메운 것일 뿐, 아이언페이스를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교착 상태에 들어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의 목표는 아이언페이스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죽이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그가 대륙 전체를 장악하고, 악의 무구의 힘을 가진 시점에서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렇기에 란지에가 세운 전쟁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최대한 많은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것.
둘째, 아이언페이스의 병력을 최대한 소모시키는 것.
셋째,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정착할 만한 땅을 찾는 것.
넷째, 아이언페이스의 시선을 최대한 돌리고 시간을 끌 것.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4번째 목표 였다.
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 달의 섬에서는 무너지던 '풍요의 기둥'을 복구하고 '소멸의 기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었다.
'소멸의 기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섬을 보호하던 '달의 마법'의 힘을 없애야 했고 달의 섬의 존재를 아이언페이스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이언페이스는 '소멸의 기원'의 완성을 막기 위해 달의 섬으로 쳐들어 올 것이다.
'소멸의 기원'이 완성되면 아이언페이스가 가진 '악의 무구'의 힘은 달의 섬과 함께 봉인되고, 아이언페이스는 그 강대한 힘을 잃은 한낱 필멸자로 전락할 것이기에.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504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