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페이스는 순수한 존재다.
그는 프시키와 악의 무구라는 서로 다른 순수한 존재가 합쳐져서 태어났다.
강력한 에너지 덩어리 들이 형성한 아이언페이스의 몸은 어떤 약점도 없었다.
물리적으로 아이언페이스를 공략하는 방법은 오로지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쓰러트리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베르나르가 남긴 메모에 따르면 아이언페이스에도 엄연히 약점이 존재했다.
겉으로는 알기 힘든, 정신적인 약점이 있던 것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때 묻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때 묻지 않은 것은 오로지 증류수와 어린 아이 뿐이다.
그러므로 아이언페이스는 어린 아이와 다를바 없었다.
그의 순수한 잣대는 세상을 흑과 백으로 구분 지었고 동물과 식물과 자연을 선으로, 인간을 악으로 판단했다.
순수하게 악을 처단하고 선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이 프시키를 이용한 대학살 이었다.
한편으로 그의 순수함은 유치하다.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진지한 태도와 깊은 사고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곤 했다.
그렇게 순수한 태도 때문에 샐러리맨이 아이언페이스에게 패배하고도 살아 나올 수 있었고, 아이언페이스가 엔디미온과의 추격자 게임을 진심으로 즐겼던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소멸의 기원이 완성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베르나르가 남긴 쪽지를 곱게 접어 넣은 후, 이솔렛은 마법을 이용해 막시민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한편, 막시민은 10시간 째 '시간을 멈추는 찬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소멸의 기원'이 완성되기 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시간 뿐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아이언페이스를 막기 위해 설치해 둔 모든 방어막 들이 뚫려 버린 것이다.
지금도 산 아래에서 폭격이 일어나고 있었다.
루시안의 전투기가 어떻게든 아이언페이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박 사박
기둥 근처에 있는 숲이 흔들렸다. 누군가 기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란지에 인가? 아니면 짐승 일수도, 아이언페이스가 부리는 괴물 일 있었다.
나우플리온과 루이잔 강피르가 몸을 긴장시키면서 잔투 태세를 취했다.
마침내 풀 사이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
황금 빛 털을 가진 호랑이는 등에 흰머리 소녀를 태우고 있었다.
나야트레이가 호랑이에서 내린 후에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임무 완료 했습니다."
그녀에게 공을 치하한 뒤 이스핀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슬슬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루시안이 잘 버텨주고 있지만 곧 한계가 찾아올 터였다.
그렇게 되면 소멸의 기원이 완성될 때 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일행들이 진을 쳤다. '풍요의 기둥'이 근처에 있고, 막시민이 무방비 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이것을 고려해 인원을 배치했다.
'티그리스'를 사용하는 나우플리온과 '블러디드'를 사용하는 이스핀이 전위를 맡았다.
중간에서는 나야트레이가 후방과 전방을 오가며 아이언페이스를 교란하기로 했다.
후위는 루이잔 강피르와 '소멸의 기원'에 참여하지 않은 마법사들이 맡았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루시안은 여전히 잘 버티고 있었고 소멸의 기원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막시민은 조금씩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 이었을까?
통신 장비에서 루시안의 비명이 울렸다.
'이런 젠장!'
전투기에서 사람 형상을 한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과 동시에, 지면에서 정체불명의 빛이 치솟았다.
그 빛은 전투기를 관통한 뒤 사람 형상의 물체를 소멸시켰다.
전투기가 폭발하며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검은 연기가 푸른 하늘을 어둡게 만들었다.
멍하게 있던 막시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루시안이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게 운이 좋은 애가, 그렇게 죽을리 없었다.
막시민은 통신기를 켜고 루시안을 불렸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지지직 거리는 소리만 들었다.
"소용없어."
나야트레이가 막시민의 어깨의 손을 얹었다.
"루시안은 죽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소리를 지른 막시민은 뒤늦게 아차했다.
그는 나야트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빨개져 있었고,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루시안은 제때 탈출했지만, ... 빛에 휘말려서 산산조각나 가루가 되었어."
잠시 뜸을 드리던 나야트레이가 말을 이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묘족은 눈이 아주 좋거든."
나야트레이는 그 말을 남긴 후에 휙 하고 가버렸다.
막시민은 나야트레이를 잡을 수 없었다.
20분이 지나갔다. 이스핀의 '블러디드' 능력이 변종 프시키를 감지했다. 늦어도 10분 안에는 아이언페이스가 그들을 습격할 것이다.
"전투 준비"
제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던 전투원 들이 무기를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답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이언페이스가 숲속에서 걸어나왔다.
"여기 모두 모여 있었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언페이스가 굳이 연극투로 말했다.
"지금까지 버티신 분들이니 상을 드려야 겠죠?"
약간의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제가 왜 세상을 멸망시켰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께는 특별히 그 이유를 알려 드리도록 하죠."
"닥쳐."
이스핀 샤를이 코웃음을 치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넌 그냥 괴물일 뿐이야. 괴물에게 사연 따위는 필요없어."
그 말을 신호로 전투원들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제일 앞에 선 이스핀과 나우플리온이 마법을 발동했다.
그들의 검에 블러디드와 티그리스의 힘이 실렸다.
측면을 파고든 나우플리온이 몸통으로 검을 휘둘렀다.
아이언페이스가 검을 들어 막자 힘에서 밀린 나우플리온이 튕겨 나갔다.
아이언페이스가 나우플리온을 추격하려다가 멈추았다. 마법사들에 의해 땅이 늪처럼 변한 것이었다.
그 틈을 타 이스핀이 등으로 찔러 들어갔지만 아이언페이스가 입자로 분해되면서 공격을 회피했다.
이어지는 아이언페이스의 반격.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늪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나우플리온과 이스핀을 꽁꽁 묶었다.
아이언페이스가 이스핀의 목을 자르려는 찰나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흥~
"가라! 용용아!"
마법사들의 버프들이 중첩되며 호랑이의 속도가 빨라졌다.
아이언페이스가 공격하기 전에 용용이의 몸통 박치기가 적중했다.
나무가 부러지고, 바위가 산산조각 나면서 아이언페이스가 튕겨나갔다.
용용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공격을 지속했다.
아이언페이스의 목을 물어늗으면서 다리로 놈을 고정시켰다.
그 상태로 몸을 휘두르자 목이 뿌러지는 소리가 나며 놈의 머리가 뽑혀 나왔다.
"이게 끝인가?"
입에 물린 머리가 말했다.
용용이가 당황한 틈을 타 몸통이 검을 휘둘렀다.
용용이의 몸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아이언페이스의 머리가 풀려났다.
놈의 머리가 통통 뛰어 몸통과 합체되는 것을 보면서 용용이의 숨이 끊어졌다.
아이언페이스가 중얼 거렸다.
"아무래도 너무 봐 준 것 같은데?"
그는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풍요의 기둥으로 달러가던 아이언페이스가 적들을 마주쳤다.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나우플리온이었다.
그가 검을 휘둘려 오자 아이언페이스는 검을 마주 대했다.
파사삭 소리와 함께 나우플리온의 검이 산산조각났다. 당황한 그가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아이언페이스는 본래 인간이 아닌 존재 였다.
아이언페이스의 검이 가로로 휘둘려지며 나우플리온의 허리를 잘랐다.
그의 몸이 두 동강나서 바닥에 툭 떨어지고, 신경이 남아있던 다리가 제멋대로 달려나갔다.
아이언페이스는 공격해 들어오는 적에만 집중했다.
이스핀 샤를의 검에 블러디드의 힘이 씌워져 있었다.
그거야 뭐, 안 닿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이언페이스는 검을 휘두르는 대신 충격파를 날렸다.
그녀가 황급히 방어하려 했지만, 힘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이스핀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바위에 부딫쳐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은 호랑이를 부리는 흰머리 소녀와 루이잔 강피르 였다.
그들은 앞선 두 사람과는 달리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루이잔의 공격에서는 어디선가 본 듯한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금방 둘을 제압해 냈다.
막시민은 막막한 심정이었다.
적은 너무나도 강했고, 동료들이 모두 당했다.
아직 15분은 더 버텨야 하지만, 지원병이 제때 올 것 같지 않았다.
'소멸의 기원' 작업에 참여 중인 마법사를 빼내올 수도 없었다.
결국 막시민이 시간을 끌어야 했다.
저 괴물과 싸울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만한 것은 이솔렛이 전해 준 아이언페이스의 약점이었다.
과연 놈이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 사람 사람 사람'을 듣고도 계속 집중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515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