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병천목사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요즘 성경의 현세천국과 장차 이루어질 지상의 천년왕국에 대한 구절들을 내세우며, “성경에 내세천국은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무지한 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그런 무지하고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자들이 감히 목사라는 직함과 유명한 큰 교회의 사역이력 등을 내세우며 그럴듯한 화려한 약력까지 사용하고 있기에 일반 성도들은 안심하고 미혹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 보았다. (참고적으로 현세천국에 대한 구절들은 롬14:17, 마4:17, 막1:15, 마12:28, 마6:33, 막10:29-30 등이고, 지상의 천년왕국을 말씀하는 구절들은 계20:1-6, 사11:6-9, 65:17-20 등이다.)
성경은 내세천국을 말씀하고 있지만 동시에 현세천국과 장차 이루어질 지상의 천년왕국을 말씀하고 있다. 내세천국만을 이야기하며 현세천국과 장차 이루어질 지상의 천년왕국을 놓치거나 무시하는 것도 심각하고 큰 문제가 되겠지만, 성경의 현세천국과 장차 이루어질 지상의 천년왕국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눈을 뒤늦게 뜬 후, 무슨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냥 들떠서 성경의 내세천국을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더 심각하고 더 큰 문제라 하겠다.
얼마 전에 그런내용의 영상을 보고, ‘참 무지한 자의 한심한 우설이요, 이단이 또 하나 나왔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였는데, 어제 밤 늦게 타교회의 지인 권사님이 그런 내용의 밴드 포스트를 보시고 나에게 성경적인 분별을 요청해 주셨고 ... ‘그런 이단요설이 온라인 여기저기에 독버섯처럼 뻗어가고 있구나!’라는 심각한 생각을 해 보았다. ㅠㅠ
본 칼럼을 좀 더 진행하기에 앞서 문자적(文字的) 성경해석의 기초에 대하여 먼저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모든 이단들과 정통교회들의 차이점은 성경해석의 기준과 방법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문자적(文字的) 의미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문자적(文字的)이라는 말과 자구적(字句的)이라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자적이라는 말은 그 문장과 단어들이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에 관한 것으로,
전후 문맥에 따라 자구적인 의도는 자구적인 의미로,
상징적인 의도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구적이라는 말은 그 문장과 단어들의 자구 그대로를 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심청이다!”라는 문장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 사람은 극심한 효녀이다!”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문학을 모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 말을 그냥 자구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심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문장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자구적 의미로 틀린 것은 아닐지라도,
그 문장이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한다는 면, 즉 문자적인 면에서는 틀린 것이다.
성경의 단어를 직접적인 예로 들어보겠다.
성경에 “천국(天國, 하늘나라)”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두 단어가 서로 같은 의미일까 다른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구적으로는 다른 의미이지만 문자적으로는 같은 의미이다.
자구적으로 천국(하늘나라)과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마태가 말하는 “천국”(마4:17)은 마가와 마태 이외의 성경 기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막1:15,눅4:43,요3:3,행28:23 등)와 그 표현의 방식(자구적 표현)이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 즉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영역과 상태”에 관한 동일한 것이다(마 4:17, 막 1:15, 마 19:23~24 참조).
유태인들은 십계명의 제 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꼭 부르거나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 대부분 하나님을 상징하는 대유법을 사용한다. 유태인을 향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의 경우 하나님을 지칭할 때,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사용해야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하늘”로 표현하였고(마4:17 Vs 막1:15 참조), 유태인인 바리새인들에게 음부에 떨어진 부자와 낙원에 간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품”을 지칭할 때 “아브라함의 품”으로(눅16:22), 유태인인 회당장에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딸”을 지칭할 때 “아브라함의 딸”(눅13:16)로 표현하고 있음을 본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천국”이라는 표현은 정통 유태인이었던 사도바울이 역시 유태인이었던 디모데에게 딱 한 번 사용한 것(딤후4:18) 이외에, 유태인들을 향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만 사용된 독특한 표현법인데, 그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마태자신이 교차적인 사용으로 밝히고 있고(마19:23-24), 사도바울도 유태인이었던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 디모데후서에서만 “천국”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 사용하였고 그 이외의 모든 서신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음을 본다( http://cafe.daum.net/gvlove0691/K3nD/935 참조).
이상과 같이 표현의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있는 반면에 표현의 방식과 단어가 똑같지만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른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동일한 단어인 “육체(헬. sarks)”가 갈라디아서 3:3과 요한일서 4:2에 사용되었지만, 갈라디아서 3:3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의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요한일서 4:2에서는 인간의 영과 구분되는 “인간의 순수한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차이점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자체의 각각의 장르(문학형태)와 문맥에 집중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와 문자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66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각권들은 역사, 노래, 족보, 논쟁, 웅변, 우화, 환상, 편지 등등의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성경의 각권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려면 각 장르에 맞는 해석법과 전후문맥이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각 장르와 전후문맥을 무시하거나 놓치게 된다면 성경본문의 본의 즉 문자적 의미를 놓치고 자신의 편의대로 곡해하는 실수들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이단들이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의 동전에도 앞면과 뒷면이 있듯,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천국(=하나님의 나라/마 19:23~24)에도 내세천국과 현세천국의 양면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본 칼럼은 내세천국을 부인하는 무지한 자들을 반박하기 위한 글이기에 단지 내세천국에 관한 구절들만 언급해보기로 한다.
내세천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아래와 같다.
(요 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
(눅 16:19-28)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하나님의 품 =천국/유대인의 대유법적 표현)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지옥)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지옥)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지옥과) 우리(천국)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천국에서) 너희에게(지옥으로)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지옥에서) 우리에게(천국으로)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지옥)에 오지 않게 하소서
(사 6: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단 7:9-10)
[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계 4:1-4)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고후 12:1-4)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창 28:12-17)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마 8:11-12)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상과 같은 성경구절들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은 여기저기에 누누이 내세천국이 존재함을 말씀하고 있다.
어떤 무지하고 어리석은 목사라는 자가 계 21:1-22:5의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들어, “보라, 천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주의 어느 공간에 있다고 하는 내세천국은 없는 것이다.”라는 참으로 어리석고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미래의 어느 날,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다는 말 그 자체가 우주의 내세천국이 있다는 말씀이 아닐까? “공중에 떠 있다고 하는 비행기가 어느 날 지상에 착륙한다고 했으니 공중에 비행기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어리석은 억지논리를 그토록 자신있게 펼치는 광대짓이라니, 더군다나 목사라는 직함까지 가지고 있는 자가 ...
(시 37:9-11, 29, 34)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 [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 [34]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시 119: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잠 2:21-22)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이상과 같은 구절들을 들어가면서 의인(구원받은 자들)이 땅을 차지하고 거기서 영원히 산다고 했고, 땅이 항상 있다고 했으며, 악인은 땅에서 끊어진다고 했으니, 이 땅이 천국이고 이 땅 지구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땅 이 지구를 떠나 저 우주 어디에 내세천국이 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피력하는 황당한 사람을 보았다. 더군다나 그런 무지하고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목사란다. 참으로 아찔하다. 시편 37편은 ‘이 세상이 왜 죄악으로 가득 찬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신앙적인 해답을 주는 지혜서로 악인들의 형통함에 대한 회의와 불평을 금지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즉 악인의 멸망을 바라보도록 하는 권면을 담고 있는 것일 뿐, 각 구절의 자구적인 의미가 아님을, 그 구절본문 전체의 문맥과 시(詩)라는 장르의 글로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눅 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마 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상의 구절들을 들어 초대교회의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이 아니라 새 창조된 이 지구에, 이 땅에 임하는 것이었단다.
그런데 초대교회 이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변질, 퇴색, 왜곡되어 세상종교, 무속신앙, 자유주의 신학에 오염되어 이 땅의 천국이 아니라 저 우주의 내세천국을 주장하는 변질이 온 것이란다. 정말 그런 것일까? 허허허 너털웃음 밖에 나오지 않을 수준의 무지빈천한 주장이 아니던가?
누가복음 19:11-27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이사야가 예언한 천년왕국)에 관한 내용이지, 이 땅이 하나님 나라의 최종종착지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 구절을 기록한 누가는 누가복음 24:51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올려지신 하늘(천국)을 이야기했고, 사도행전 7:54~60에서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천국)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고, 그 하늘(천국)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5:43을 기록한 마가도 마가복음 16:19~20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천국으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는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은 마 13:3, 갈 4:24 등과 같이 성경의 본문 그 자체가 그 부분은 비유 혹은 상징이라 직접 언급하지 않는 한, 문자적인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이단 신천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단들의 특징은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구절들을 문자가 아닌 상징 내지는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자들은 이상과 같은 구절들도 상징 내지는 비유적인 의미로 설명하며 그들의 모순적 한계성을 슬쩍 넘어가는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보인다.
성령님께서 복음의 진리를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
문자적 성경해석의 중요성
https://cafe.daum.net/gvlove0691/K3nD/944?svc=cafeap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