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파니에와 해적단 들은 괴물들에게 총을 발포했다. 총성들이 뒤덮은 군함에서 괴물들의 사체가 쌓여가고 있었다.
한 때는 인간이었던 몸들. 변종 프시키에게 잡아 먹히면서 육체 내구도가 성장했음에도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격의 파괴력은 속도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어쨌든 저 괴물들은 음속보다 빠른 총알에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히스파니에는 숨을 돌리며 뒤를 잠깐 바라보았다. 마법에 걸린 듯이 엔디미온 폐하와 아이언페이스는 자기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엔디미온에 입이 계속 열렸다가 닫히는 것을 보아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해 괴물의 머리를 권총으로 날려버렸다. 그의 단원들 역시 진형을 유지하며 총을 쏴대면서 진격했다.
괴물들은 마치 지능이 없는 것처럼 해적단에게 달려들었다. 죽은 동료들의 사체를 밟고, 총에 팔다리가 날아가면서도 하나, 둘 씩 해적단원 들에게 도달했다.
총은 본래 원거리전에 특화된 무기이고, 검술과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근접전을 허용한다는 것은 장례식 장에서 곡을 듣는 것과 동의어 였다.
괴물들에게 물어 뜯긴 단원 들이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눈알이 뽑혀 나오고, 온몸에 핏줄이 돋았다. 그렇게 변이를 마친 후에 괴성을 지르며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던 옛 친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탓일까? 아니면 차마 친구를 죽이지 못한 탓일까? 점점 더 많은 해적들이 괴물로 변이했다.
히스파니에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총알 세례를 뚫고 달려드는 괴물들과 그것들에게 물린 부하들에게 기관총을 발사했다.
히스파니에가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저것들에게 물리면 괴물이 된다. 하지만, 괴물이 되었을 때 이성이 남아 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이성이 남아 있지 않으면 죽은 시체조차 이용 당하는 것이고, 이성이 남아 있다면 저 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저주하며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마라! 저 괴물들을 죽여서, 그 사람을 구원하라!"
히스파니에의 연설에 힘 입어 해적단은 더욱 강한 공세를 이어 갔다. 사실, 전까지는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아무리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친구는 친구 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죽인다.
한시간 쯤 지나가자 그들은 아이언페이스의 군함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제 아이언페이스를 꽁꽁 묶어서 샤를르트에게 데려가기만 하면 끝난다. 그들도 인간이었기에 긴장이 살짝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악의 실수가 되었다.
굉음이 들리면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것이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아니, 아이언페이스의 모든 군함에서 굉음이 울렸다.
노련한 해적들 답게 당황했음에도 빠르게 진형을 갖추면서 주위를 살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 접시도 없었고, 바다 너머에 적의 군대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배가 크게 기울면서 해적들과 히스파니에가 넘어졌다.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배가 비슷한 상태였기 때문에 옆 군함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다.
결론을 내린 히스파니에가 명령했다.
"모두 탈출해 해적선으로 돌아가라!"
구명보트가 없었기에 그들은 바다에 뛰어 들었다.
엔디미온에게 박살난 군함들의 널빤지가 둥둥 떠다니고 있던 터라 그것들을 타고 해적선까지 헤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바닥에 발이 닿은 것이다. 수심도 복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물이 얕으니까 해적선까지 걸어갑시다."
해적들이 얼씨구나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히스파니에는 물속을 들여다 보았다.
검은 금속 면이 바다 속에 있었고, 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이상했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럼에도 히스파니에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했다.
히스파니에와 해적들이 걸어가는 동안 수면이 점점 낮아졌다. 썰물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졌다.
그들이 밟고 있던 바닥이 바다 위로 솟아 오르고 바닥에서 문이 열렸다.
한 젊은 남자가 괴물들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자은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저는 아이언페이스의 제 1 사령관인 베르나르 입니다."
"아르님 가문의 히스파니에 폰 아르님이라고 하오."
히스파니에는 베르나르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물에 젖어 총을 못 쓰게 되었고, 쫄딱 젖어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드니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베르나르가 악수를 하자는 듯이 히스파니에 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깐 생각하던 히스파니에가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부러졌다.
베르나르가 아이키도 기술을 사용해 그의 팔을 꺾어서 관절을 부순 것이었다.
아무리 데모닉 일지라도 고통에 무감각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히스파니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베르나르가 히스니에의 목을 잡았다.
히스파니에의 목이 부러지며 머리가 덜렁덜렁 흔들렸다.
경악한 해적들은 베르나르의 명령을 받은 괴물들에게 전부 잡아 먹혔다.
괴물들이 식사를 마치자 베르나르는 히스파니에의 목을 베어 잠수함으로 들어 갔다.
그렇게 버려진 히스파니에의 몸뚱아리는 바닷속에서 물고기 밥이 되어 영원히 찾지 못하지 되었다.
한편, 아이언페이스는 주사위를 던질 차례였다. 저 빌어먹을 유령은 하루종일 주사위만 굴렸나? 벌써 10번 연속으로 지고 이번에도 패배 직전 이었다. 5개의 주사위가 모두 같은 눈이 나오지 못하면 더 던질 것도 없이 지는 거였다.
티치엘의 마법으로 중계를 보던 북쪽 바다 피난선의 관중들이 숨죽였다.
리체가 기도하는 자세로 말했다.
"오, 제발."
마침내 주사위가 구르는 10초가 5분 정도로 느껴졌다.
6....6....6....6.....
마침내 마지막 주사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5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지기 시적했다.
승리! 승리였다!
그들은 승리했다! 저 악마 아이언 페이스를 상대로 승리 했으니 곧 전쟁이 끝날 것이었다.
관중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향해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인류를 구원한 영웅!
란지에! 란지에! 란지에!
그들은 란지에 로젠크란츠를 사랑했다.
떨떠름한 얼굴을 한 리체에게 티치엘과 클로에가 다가갔다.
"미친 것 같지?
끄덕끄덕.
티치엘과 클로에가 리체의 말에 동의했다.
클로에가 말했다.
"어릴때 본 고전 소설의 결말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 소설도 그들의 지도자에 대해 환호하는 광기로 끝났거든요."
"무슨 소설인데?"
"디스토피아요."
"하긴, 지금 상황도 디스토피아는 맞지."
화면 속에서 아이언페이스가 외쳤다.
"이건 무효야! 주사위 같은 운빨 게임에서 11번이나 연속으로 이기는 것이 말이 되?"
"응. 네 실력이 모자란 것을 탓해."
"...대체 여기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돌아본 곳에 베르나르가 서 있었다.
그러나 엔디미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아니었다.
베르나르가 들고 있는 히스파니에의 머리.
그것을 보자 엔디미온의 빙의가 강제로 해제되며 조수아의 의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할아버지?"
조슈아의 몸이 떨렸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508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