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주나무
나는 꽃을 피우면서 어느새 시듦을 걱정한다
나는 방금 방생을 마치고 돌아와
슬그머니 미끼를 감춘다
밤새 깎은 솟대 끝에 새가 날아 앉고
야윈 달이 그믐으로 건너와 내 곁에 눕는다
이제부터 새벽이 내 마지막 동무란다
세상 삶에 구슬픈 것이 많고
살아갈 지상의 모든 작고 어린 것들이 가엾어
밤마다 낙엽이 진다
산 것들은 모조리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늘 스친 만물에 속죄한다
내 발부리 소맷부리에 앓던 목숨들아
나 쓰러져 작은 벌레들의 몇 끼 식사가 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그 이마 위에 잎사귀 몇 달지라도
갚아지는 빚이 아님을 인정하려 한다
여생이 무엇이어야 할지 알아
나는 정말 샛별을 동경하고 큰 땅을 감사하며
곰을 낳고 새를 날려 보내면서도
하는 수 없이 곧잘 시무룩해지곤 한다
김진수 시집
<당나귀풀과 사람주나무> 2019, 문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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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단어가 들어 간 이름을 쓰인 것은 동식물을 통틀어서 사람주나무가 유일하다. 처음 이 식물과 대면했을 때 이쑤시개만큼 조그마하고 길쭉한 꽃자루에 녹색이 자잘한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볼품없어 보이는 초라한 꽃일 때였다. 무심히 보았는데 가을철에 다시 이 식물을 만났을 때 잘 생기고 매끈한 열매가 달려 있는 걸 보고 봄에 보았던 식물과는 연관이 되지 않아서 이건 무슨 나무의 열매일까? 하고 도감을 찾아보았더니 봄에 본 볼품없이 생긴 꽃에서 만들어진 열매라는 걸 알고 이 나무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게 되었다. 이 나무는 열매뿐만이 아니라 단풍이 들면 가을철 어느 나무의 단풍에도 비길만하게 단풍이 매우 고운 나무라는 사실도 현장을 찾으면서 알게 되어 사람주라는 이름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멋져 보였다. 사람주나무는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는 나무라서 사람주나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주나무는 제주에서는 쐬돔박낭 또는 쇠동백으로 부르는 나무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골짜기에 많이 자라며 단풍이 아름다운 작은 교목이다. 이름이 특이하여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나무가 사람주나무다.
화가이면서 시인인 김진수님의 두 번째 시집 『당나귀풀과 사람주나무』을 보면 자연 속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나귀풀과 사람주나무’라는 시집의 제목에서 나오는 ‘당나귀풀’은 ‘나도옥잠화’의 다른 이름이고 ‘사람주나무’는 대극과에 속하는 갈잎 작은키나무다. 갈잎의 작은키나무를 “살아갈 지상의 모든 작고 어린 것들이 가엾어, 밤마다 낙엽이 진다”(사람주나무에서) 라고 표현을 했다. 지난해 떨어진 그 갈잎을 들추고 고개를 내민 ‘나도옥잠화’를 보고, “갈잎 헤쳐 나온 초록의 봄길 따라, 어린 당나귀들이 산을 내려옵니다”(당나귀풀에서)라고 시인은 자연의 사물들을 경외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에서 시를 쓴 것 같다.
출처 : 제주환경일보(http://www.news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