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가정의 달, 주일설교
제목: 피차 복종 위에 경외
본문: 엡 5:18-21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5월에 다 있다.
가정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의 기본이고 기초이고 기반이다.
가정이 흔들리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흔들리게 된다.
가정이 깨지면, 돈도, 일도, 성공도 다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런데, 행복한 가정은 국가도 교육도 결코 만들어주지 못한다.
가정이, 돈보다 일보다 성공보다 우선이고, 인생의 기반이요, 토대라는, 인식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선진국일수록 이혼율이 더 높고, 자녀들이 버림받고 문제아들이 넘치고 있다.
미국은 개신교인들의 이혼율이 불신자들보다 3배가 되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기독교와 교회가 아무 역할도 못하고 오히려 더 높은 비율로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참상이다.
1. 가정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이 말씀이 가정의 행복과 질서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근본 원칙이고 법도이다.
이 말씀은 인간관계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파탄은 서로 복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중심에, 그 관계 위에, 경외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옛날 대가족 제도하에서는 집안에 어른이 있어서 관계들이 깨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만 앉는 큰 의자를 두고 집안에 어른의 존재를 내면화했다.
가나안 땅의 3백년 암흑시대를 결론 지워주는 말씀은 사사기 끝 절 말씀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가정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다. 틀린 대로가 아니다.
다스릴 왕이 오기 전에는, 둘 다 복종하는 왕이 오기 전에는,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것끼리의 싸움과 갈등이 가나안 땅에서도 말릴 수가 없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생각은 바로 육신의 생각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내가 왕이 되어, 주인이 되어, 내 생각에 옳은 대로 하는 것이 육신의 생각이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사망을 낳고 멸망을 낳고 만다. 나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패망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주요, 나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내가 매사에 경외하고 섬겨야 할 왕이시다.
경외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나의 모든 것으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순종하여 바쳤을 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셨다.
경외한다는 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의 다른 표현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마22:37)
“피차 복종하라”는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없으면 피차 복종할 수 없다.
피차 복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 중심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있을 때 피차 복종할 수 있다.
크고 첫째 되는 계명에 순종해야, 크고 둘째 되는 계명도 지킬 수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는,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없다.
순서를 바꿔서는 될 수가 없다.
이웃 사랑, 만인 사랑을, 아무리 외쳐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으면, 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다.
하나님 사랑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자기 사랑, 자기 중심적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스라엘처럼 열심은 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게 된다.
2. 가정은 피차 복종함이 있어야 한다.
피차 복종하라
‘서로 사랑하라’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
천국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천국을 갈려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 말씀하셨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이 가까이 온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경외할 수 있고, 그 믿음으로 피차 복종할 수가 있다.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 자라가야 한다.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니 우리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새 생명이 심어졌으니, 이제 피차 복종하는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사랑과 화평과 희락,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성화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축복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다.
가정의 기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부모와의 관계보다, 자녀와의 관계보다, 항상 더 우선이고 중요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본 질서부터가 무시될 때, 가정의 행복은 금가기 시작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장에서 부부로부터 가정을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아담을 만드시고 곧바로 부부로 가정을 출발하게 하셨다.
“남자와 여자(가정)를 창조하시고”(창1:27)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실 때 흙으로가 아니고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취하여 만드셨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의 관계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부부의 관계이고 질서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처음부터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 하셨다.
결혼하면, 남자는 아내와 합해야 한다. 더 이상 여전히 부모형제와 합하지 않아야 한다.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다. 결혼했으면 이제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내와 합할려면, 경제적으로 독립(자립)하고, 의존하던 심리적 탯줄을 끊어야 한다.
마마 보이, 딸 바보는 불행의 씨앗들이다. 캥거루족도 질서 위반이다.
부부간에도 피차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순서가 중요하다. 아내의 복종이 먼저이다.
순서를 무시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다가 배가 산으로 간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2-24).
아내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다. 아내들은 마음에 꼭 새기시기 바란다.
머리에 복종하는 가운데 질서는 세워지고 내면화 되면서 그리스도 경외함도 배우게 된다.
작은 내면화 없이 더 큰 내면화 없다. 작은 일에 충성이 더 큰 일에 충성을 낳는다.
부모들 끼리의 주도권 다툼의 싸움 속에서 자란 자녀들은,
내면에 질서가 없고, 정서가 불안정하여, 이후 가정 생활도, 사회생활도 적응을 못하게 된다.
문제아는 문제의 가정이, 문제의 부부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께 하듯”,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없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할 수 없다.
그 마음에 “주”가 안 계신 분들은 서로 주가 되느라고 평생 동안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다.
또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이지,
남편들에게 아내 잡는데 써먹으라고 주시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다음 순서가, 남편들의 복종이다. 가부장적 권리가 아니다. 아내를 다스리는 권한이 아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5,28)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의 의무가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만 하면 되지만,
남편은 아내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심 같이 해야 한다. 목숨을 바쳐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남편은 목숨을 바쳤으니, 아내의 복종을 가지고 시비할 생명이 없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사랑의 비밀)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비밀을 모르고 자기만 사랑해 주고 자기 말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어거지를 부릴수록 자기는 점점 사랑을 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순서에 주목하라.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5:33)
아내 사랑도 어렵고, 남편 존경도 어렵지만, 주께 하듯 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고, 주님이 하듯 하면, 남편은 아내를 자기 사랑하듯 할 수 있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노라면
어느새 가정은 천국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평화와 번영이 깃들 것이다.
부모와 자녀들이 제일 좋아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부모 자녀간에도 피차 복종해야 한다.
자녀들의 복종이 먼저이고 순서이다, 순서가 바뀌는 것은 질서위반이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보상과 축복) 반대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오히려 자식에게 순종하고, 자식을 공경하면서, 하나님 법도를 거역하고 있다.(캥거루족)
부모에게 순종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은 내내 부모를 종처럼 부리고 천시한다.
다음 순서가, 부모의 복종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자기 성질대로, 감정대로, 자기 의로, 소견에 옳은 대로, 자녀를 양육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해,
부모는 말씀을 즐거워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3. 가정은 성령의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오늘 본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앞에 대전제로 있는 말씀이다.
우리 육신으로 충만해 가지고는 그리스도를 경외함도 피차 복종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세례는 위로부터 임하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내면에 충만하게 채워서 성화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할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 없이 성령 없고, 성령 없이 말씀 없다. 참 기독교는 성령과 말씀의 종교이다.
술에 취하면 방탕에 이르지만, 성령의 충만으로 취하면 거룩함에 이른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이 충만해지고, 피차 복종할 수 있게 된다.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고, 축복과 번영으로 가정을 창대하게 이루게 된다.
참된 소프트 파워가 창대한 하드 파워를 구축하게 만든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채우고 계속 유지하게 하자.
그것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말씀의 뜻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행5:32)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성령의 충만함이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음으로, 유지함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함으로써, 천국 가정, 창대한 가정을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