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사람들 가슴에 어떤 물을
들일까.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이 넘치고
홀로 있어도 마음을 채우는 꽉 찬 스산함이 날아갈듯 아슬아슬하다.
이런 날이 절정이 아니고
무엇일까.
어느 날, 충익사의 가을
모습을 찍어 몇몇 사람들에게 엽서처럼 띄워 보냈다.
세상 어디에나 공평하게 쏟아지는
가을빛이건만, 그날은 모두가 어디에든 취하고 싶었을까.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답신을 보내왔다.
문장엔 억양이 없다지만 그
살아있는 간절함은 알고도 남음이었으니, 그건 곧 내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찾아왔다. 청춘은
빗겨갔지만 소녀가 남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이틀간의 가을비가 다녀간 후
대기는 온통 축제를 열었고, 사람들은 햇살이 스미는 자리마다 어리는,
아, 이토록 붉고 노란 것이
이렇게 조용히 묻혀 있었냐는 듯 떠들썩하게 사랑을 주었다.
이파리처럼 흔들리는 소리들이
조용하던 사당을 사랑채로 만들었다.
사람처럼 장소도 아까울 수
있구나.
시골이라 묻히고 크게 이름나지
않아 묻히고, 산자락 아래 또 묻힌 곳에, 알려지면 무슨 부스럼이라도 앉는 것처럼 고결한 풍경채가 있다.
충익사 사당으로 특별한 빛이
쏟아지던 날. 가을은 어쩌려고 이토록 아낌 없는지…

남산 자락에서 순한 햇발이
쏟아지면 사당을 호위하는 은행나무가 등불처럼 내걸린다.
가을이면 은행은 모두 호롱불이
된다. 점잖게 책이라도
읽고픈 대낮의 독서등이다.

가을빛에 취한 소녀들은 목향
수필가 선생님들.
나는 수줍게
들려주었다. 맞은 편 남산 자락이 여름날마다 배가 부르고 가을이면 매일매일 수태를 한다고.
산이 커가는 나날을 매일
자전거 타고 들며 보았노라고, 반은 자랑삼아 반은 미학이란 옷을 입혀 들려주면 산은 그게 사실이란 듯 맞장구를 쳐준다.


햇살이 진정 아름다운 건
그림자란 목탄화를 땅위에 그리기 때문일지도.





거기 노란 은행 융단 사이에
못보던 바위 하나가 생겨 있었다.
여기 앉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하였고, 한 선생님이 씩씩하게 걸어와 손을 짚었다.
이내 쨍그랑 햇살 부서지는
소리.
그곳에 가면 참으로 웃기는
헛바위가 있다.



500살 뽕나무는 그 자체가
햇살이다.

선생님들에겐 내가 충익사
배롱나무를 쓴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 있다.
꿈틀 몸을 뒤채는 이
남정네는 벌써 또 근육질을 뽐낸다.
옷을 벗은 나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탐색은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제 근육의 매끈함을
만져보게 하는 힘?
나는 간지럼나무의 비결을
들려주며 몸 한 쪽을 긁어준다. 나무가 교태를 부리는지 가지 끝이 간지럽단다.



가을이면 걸어오는 나무가 있다고
들려준다.
여름까진 없었는데 가을이면 노랗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홀연 걸어나온다고.
'무환자
나무'
근심을 없애는 나무라는 깊은 뜻을 들려준
후, 노랗게 익은 쭈구렁 열매를 까면 속에 까만
열매가 단단한데, 그건 염주를 만든다고 들려준다.
이곳은 이미 신기한 마당이 되어버렸다.
나무마다 사연이 있고, 그 나무마다 찬란한 시를 쓰는 그런 마당.
집에 이런 나무 하나 심고 싶어서, 아니
아니 근심이 없어지라고 꼼꼼히 바라본다. 처음 만난 무환자 나무.



낙엽 밟는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사당 속의 작은 숲.

그 곳에 가면 스펙트럼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떨어져서도 제 스펙트럼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안은 듯, 빨강이 낭자하다.
일명 아는 사람만 가는
충익사의 오지.



'월담'




막사발 잔에 초록을 띄웠다.
'말차'
항상 찻잔을 다듬을 것 같은
한 선생님이 풍경에 빠진 나머지 한우산에서 첫 개봉한 말차를 선뜻 내게 주신다.
우리나라엔 없는 가장 좋은
(일제) 말차라는데, 눈이 휘둥그레져 여러번 껌뻑껌뻑 되물어도 기꺼이 웃으며 주신다.
보자기엔 말차 아니라 마음이
담겼다고, 나는 한우산 공기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잔을 비우면 이렇게
잔받침으로 쓰던 낙엽들을 담아가시네.
잔받침으로 쓰던 낙엽들은
무슨 차라도 되는 양 소담스레 웃는다.

우리의 풍경을 보고 사진
찍어주고 싶다는 분이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어준 값으로
따뜻한 말차 한 잔 건네면, 그들은 얼굴이라도 익히고 싶은 듯 여러번 돌아다보고...
산 위에도 참 따뜻했다.


나 가을로 가겠네.


이렇게 뛰는 요령은 한 수 위 어린 찍사가
가르쳐주고..
시키는대로 다리에 요령을 부려 높이
솟아오르시네.

가을 나들이는 충익사에서
시작하여 구름다리를 건너고, 복지관에서 우리의 시화전을 꼼꼼히 관람한 후, 소고기 국밥집을 거쳐 한우산으로.
한우산에서 다시 궁유
일붕사로 향하는데, 그 길은 강원도 가는 기분을 주는 길이다.
구비마다 서 있는 단풍은
놀라우리만치 붉은데 만년 초보 운전실력에도 산자락에 정신을 뺏기는 만용은 어디서 나오는지.
하염없이 스산한 바람이
차창으로 불어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산간자락에 드디어 스산한
가을이 내려와 있었다. 원래 가을은 또 이런 풍경이었다며 스산한 바람 한 점 마시니 기분도 상쾌해진다.
일붕사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예술촌이
있다며 또 앞장을 선다.
마당을 한 바퀴 돌도록
아무도 내다보는 이 없더니 덩그러니 휴일이란다.
다시 일붕사로 방향을 트는데
봉황대에 올라보고 싶단다. 산자락 마을엔 해가 빨리 진다는데도 봉황대 올라 가을빛 끝난 들판을 보고싶단다.
그 허허로운 들판마저도
감동을 하는 소녀들.
헤어지는 장소는 솥바위
바라보는 정암철교다.
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비꽃
내리던 날 정암철교를 연상하고, 봄날의 이야기 한자락을 상상한다.
맞은 편 힐링카페로 그날의
나처럼 몇 알의 여우비를 맞으며 들고도 싶었지만, 봄날 여우비는 홀연히 사라진 가을.
하루 가을 나들이 잘 했다며
모두 나를 안아주신다. 나는 어려져서 어느덧 귀여움을 톡톡히 받는다.
가을이 조금 더 머물고
싶은지 어깨 너머로 서산 해가 붉어지고 있었다.
첫댓글 휴~~ 블로그랑 사진과 글 배열이 너무 달라 식겁했습니다. ^^
사진이 좋아서 맘껏 실었습니다. 떠나려는 가을빛 붙잡아 잠시라도 행복에 젖으시기를.
네, 빛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가을 풍경 잘 감상 했어요. 역시 여섯 분 중에서 김인선 키스 님이 최고 아름답군요. 좋은 글 잘 감상 했어요. 고맙습니다.
단 두 장의 사진만으로 그걸 찍어내다니... 역쉬~ 팔은 안으로 굽는다니까. ㅎ
충익사의 가을 비경이 아릅답네요 사진으로 잘 담아주어 감사...
이동이, 김영미 님 등 두세분을 알것 같네요
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감기 몸살로 하루 결근 하는 등 정신이 없어 깜빡 했네요
의령 망개떡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이 사진속에는 온통 여성분만 있으니 가을을 다 가져 가세요
봄은 돌려 주시고 ㅎㅎ
즐감......
그날 비온 뒤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그려주었습니다.
어젯밤 문득 사진을 정리하는데 여전히 행복감이 밀려오더군요.
망개떡,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신에 어머니표 청국장으로 가실 때에도 서운치 않게~~ㅎㅎ
첫번째 사진은 어제 오후에 담장 밖에서 찍은 사진인데, 여기다 끼웠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말에서도 향기가 나지않을까?
아침 운동길에 충익사에 예사로 다녔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다니....
인선씨 덕분에 멋진 가을 풍경을 가만히 앉아서 보네.
비온 뒤 햇살은 사람들 마음까지 성숙하게 하기도 하구.
뜨락에 내리는 햇살을 보면 스산하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유가 거기 있나보다..
열매는 나뭇가지 아무 데서나 열리는 것이 아니듯이..
역시 사무국장이야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충익사는 지금까지 보아온 가을 중 제일 아름다울 듯합니다.
산책할 때마다 산을 한아름씩 안으시겠습니다. ^^
사진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집 가을도 참 아름답다 느꼈는데. 충익사 가을도 멋지네요.^^
사진 속 가을보다 지상에 널린 가을이 진정 고와서요.
선생님도 날마다 감탄하시겠네요.
가을빛 여인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