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네팔 카트만두의 힌두교 최대 사원인 파슈파티나트(Pashupathinath)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다. 카트만두 시민도 코를 틀어막았다. 갠지스강 상류(바그마티강)에 있는 파슈파티나트는 화장터로 유명하다.
네팔 대지진 6일째를 맞아 발굴된 시신이 쏟아지면서 화장터에는 온종일 흰 연기와 불꽃이 솟아올랐다. '성스러운 강' 갠지스를 따라 노천에 마련된 화장터는 빈 곳이 없다. 장작더미가 내뿜는 연기로 사원 전체가 뿌옇다. 사람들은 말이 없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 유족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슬픈 눈으로 장작더미만 쳐다봤다. 사원에서 만난 샤미르(31)씨는 "죽은 사람은 곧바로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태어난다"며 "크게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힌두교도가 80%인 네팔 국민은 윤회(輪廻)설을 믿는다. 그는 "네팔 수호신인 파슈파티를 모신 이곳은 평소 데이트 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는 것이다.
유족은 망자(亡者)의 발부터 갠지스강에 담갔다. 영혼이 강물을 통과해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장작더미의 불은 장남이 붙인다. 망자의 몸에는 노잣돈으로 동전을 올리고, 주황색 꽃과 붉은 물감도 뿌린다. 불꽃과 연기는 3~4시간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가난한 네팔 사람들은 불에 탄 장작더미를 가져다 숯으로 재활용한다. 네팔에서 보육원을 운영하는 조현경씨는 "빈곤층 아이 중에는 망자의 동전을 줍기 위해 갠지스강 바닥을 헤엄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힌두교 성지인 파슈파티나트에서 화장하는 사람은 중산층 이상이다. 돈 없는 사람이 쓰는 시내 화장터는 장작이 부족해 다 타지 않은 시신을 그냥 강에 버린다고 한다. 네팔 지진 사망자는 30일 현재 5530여명으로 집계됐다. 구조 작업이 뒤늦게 본격화하면서 사망자 숫자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유엔(UN)은 "이번 지진으로 주택 53만채가 파손되는 등 80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네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다.
- 죽음… - 30일 네팔 카트만두 바그마티강변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에서 유족과 시민들이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네팔 대지진 6일째인 이날 갠지스강 상류의 화장터에 시신이 몰리면서 온종일 연기와 불꽃이 솟아올랐다. /안용현 특파원
- 생존… - 26일(현지 시각) 네팔 박타푸르시의 한 마을에서 군인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에서 구조한 생후 4개월 아기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다. 아기는 지난 25일 발생한 네팔 대지진 때 잔해에 갇혔다가 22시간 만에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카트만두투데이
카트만두 공항은 네팔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연일 장사진을 쳤다. 이날 오전 대한항공 전세기는 창원 태봉고 학생과 교직원 48명을 포함해 한국 승객 101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한 교민은 "태봉고 학생들은 1일 대한항공 정기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며 "정부가 하루 먼저 데려가려고 전세기를 띄운 걸 보면 '세월호 트라우마'가 컸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태봉고 학생들은 카트만두 인근 네팔 학교에서 교류 활동을 하다가 지진을 겪었는데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전세기는 텐트·비옷·식량·물 등 5t 분량의 정부 구호 물품을 싣고 네팔에 도착했다.현재 네팔에는 한국인 트레커(산악·자연을 답사 여행하는 사람) 100여명이 에베레스트 쿰부 지역에 발이 묶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을 벗어나려면 해발 2840m에 위치한 루크라(Lukla) 공항에서 18인승 경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대지진 이후 관광객 3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탈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비행기도 루크라 공항의 악천후 때문에 운항 횟수를 줄인 상태다. 네팔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연락이 되는 분은 모두 안전한 곳에 있다"며 "교통 사정상 모두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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