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페이스가 숲길을 걸으며 나는 발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막시민은 마치 세상에 단 둘 밖에 없는 것 처럼 느꼈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막시민의 말빨 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막시민이 아이언페이스를 불렀다
"어이, 공룡. 어서오고."
함정의 시동어인가? 아이언페이스는 기감을 펼쳐 주변을 확인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이봐, 공룡. 어디를 찾는거냐?"
그제서야 아이언페이스는 막시민의 뜻을 깨달았다.
"나는 공룡이 아니다."
"옛 시대부터 내려오는 화석이라면서? 그럼 공룡이지 뭐."
아이언페이스가 말문이 막힌 것을 본 막시민이 덧 붙였다.
"공룡이 아니면 뭐, 삽엽충이냐? 그것도 아니면 남세균? 모르겠으면 그냥 벨로시랩터로 하자."
아이언페이스에게 막시민은 처음 보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번 말리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언페이스는 막시민을 두 동강 내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깐! 동족을 죽일려고?"
"인간은 동족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랩틸리언 이거든?"
아이언페이스가 뭐라 하기 전에 막시민이 이어 말했다.
"랩틸리언은 공룡 중에서 트로오돈의 후손이야. 트로오돈은 너희 벨로시랩터의 친척 관계지."
"헛소리 하지 마라. 네놈들이 진짜로 친척이면 멋대로 자연을 파괴하지는 않았겠지."
"진짜라니까! 우리도 동물들과 너희 프시키처럼 채네에 에너지를 저장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자손을 낳는다고!"
아이언페이스가 어리둥절한 사이 막시민이 페이스를 빼았았다.
"우리 인간들과 동물들은 먼 친척이지, 엄연한 동족이야. 우리 모두 먹음으로 영양소를 공급 받고 그 영양소를 세포 내에서 ATP 형태로 바꾸어 에너지를 저장해. 인간과 동물 모두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면서 호흡을 해.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본인과 똑닮은 자식을 낳지. 살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다를 뿐이지. 인간과 동물은 본질적으로 똑같아. 그러므로 자연과 네가 동족이라면, 우리 인간도 아이언 페이스와 동족인거지."
아이언페이스가 검을 빼들었다.
"어쨋든, 널 죽여야 겠다."
"잠깐! 갑자기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 건데?"
"네놈의 말을 계속 들었다가는 이대로 다음날이 되겠지."
"야, 설마 동족을 죽이려고?"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그걸로 따지면 나보다 네가 훨씬 많이 죽였거든? 난 한번도 살인을 한 적 없어!"
"그래. 네가 사람을 죽인적은 없겠지. 하지만 네놈도 결국 그동안 다른 생명체들을 짓 밟으며 살아 왔지 않는가?"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먹이 그물에 의한 거라고. 그렇게 따지만 인간이 아니라 육식동물과 초식 동물도 다른 생명체를 잡아 먹지 않냐? 왜 인간에게만 그러는 건데?"
아이언페이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막시민의 말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아이언페이스가 막시민을 검으로 내려칠 때였다.
서걱!
검과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팔이 있던 자리에는 얼음이 맺혀 있었다.
새하얀 검신이 아이언페이스의 몸체를 파고 들었다. 마치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공격이 춤을 추었다. 호랑이가 지나간 길을 따라 쌍검이 휘몰아 쳤다.
보리스의 티그리스와 이솔렛의 티엘라가 마치 왈츠를 추듯 절묘하게 합을 맞추었다. 아이언페이스가 반격은 커녕 잘린 팔을 회수할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우플리온의 시신을 발견하고,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강렬한 감정은 소원의 매개가 되고 깊은 소원은 찬트를 불러온다.
보리스와 이솔렛이 발동한 신성찬트가 세상을 왜곡했다. 숲과 하늘과 나무가 사라지고 끝이 안 보이는 흰 공간이 나타났다. 오로지 흰색과 보리스, 이솔렛, 막시민, 야트레이, 이스핀만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아이언페이스로 부터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멀쩡한 것을 볼 때 공간이 오로지 아이언 페이스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 같았다.
막시민이 후방에서 카프라치오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남은 일행들은 아이언페이스에게 달려 들었다.
...
'풍요의 기둥'에 있는 마법사들이라고 주변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언페이스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챈 상태였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단 한 명이라도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소멸의 기원'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밖에서 시간을 끌어주기를 빌었다.
소멸의 기원이 완성되기 15분전에 막시민을 제외한 모두가 나가 떨어졌지만 막시민이 '공룡 공룡 공룡 사람 사람 사람' 화법으로 10분이나 시간을 끌었고 소멸의 기원 완성 5분 전에는 그들 모두가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레오멘티스 교수가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아무렴. 누구 제자인데."
쥬스피앙이 생전 처음으로 막시민을 칭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피비오노가 그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실패하면 저들의 노력은 모두 헛수고가 된다."
대선배의 일갈에 마법사들이 자리르 잡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가고 소멸의 기원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풍요의 기둥에서 빛이 쏘아져 나와 에피비오노에게 닿았다. 에피비오노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그의 의식과 생명이 점차 사라져 갔다.
...
에피비오노는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마법으로 지은 오두막집은 그가 어릴 때 살던 집이었다. 부모님이 코코아를 타주시던 부엌이 저기 창문 옆에 있었고 거실에는 주사위가 있었다. 또각 또각하고 익숙한 걸음소리를 듣다보니 무슨 놀이였는지 보였다. 추격자 게임 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추억이 떠올랐다. 벌써 천년이 넘게 지난 인연과 새로 생긴 인연. 가나폴리 왕국의 친구들과 필멸의 땅에서 만난 보리스, 나야트레이, 그리고 함께 아이언페이스에게 맞선 동지들. 생각해 보니 좋은 추억도 많았었던 삶이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왔다. 한 템포 쉰 뒤 소리를 내지않고 걸어오는 발걸음. 마치 누군가에게 장난을 칠려고 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에피비오노는 추억 속에 묻혀 있던 기억에 압도되어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에피비오노"
누군가 에피비오노를 뒤에서 끌어 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서로의 몸을 감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시 만났다는 것이었다.
에피비오노는 자신을 감싼 팔에서 빠져나와 뒤를 돌아 보았다. 에브제니스가 서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에피비오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더 일찍 오고 싶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했어. 미안해, 에피비오노.."
에피비오노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10년이든, 20년 이든, 100년이든, 1천년이든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동안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 사람이 그의 앞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찾아 왔잖아."
잠깐 망설인 에피비오노가 걸어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보고 싶었어."
"나도"
에피비오노의 품에서 빠져 나온 에브제니스가 말했다.
"밖에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어."
"모두?"
"그래 모두. 너희 부모님도, 우리 친구들도, 모두."
에브제니스가 에피비오노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끌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그들은 문을 열고 빛을 향해 나아갔다.
...
소멸의 기원이 완성되었다.
에피비오노가 사라진 자리에 탁한 덩어리가 생겨났다.그 덩어리가 회전하기 시작하자 사악한 에너지들이 마구 흡수되기 시작했다.
보리스와 이솔렛, 막시민, 나야트레이, 이스핀은 일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악의 무구의 힘으로도 부수지 못한 흰색 아공간이 갑자기 박살난 것도 모자라 아이언페이스가 분해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멸의 기원이 악의 무구를 강제로 흡수하려 하면서 악의무구와 프시키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언페이스도 그것을 눈치챘다. 어차피 자신은 끝난 상황이기에 한 명은 길동무로 삼고자 했다.
아이언페이스의 몸에서 파직 파직 번개가 튀었다.
일행들은 만약을 대비해 자세를 잡았다.
아이언페이스가 번개를 집어 던졌다.
온다!
그들은 번개를 상쇄시키거나 막으려 했다.
베테랑인 만큼 제때 방어막을 세워 공격을 막았지만, 그것은 페이크 였다.
진짜 공격은 그들의 배후에서 시작되었다. 어차피 후위만 노릴 생각이었기에 굳이 공격 범위를 넓게 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언페이스가 만든 에너지파가 일행의 배후를 초토화 시킴과 동시에 아이언페이스에게서 악의무구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 모습을 본 이스핀이 아이언페이스에게 달려 들었다.
그녀의 검에 블러디드의 힘이 맺혔고 그대로 아이언페이스를 베어냈다.
아이언페이스를 구성하던 변종프시키가 산산 조각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나 이스핀은 오랜 숙적을 쓰러트린 감성에 젖을 틈이 없었다.
아이언페이스가 방금 공격한 곳에 있던 사람은...
이스핀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녀의 발이 향한 곳에 새까맣게 탄 막시민이 쓰러져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다음화 링크
https://m.cafe.daum.net/rocksoccer/ADrt/722516
원작: 룬의 아이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