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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꽃을 수놓는 남자
(1)
혹서(酷庶). 뜨거운 태양이 모래 먼지 가득한 길 위에 내리쬐이고 있었다.
상만천(常漫天)의 얼굴의 칼자국 역시 햇빛을 받아 붉은빛을 띠었다.
세 줄기의 칼자국에 일고여덟 군데의 내상 덕분에 그는 지금의 지위와 명
성을 얻을 수 있었다. 비가 오고 습기찬 날이면 내상 부위의 뼈가 시큰시큰
쑤시고 아파와, 감개무량하게도 그날의 괴롭고 힘들었던 혈전이 떠오르곤
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월 오백 냥의 월급
을 받을 수 있는 부총표두의 역할을 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
은 진실로 피와 땀을 맞바꾼 대가였다. 요즘에는 그가 직접 호송하러 나가
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진원표국(鎭遠표局)'의 총표두와 그는 본래 동문
사형제로, 아침에는 무공을 연습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면서 이미 몇 년간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터였다. 그들의 '금창철검기'만 보이면
동남일대의 강도들은 감히 '진원'이 호송하는 물품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호송은 아주 중요했다. 물품의 주인은 그들 사형제가 직접
운반해 주기를 요구한데다가 총표두의 관절염까지 재발하여, 상만천 혼자서
거의 스물 일곱 근이나 거철검을 메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진원 위세를 드날린다 "
정자수 노조는 이곳 밥을 벌써 이십 년이나 먹고 있었다. 나이는 적지 않
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컸고, 또 중간중간 요기할 때 열두 동이의 고량주를
마시고는 지금 막 정력을 과시하면서 앞에서 호송팀을 불러 대고 있는 중이
었다.
상만천은 푸른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세월은 양보하는 법이 없어서,
그는 갑자기 자신이 정말 늙었음을 느꼈다. 이번 호송 작업이 끝나면 노령
으로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때가 될 것이다. 날씨가 너무 더웠으므로 앞
에 좀 시원한 곳이 있다면 목을 좀 축이고 다시 떠나도 늦지 않을 듯했다.
상만천은 말고삐를 당겨 앞쪽으로 달려갔다. 노조를 막 도와주려고 하는
데, 돌연 앞쪽에 한 사람이 단정히 길가에 앉아 수를 놓고 있는 것이 보였
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남자였다.
상만천이 강호를 떠돈 지 30여 년이 되었으나 남자가 수를 놓는 것은 본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이렇게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길가에 앉
아 수를 놓는 사람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이 사람, 혹시 미친 게 아닐까?"
그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계란을 깨어 놓으면 익을 정도로 뜨거
운 날에 그는 자홍빛의 솜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기괴한 것은, 얇은 홑옷을 입은 사람들조차 온통 땀투성이였는데, 그의 얼
굴에는 땀 한방울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상만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둘러 뒤에 따라오던 운반 수레를 멈추
게 하고는 정자수 노조에게 눈짓을 했다.
노조도 강호에서 닳고 닳은 사람으로, 상만천이 처음으로 호송 운반을 할
때, 정자수로서 그를 따라갔던 사람이다. 당연히 그는 나이든 주인의 뜻을
잘 알았다. 가볍게 기침을 한두 번 하더니 기력을 모아 달려나갔다.
이 수염 가득한 남자는 정신을 집중하여 수를 놓고 있었는데 마치 춘정이
일어난 여인네가 규방에서 바삐 혼례 예복에 수를 놓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
다. 열일고여덟 개의 수레가 이미 그 때문에 길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는데
도 그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수를 놓고 있는 것은 한떨기 검은 모란이었는데, 놀랍게도 여인네보
다 섬세한 솜씨였다.
노조가 갑자기 소리쳤다.
"친구가 수놓은 이 모란화는 아주 훌륭하네만, 아쉽게도 이곳은 수를 놓
고 앉아 있을 곳이 아니네." 그는 워난 목청이 컸는데, 지금은 또 이 사람을
놀라게 할 생각으로 더욱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 수염 가득한 남자는
고개도 쳐들지 않았고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설마, 바보에 귀머거리는 아닐까?"
노조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이보게, 길을 양보해 주지 않겠나, 우리는 "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춰지고,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방금 손을 뻗어
어깨를 칠 때 이 수염 가득한 남자가 수놓던 침으로 그의 어깨를 한번 찔렀
다.
칼을 맞는다 해도 미간조차 찌푸릴 리 없는 강호의 영웅이 수침으로 한번
찔렸다 해서 뭐가 그리 대단하겠는가.
노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손을 움츠리려고 하자, 손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그의 몸 반쪽이 전부 마비된 것 같았다! 이 수침
에 무슨 사문외도의 술수가 있었단 말인가! 노조는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나
자기의 손을 보았다. 손은 전혀 붓지도 않았는데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는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만천이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려, 수염 가득한 남자에게 달려와 인사하며
말했다.
"친구께선 아주 아름다운 모란을 수놓으셨군요."
수염 가득한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것도 수놓을 수 있네."
상만천이 물었다.
"어떤 것을요?"
"장님을 수놓지."
상만천이 웃으며 말했다.
"장님은 수놓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수염 가득한 남자, 즉 대호자가 말했다.
"장님은 수놓기가 가장 좋다네, 침 두 개만 있으면 장님을 수놓을 수 있
지." 상만천이 말했다.
"어떻게요?"
"바로 이렇게."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노조의 얼굴에 침 두 개를 찔렀다.
노조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땅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는데 손아귀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바로 눈에서 흐르는 피였다! 상만
천의 안색이 급변하여 손을 돌려 칼을 잡았다.
수염 가득한 남자는 도리어 유유자적하게 그곳에 앉아 말했다.
"보게, 침 두 개 가지고 장님을 수놓지 않았나?"
상만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는 아주 손이 빠르시군."
"장님을 수놓는 게 가장 빠르다오. 침만 있으면 서른여섯 개의 장님도 수
놓을 수가 있지." 이 호송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상만천 자신까지 포함해서
정확하게 서른여섯 명이었다. 수행하는 세 명의 표사들도 모두 뛰어난 고수
들이 었는데 그들이 말을 달려 다가왔다.
그래서 상만천은 비록 놀라기는 했으나 감정을 억제하며 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는 무슨 원한이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물품을 약탈하려는 것인가?"
"난 수를 놓으러 왔소."
상만천이 말했다.
"아직도 수를 놓을 생각인가?"
"먼저 서른여섯의 장님을 수놓고, 그후에 80만 냥을 수놓은 뒤 돌아갈 거
요." 상만천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내 검 역시 수놓는 데 뛰어난 물건이라네!" "무엇을 수놓는
가?"
"죽은 사람을 수놓지, 죽은 사람을!"
웃음소리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칼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이 거철검은 비록 무슨 신령스러운 대단한 칼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칠검
선생이 만든 진품이었다.
상만천은 이 검에 최소한 40여 년의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수행하는 표사들 역시 병기를 꺼내들었다. 하나는 안령도(雁翎刀)요, 하나
는 연자창(練子槍)이요, 하나는 상문검(喪門劍)이었다.
표객들은 주로 물품을 급습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녹림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무슨 강호의 도의니, 일대일 결투니 하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
었다.
상만천이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청자, 함께 덤벼들어 저자의 초자(招子)를 먼저 없애버리세!" 초자란
눈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또 다른 사람이
그들 장님으로 만들고자 하는 법이다! 강호의 호질들은 본래 '이에는 이, 피
에는 피!'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수염 가득한 남자는 여전히 수를 놓았
고, 27근의 철검이 바람소리와 함께 공격해 들어왔다.
연자창의 '독룡취수' 역시 측면에서 그의 허리를 찔러갔다. 진원의 표사들
의 무공은 그들 사형제들의 가르침을 받은 탓에 초식 출수가 당연히 뛰어났
다.
수염 가득한 남자가 돌연 웃으며 말했다.
"수를 놓았소."
그의 모란이 완성되었다. 그가 수놓던 침을 비스듬히 들 때, 상만천은 단
지 차가운 끝이 번뜩이는 것을 느꼈을 뿐인데 어느새 눈을 찔렸다.
그곳에는 이 속도를 형용할 수 있는 사람도,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상만천은 미친 듯이 한번 부르짖더니 철검을 날리고는 고꾸라졌다.
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철검이 멀리 있는 길가의 나무에 일척 정도 날아가
꽃혔다. 이때 수염 가득한 남자는 이미 네 번째 장님을 수놓고 있었다.
일흔 개의 침, 서른여섯의 장님. 얼마나 빠른 속도이고, 얼마나 잔인한 수
법인가! 한 폭의 하얀 비단이 상만천의 얼굴을 덮고 있었는데 그위에는 순
식간에 아주 크고 빨간 모란이 수놓아져 있었다.
강중위(江重威)가 걸을 때 몸에서는 마치 살아 있는 방울소리처럼 항상
딸랑딸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당연히 방울이 아니었다. 강중위는 평남왕
복의 총관으로 아주 위엄있고, 아주 권위가 있는 인물이었다.
왕부에는 당연히 많은 기밀의 요충지가 있었고 그곳의 문에는 당연히 자
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모든 열쇠는 그가 보관하고 있었다. 몸에 스물세 개
의 열쇠를 지닌 사람이 길을 걸으면 당연히 딸랑 거리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신중하고 침착할 뿐 아니라 아주 충직하고, '
십삼태보횡련'이라는 일신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어서 정말로 칼로 찌를 수
없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
다. 그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의 철사장은 이미 30퍼센트 정도 완성되어서 돌을 조각처럼 깨뜨려 가
루로 만들 수 있었다. 왕야는 그에게 열쇠를 보관하라고 하고서는 줄곧 마
음을 놓고 있었다.
지금 그는 왕야 대신 명주 하나와 옥 두 개를 가지러 보물창고에 가는 길
이었다.
오늘은 왕야 애첩의 생일이다. 왕야는 애첩에게 명주와 옥을 생일선물로
주기로 이미 약속한 터였다.
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왕야도 자기의 소중한 여자에 대해서는 항상
대단한 선심을 쓰곤 했다.
긴 복도는 왕부의 보물창고와 이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주 조용하
고 고요했다. 누구든 감히 한 발자국이라도 접근하려 했다간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금지 구역에 들어선 후에는 일고여덟 발자국 정도마다 강중위가 직접 훈
련시킨 철갑 병사들이 석상처럼 창을 잡고 서 있었다.
이 병사들은 아주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날벌레들이 날아와 얼굴
에 앉는다면 다른 사람들이야 그것들을 잡아 발로 밟아 죽이겠지만, 그들은
절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중위는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엄격
했기 때문에 누구든 자신의 직무를 소홀히 해서 강아지 한 마리라도 금지
구역에 들여보내는 날이면 그자 역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조차, 들어갈
때는 그날의 암호를 말해야만 했다.
오늘의 암호는 '해와 달이 함께 빛난다'였다. 아주 길한 날이었기 때문이
다.
강중위처럼 영준하고 엄숙한 사람조차 얼굴에 기쁜 빛을 숨길 수 없었다.
그도 오늘 왕비의 수연에 초대된 귀빈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곧 예복으로
갈아입고 가서 축하주를 마실 터였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평상시보다 훨
씬 빨랐다.
허리에 장검을 찬 여덟 명의 병사가 그의 뒤를 따랐다. 병사들은 모두 고
수들로서 이들은 백 명당 하나씩 추려낸 사람들이었다. 강중위는 아주 신중
한 인물이었다.
보물창고의 중문은 열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1척 7촌 두께의 철문이
총 세 개 있었는데, 자물쇠는 유명한 장인이 특별히 제조한 것이었다.
강중위가 마침내 최후의 문을 열자 한차례의 음산한 찬바람이 얼굴에 확
덮쳐왔다.
이곳도 세상의 많은 보물창고들과 마찬가지로 무덤처럼 음산하고 냉랭했
다.
단지, 무덤에는 죽은 사람이 있을 뿐이었지만, 이곳에는 죽은 개미조차 없
었다.
매번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강중위의 마음속에는 아주 기괴한 생각이 떠
오르곤 했다. 어떤 사람이 이 보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만일 이곳에서만 생활해야 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가령 그에게 이
세상 보물 전부를 준다 해도, 그는 이곳에서는 단 하루도 머물기 싫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나와야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는 이번에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은 전
혀 하질 못했다.
차갑고 음산한 보물창고에는 놀랍게도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산 사람이!
그 사람은 얼굴에 수염이 가득했고 자홍빛의 솜옷을 입고 놀랍게도 보물상
자 위에 앉아 수를 놓고 있었다.
강중위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확실히 한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남자가 앉아서 수
를 놓고 있었다.
"귀신이 아닐까?"
귀신이 아니고서야 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강중위는 등골
이 오싹해져서 부들부들 떨기 시잘했다. 그는 집중해서 수를 놓고 있었는데,
꼭 여인네가 자기 규방에서 수를 놓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는 검은
모란을 비단 자락에 수놓고 있었다.
강중위가 겨우 진정하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들어왔소?"
수염 가득한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당당히 말했다.
"걸어 들어왔소."
"당신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소?"
"수놓는 곳이지!"
강중위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수를 놓으러 특별히 이곳에 왔다는 거요?"
"이곳에서만 수를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온 것이오." "대체 무엇을 수놓고
자 하는 거요?"
"눈 먼 강중위를 수놓을 거요!"
강중위가 천장을 쳐다보며 박장대소했다. 그는 아주 화났을 때만 이렇게
미친 듯이 웃어대곤 한다. 미친 듯한 웃음소리 속에서 그는 어느새 뛰어들
어가 쌍장을 날렸다. 바로 돌을 깨부수는 철사장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장심이 순간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벌에 한번 쏘인 듯한 느낌이었
는데 수장의 힘이 어느새 돌연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바로 이때, 차가운 끝
이 한번 번쩍 하더니 어느새 그의 눈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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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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