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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떠도는 소문
주정은 이미 돌계단의 문을 열어놓았다. 이렇게 열 수 없는 문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능히 그것을 열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바로 이와 같으니 그대가 가령 어떤 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만든다 해도, 분명 그 누군가가 그대의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칼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
다.
돌계단 위에 앉아 새장 속의 곽휴를 보고 있자니, 육소봉은 갑자기 이 새
장이 감옥과 아주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누구든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육소봉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사건이 이렇게 끝날 수 있다면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되려는지?
주인은 나무로 삼각자를 만들어 산 동굴의 크기를 재고 있었고 여주인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분명 무언가 기발한 생
각이 생겼음을 알았으나 먼저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생각하는 도중에 여자
들이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것을 좋아할 남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정이 갑자기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가려고 하오?"
여주인이 말했다.
"네."
"당신, 그를 전송하지 않을 거요?"
"당신이 가시면 저도 가지요."
주정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내가 가는 걸 전혀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군." 여주인이 말했
다.
"당신도 가실 생각이 없나요?"
주정이 긍정했다.
여주인이 말했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을 찾을 일이 생겨 그가 언제든지 사람을 보내온다면
당신은 곧 가시겠죠." 주정이 말했다.
"내게 만일 그를 찾을 만한 일이 생기면 그 역시 올 겁니다." 여주인이 말
했다.
"그가 와도 인사도 안 하고 말도 한마디 안 하시면서." "오고 안 오는 것
과 말하고 안 하고는 다른 문제요." 여주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들 같은 친구 사이는 천하에 둘도 없을 거예요." 주정은 손에 들었던
삼각자를 내려놓고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난 이곳에 남기로 이미 작정했소."
"알아요."
주정이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잠을 잘 수 있겠소?"
여주인이 말했다.
"당신이 주무실 수만 있다면 저도 그럴 수 있어요." 주정이 말했다.
"만일 당신이 이곳에 남지 않는다 해도 당신을 탓하진 않겠소." 여주인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당신은 절 쫓아내고 그 여우 같은 계집더러 함께 있자고 할 작정인가
요?" 주정이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당신이 질투를 다 하게 되었지?"
"지금 이 순간부터요."
"지금 이 순간?"
"방금 그 여우 같은 년이 당신에게 몰래 무슨 얘기를 했나요?" 주정이 미
소지으며 말했다.
"그건 비밀이라오."
여주인이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무슨 비밀이오?"
주정이 유유히 말했다.
"다음에 말해 주겠소. 지금은 지금은 가서 그를 전송이나 하시구
려." "안 갈래요."
"어째서?"
여주인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난 지금부터, 당신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겠어요. 혼자서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 주정이 말했다.
"왜냐하면 "
여주인이 아름다운 눈에 애정을 가득 담고서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
했다.
"왜냐하면 이제서야 난 당신이 아주 대단한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이지요. 전 다른 사람이 당신을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정말 걱정된다구요!"
육소봉은 멀리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저들의 위기는 이미 지나간 것 같군."
화만루가 말했다.
"그들에게 무슨 위기가 있었는데?"
육소봉이 말했다.
"지난 이년 동안 여주인은 주인에 대해 좀 실망을 했었던 모양이야. 난
항상 그들이 원수지간으로 변할까 걱정이었지." 화만루가 말했다.
"여주인은 주인을 너무 게으르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너무 쓸모가 없다
고 말야."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지 충분히 알았으니
다행이지." 화만루가 수긍하며 말했다.
"만일 주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이곳에 갇혀 죽었을지도 모르지." 모든
여인들은 자기의 남편 덕택에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법이다.
육소봉이 또 탄식하며 말했다.
"다른 것은 겁나는 게 없지만, 굶어 죽는 건 정말 참기 힘들 것 같네." 그
는 새장 안의 곽휴를 바라보았다. 곽휴는 눈을 크게 뜨고 새장 밖의 상관설
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아는 손에 맛있는 음식들을 들고서 곽휴와 소곤대며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곽휴는 이미 기운이 빠져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거칠어져 있었다. 그
러다 갑자기 뛰어오르더니, 있는 힘껏 새장에 부딪혔다. 당연히 부딪혀 봤자
열리지 않았다. 이 새장은 본래 그가 특별히 고안해 만들어 아무도 열 수
없는 것이었다.
설아가 바깥에서 냉정히 그를 바라보다가 가려고 하자 곽휴가 또 그녀를
붙들었다. 두 사람은 또다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고, 곽휴는 탄식하며 종
이 위에 사인을 해 설아의 맛있는 음식과 맞바꾸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화만루가 갑자기 물었다.
"여전히 그 보물들을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죽어도 말 안 하려고 하는가?"
육소봉이 말했다.
"그는 죽음을 겁내지 않아."
화만루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정말 가난을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여기는 걸까?" 육소봉이
말했다.
"글쎄 지금은 그도 아마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을 발견했을 거야."
화만루가 말했다.
"배고픔?"
육소봉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상관설아가 뛰어오더니 눈을 빛내며 말
했다.
"내가 그 음식들을 그에게 팔았답니다. 내가 얼마에 팔았는지 맞춰보세
요." 그들은 짐작할 수 없었다.
설아가 들고 있던 종이를 흔들며 말했다.
"오만 냥이요, 오만 냥! 난 언제든지 그가 직접 써준 이 종이로 그의 금고
속에서 돈을 꺼내갈 수 있답니다!" 육소봉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넌 마음이 아주 새까맣구나."
화만루가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그 음식보다 더 비싼 건 아마 없을 거야." 설아가 말했다.
"그래서 그 늙은 여우가 비록 화가 잔뜩 났어도 어쩔 수 없죠. 뭐." 화만
루가 탄식하며 말했다.
"배고픔은 확실히 견디기 힘든 모양이야."
육소봉이 말했다.
"설마 그의 전재산을 빼앗을 작정은 아니겠지?"
설아가 말했다.
"그 재산은 본래 우리 것이었어요. 제 성이 상관(上官)이라는 걸 절대 잊
지 마시라구요." 육소봉이 말했다.
"네가 만일 매일 그에게 오만 냥씩 빼앗는다면 일 년쯤 지난 후에는 그에
게 빼앗을 게 아무것도 없게 되겠구나." 설아가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3년 정도 빼앗아야지. 다 빼앗게 되어도 나와 함께 이
곳에 있어줄 사람이 있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주인이 정말로 이곳에 남기로 결심했나?"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신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가 여주인한테 말하기를, 이곳에 남으려는 이유는, 이곳을 이용해서 사
람을 놀라게 할 만한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난 그
가 왜 남으려는지 그 본심을 잘 알고 있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그게 뭔데?"
설아가 눈을 깜박이며 더더욱 신비스럽게 웃더니 말했다.
"그건 비밀이에요."
육소봉이 말했다.
"비밀인데 어떻게 당신한테 얘기할 수 있겠어요?"
육소봉은 그녀를 잠시 노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 비밀을 잘은 모르겠다만, 난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설아가 말했다.
"무슨 걱정이요?"
육소봉이 말했다.
"네가 이 종이를 이용해서 돈을 꺼내갈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종이의
내력을 물으면?" 설아가 말했다.
"절대로, 아무도 물을 리가 없어요."
육소봉이 말했다.
"아?"
설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본래 비밀스럽고 괴상한 늙은이여서, 그의 가장 가까운 부하조차도
그의 행적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는 여태껏 이런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 왔는데요, 뭐." 육소봉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이것 역시 그의 자업자득인 것 같군." 설아가 웃으며 말했
다.
"바로 그래요. 만일 그 자신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에
게서 돈을 빼앗으려는 것도 아주 어려웠을 거예요." 사람의 운명은 전부 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
주 좋은 운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육소봉은 미소지으며 일어나 말했다.
"그렇다면 넌 여기서 천천히 재량껏 빼앗아봐라. 날 대신해서 술을 좀 ㅃ
앗아다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설아가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 벌써 가려구요?"
육소봉이 말했다.
"내가 만일 이곳에서 사흘만 머무른다면, 숨막혀 죽을 거다." 설아가 말했
다.
"당신은 그 비밀을 물어보지 않을 건가요?"
"그래."
설아가 눈동자를 굴리며 웃다가 갑자기 말했다.
"사실 당신에게 말해 주어도 별 상관은 없어요. 결국 조만간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 육소봉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남으려는 이유는 그도 날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하기 때
문이에요." 육소봉이 웃었다.
설아가 담담히 말했다.
"당신이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그에게 시집가면 그
때는 믿지 않을 수 없을걸요." 육소봉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네가 그에게 시집간다니, 그럼 여주인은?"
설아가 유유히 말했다.
"주인이 여주인을 반드시 한 명만 가지라는 법은 없잖아요. 당신은 눈썹
을 네 개가 가질 수 있는데, 어째서 주인은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릴 수 없다
는 건가요?"
육소봉은 석양이 가득한 산비탈을 걸어갔다.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걸어
가다가 갑자기 말했다.
"그 꼬마 여우가 분명히 또 거짓말을 한 거야"
화만루가 말했다.
"아!"
육소봉이 말했다.
"주인이 미치지도 않았는데 그런 작은 악마를 어린 부인으로 맞을 수 있
겠어?" 화만루가 말했다.
"당연히 그럴리 없지."
육소봉은 다시 입을 다물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말했다.
"하지만 주인이 바보라면 언제든지 미칠 짓을 할 수도 있겠지." 화만루가
말했다.
"어린 부인은 항상 꼬마 여우와 비슷하지."
육소봉이 말했다.
"그러니 자네가 빨리 되돌아가 그 바보에게 절대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말라고 권하는 게 좋겠어." "왜 자네가 가지 않고?"
"내가 그와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도 알잖나." "만일 이번 일이 없
었다면 주인은 우리들을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야." "우연히 한번쯤 미친 짓
을 하는 건 괜찮아."
화만루가 탄식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누구든 자네와 친구가 되는 사람은 조만간 자네한테 미치는 병
에 전염되게 되는가 보이." 그러면서도 그는 되돌아갔다. 그는 돌아가지 않
을 방법이 없었다.
육소봉은 멍청이처럼 길가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 산길은
아주 와져서 산나물을 캐는 늙은 노파 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화만루가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나?"
화만루가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
"자네는 미친놈일세. 나도 그렇고."
"그럼 원래 그런 일은 없었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확실히 뭔가 비밀이 있어. 주인이 글쎄 설아를 양녀로 삼아
버렸지 뭔가." 육소봉이 멍청해졌다.
화만루 역시 탄식하며 쓰게 웃더니 말했다.
"자네는 그 꼬마 악당이 거짓말을 잘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왜 항상
그녀의 속임수에 걸려드는 건가?" 육소봉 역시 탄식하며 쓰게 웃더니 말했
다.
"난 바보일 뿐 아니라 멍청하기 때문이네."
발자국소리에 고개를 드니 설아가 팔짝팔짝 뛰면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
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방금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나요?"
육소봉이 말했다.
"산나물을 캐는 노파밖에 없었는데."
설아가 놀라 뛰어오르며 말했다.
"그 노파는 분명히 우리 언니예요."
"언니라니? 상관비연?"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내고 말했다.
"난 이제서야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녀는 죽은 체하
고 있던 거였다구요. 방금 전에 당신들이 떠났을 때, 난 아래로 내려가서
육소봉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외면하고 걸었다. 화만루까지 붙
들고 함께 걸어갔다.
"이번엔 무슨 말을 하든지 진짜 듣지 않겠다."
설아는 그들이 멀어져 가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가볍게 탄식했
다.
"왜 내가 진실을 말할 때 사람들은 도리어 믿지 않으려는 걸까?"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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