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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결 (純 潔)
2004.08.17 김준호 선생
처음 뵙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힘이 닿는데 까지 처음에 모였던 때를 잠깐 이야기 합니다. 해방이 되었으니까 벌써 한 근 50년, 한 60년 전 이야기지요. 그때 제가 이 현필 선생님을 해방 후에 뵈었는데 제가 인제 호흡이 약해서, 모두 생략하고 대충 이야기 하겠습니다. 23세에 제가 결핵이 있었어요. 폐결핵, 이 선생님을 그 해에 만난 것 같아. 그런데 이 모든 99명은 건강한 다 사람입니다. 저만 결핵 환자예요. 그런데 33세가 되도록 너는 환자다. 그 구별을 안 하신 거예요. 일체 건강한 사람과 차별을 안 해요. 그래 병이 없는 셈이지요. 정신적으로 병이 있다고 봐야 환자인데 건강한 사람들과 일체 전혀 너는 환자다. 그 의심을 피치 않는 것이지요. 그럼 환자 된 이 사람으로서는 너무 항상 죄인이지요. 이것이 전염 환자니까 항상 그 은혜를 받고 있으니까 건강한 사람들 그 사이에 살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요. 그건 어떠한 의미에서 참 무조건 사랑인데 그럼 33세가 될 때에는 그건 계(誡)가 있어요. 계명(誡命),
그때 세 가지 계명이 있는데 불 복약, 이 특색이 있어요. 정신적으로 수양하는 공동체인데 이분들이 지키는 계가 셋인데 불 복약, 약을 안 먹어요. 이건 철저하게 안 먹어요. 사람이 죽어가도 다 기도만하지 약을 안 먹는 거지요. 불육식이야. 참 멸치도 안 먹고 이도 안 죽인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너무 철저히 살생을 안 하거든. 그래 채소만 먹지요. 그 불 결혼이야. 일체 혼자 사는 것 이지요. 이제 그렇게 세 가지 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엄해서 우리가 남녀가 있으면 한 60이 되도록 쳐다보지 않았어요. 남녀 사이에 쳐다보지 않은 거예요. 남녀 간에 이야기를 안 했어요. 아주 엄하게 했지요. 그런데 33세 되던 해에 이 선생님이 급성 결핵이지요. 후두 급성 결핵이 걸렸는데 갑자기 목이 부어가지고 물이 안 넘어가요. 호흡을 못해요. 끝까지 지키고 죽어라 그거에요.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걸 종교 하는 것이지요. 그 계명 셋을 지킨 사람들 밖에서 아주 욕해 버리는 거예요. 그 한국 유지들이 그래 인제 물만 먹으면 사시는데 부었으니까 약을 먹으면 살 텐데. 약도 안 먹고 물이 안 넘어 가지고 목이 퉁퉁 부었지요. 그럼 약 한달 동안 곡기를 못 먹고 물은 얼음을 녹여가지고 어떻게 조금 넘어가는 거예요. 얼음을 입에다 머금고 있어요. 막 목에 불이 나니까, 그래 임종이 가까우시니까 그때 정 인세 원장님 장로님, 저는 그때 결핵 사업에 끌려가가지고 아주 식구가 많고 아주 바쁜 때입니다. 저를 불러가지고 서울로 가자고 두 어른이 이 환자를 빳빳이 죽어가는 시체니까 이렇게 안고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갔지요.
지금 한 장로님 계세요. 동광원에 그 어른이 그때 걸인 생활이니까 그 빈민굴로 들어가신 겁니다. 거기 가서 임종하시기 위해서 그러면 저는 십년동안 약을 안 먹었기 때문에 결핵이 만연 했어요. 그때 고름이 막 기어 나와요. 이런 골결핵(骨結核)에 폐에서는 담이 나오고 그런데 밤중이 되니까 다 돌아가시고 제가 선생님을 안고 이렇게 간호하는 사람인거예요. 그때 여기를 본 거예요. 손이 뚱뚱 부어가지고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데 이 손으로 선생님이 임종하도록 도와드리는 거예요. 그때서 봤답니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안 되겠다. 이건 구원과 관계없는 예수와도 관계없는 어떠한 뜻에서는 수도의 계율인데 몸을 이렇게 닦자고 하는 계율을 지켜왔는데 이대로 내가 죽으면 안 되겠다. 왜 이 사람하나가 아니다. 이 사람이 이대로 죽어도 좋지만 이사람 밖에 많은 따라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고히 죽을 수 없지 않냐 이거예요. 뜻이 있어 그렇게 살 사람은 살지언정 이 뒤따라오는 사람을 이대로 두고 죽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 말을 못하시니까 손으로 자꾸 광주로 가자 그래요. 정 인세 원장님 이니까 원장님 오시니까 나를 광주로 보내달라고 죽으러 와계시는데 곧 죽어 가는데 그런 장면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말은 못해도 저를 제중병원에 결핵 병동에 입원시킴으로써 모든 걸 헐어버리려고 그래요. 말은 못하니까 그렇게 해서 결국은 제중병원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이 최 흥종 목사님이 주선해 가지고 그때 최 흥종 목사님이라면 권위 있는 목사님인데 우리 두 사람을 고 병원 원장님 사모님이, 어머님이지요? 부인인데 사사로 차를 몰고 오셔서 소위 말하면 병원으로 들어가요. 그런데 의사가 볼 때에는 저는 만성이야. 벌써 10년이 지났고 급하지 않아 안 죽어. 그러나 이 사람은 급성이니까 입원시켜야해. 그래 이 선생님은 입원시키는 거예요. 왜 병원에 병실이 없어. 수 수백 명이 밀려있어. 그래 간호원 실을 치워가지고 간호원 실로 입원을 시키는데 최 목사님이 그러세요. 이 두 사람은 한 사람이요. 이 선생님을 살리려면 이 사람까지 입원 시키시오. 그만큼 최 흥종 목사님은 권위 있는 목사님이에요. 그때 선교회에 대해서 간호원 실을 치우고 이 두 사람을 입원 시켜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같았어요. 그 많은 환자가 밀려있는데 들어 갈 데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입원을 했는데 선생님이 한 달 후에 집으로 가버린 거예요. 저만 육 개월 있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것이 그분이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살아있는 거예요. 이렇게 육 개월 제가 약을 먹어버리니까 다 나아버립디다. 십년동안 약을 안 먹고 버티고 나온 사람인데 육 개월 먹으니까 다 균이 죽고 고름이 그쳐요. 어떠한 뜻으로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들이 대성통곡을 해. 우리는 계를 지키자고 따라다녔는데 계를 무너뜨리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따라 다니느냐? 대성통곡해 한나 어머니 울고, 우리 앞길이 어떻게 되느냐? 한나 어머니가 기가 막혀서 그러십디다. 그러면 고기 먹고 약 먹고 그럼 결혼도 할 거야? 그게 의심이야. 결혼만은 안해야겠는데 그건 이 선생님이 암시를 해요. 이 깨끗하게 산다는 계율은 내가 헐지 못한다. 그건 주님께서 하신 것이다. 약을 안 먹든지 고기를 안 먹든지 그건 사람이 정한 것이니까 그렇게 해서 순결의 계율은 지킨다 하니까 아주 기뻐해요. 어머니가 한나 어머니가 아 살아났다, 살아났다. 우리들 그런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인제 동광원은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냐? 하루에 세 번 예배를 봅니다. 새벽 정오 저녁 선생님이 꼭 그때는 꼭 예수 같은 거예요. 아무 흠이 없지 않아요? 만인이 보기에 흠이 없고 식사를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밥해주는 식모는 알겠지? 밤중에 한 끼 잡수시니까 그건 대중은 식사를 안 하는 사람이에요.
대중에 보기에 철저히 안 잡수시거든. 그런 비상한 생활을 하셨는데 생활은 무등산에서 나무 해다 때고 농사해서 쑥 끓여서 먹고 하루 세 번 예배보고 너무 단순하지요? 농사만 하시고 그래 제중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 무슨 혁명이 일어났는가 하면 생활 혁명이 일어납니다. 농사만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인데 학교를 졸업 안했어요. 십대 이십대 가 그때 백 명이 가깝지요. 갈 수 있는 사람은 전부 병원에 무료봉사를 시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간호원 보조 역할을 시키는 거지요. 왜 그 병원이 빚이 많으니까 선교사를 돕기 위해서 무조건 우리 학문은 없지만 몸으로 돕겠다. 손발로 그렇게 해서 한 20대 처녀들이 죽 끌려 들어간 거예요. 병원 일을 본거예요. 서울 세브란스까지 올라가서 봉사하는 거예요. 그럼 농사하던 사람들이 간호원 보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누가 보던지 불가능 한 겁니다. 게 흉이지요. 흉, 무식하니까 그런데 문제가 일어나요. 그때는 절개를 지키는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 검정 고무신 신고 치마가 땅에 끌렸거든요. 병원에 다니는데 간호원 들이 전부 그때는 미니스커트 아닙니까? 미안하니까 어머니들하고 의논하지 않고 조금씩 치마를 자른 거예요. 엄마들이 대성통곡 했어요. 이 현필 씨는 타락했다 그거에요. 어떻게 젊은 처녀들을 치마를 이렇게 자르도록 그냥 두냐는 거예요.
그때도 어머니들 울었어요. 우리 망한다. 없어진다. 그런데 본인들은 어떻게 해요? 긴치마 입고 어떻게 간호원 노릇 해요. 간호일 보기 위해서는 치마가 죽죽 올라가거든요. 그런 진통이 일어나는데 막 몸부림 이지요. 그러면 혜택 보는 사람은 이 사람 한사람입니다. 선생님 끌렀으므로 약을 먹고 저는 살아났어요. 그러면 저는 농사하면서 얻어먹던 거지인데 결핵환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요. 왜 결핵 환자를 동광원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 없잖아요? 격리를 해야 하니까 건강한 사람들 때문에 외곽 단체를 만든 거예요. 동광원 밖의 단체 그게 소위 말하면 일명 송등원 이라고, 그렇게 해서 밖에 제가 살게 되지요. 밖에 그러면 오늘 감사한 것은 그때까지는 중 예수고, 이렇게 이제 결혼 안 한 것이 그때는 국민적으로 산아제한이 있기 전이에요. 그러니까 교계에서 이건 중 예수지만 완전히 천민이야. 완전히 접촉을 못하게 해요 교계에서, 그러니까 물어볼 데가 없잖아요? 일반 교회에서는 완전히 이단시 한 거예요? 접근을 못하게 해요. 타락할까봐, 그러니까 그랬다가 선교회를 들어가 가지고 선교사 일을 보게 되니까. 문이 열리지 않아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선교사 쪽에서만 용납하지, 일반 교회에서는 저한테 중이라고 얼마나 호되게 꾸지람 했다고요. 왜 중을 데리고 일을 보냐? 장로들이 그랬어요. 장로님들이 고발했어요.
원장님한테 준호는 중이요. 그때 머리 깎았어요. 머리 깎고 고무신 신고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쓰요? 그거예요. 그런데 그 원장님은 전적으로 이 사람한테 맡기는 거예요. 환자들을 그런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왜 했냐? 하느냐 하면 엄 목사님이 인제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이 되어가지고 이 선생님의 전기를 쓴 거예요. 이 현필 선생 맨발의 성자는 아니지요. 나는 성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분이 성자로 만든 거예요. 지금 글로 그 책이 나왔어도 절대 교계에서 못 보게 했어요. 이건 금서지요. 금한 서적이거든요. 그랬고, 그러면 엄 목사님이 순교의 길 까지 내셨거든요. 오늘 저녁은 순교의 길에 있는 문헌이 있어요. 이것이 돌아 가시기전 3년 안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래 이 말씀을 엄 목사님께 해야 쓰겠다. 오늘 저녁 그 이야기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한 번도 말 안 했냐? 비밀로 지켜왔어요. 그런데 문헌이 있어요. 엄 목사가 쓰신 순교의 길이라는 책 가운데 문헌이 나타나요. 오늘 보신 성모관계입니다. 왜 목사님께 제가 그 말을 못 하냐 신교의 흐름이니까, 구교 흐름같이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 성모에 관해서는 오늘도 말 안할 거예요. 왜 숨이 가쁘니까 내년은 없을 것 같아요. 이 몸이 옛날에 폐가 나빠 가지고 산소 부족이야. 전신이 회수(순환)가 안 되어요. 숨이 가쁘니까 내년에 숨이 있을까? 그럼 금년에 엄 목사님 살아계시니까 전기가 그거 안 나오거든요. 우리가 이야기 해 드린 일이 없어. 비밀이니까, 이 선생님이 비밀이 3년 동안 있어요. 그런데 순교의 길이 글이 나와 있다는 거예요. 그래 연결을 시키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그러면 오늘 저녁에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오 장로님 읽어 주십시오. 큰 소리로 오 세익 장로님 이 현필 선생의 말씀 이라는 말이 나와요.
‘주님, 저의 성모님, 저를 도우소서.’ 순결의 길, 거기까지 보셨습니다. 이 문헌이 있는 것을 참 이 나는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우리가 아는 비밀이 있는데 말을 못한 거예요. 목사님 이니까 그런데 이 선생님은 죽기 전 일이년 동안에는 전혀 장벽이 없었어요. 모든 파벌에 대해서는 완전히 초월한 분이지요. 또 그분이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세상을 떠난 겁니다. 그러면 동광원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신교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주교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자기는 그렇게 죽었지요.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최후의 선언입니다. 그러면 만일 엄 목사님이 글을 책을 만들어 주신 ‘순결의 길 초월의 길’이라는 책에 문헌이 있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이야기 하려는 겁니다. 이 말이 없다면 어떻게 목사님에게 보고를 해요? 그동안 내가 수십 년 다녔어요. 한 번도 들어 본일 없다. 그럼 오늘 저녁에 무슨 헛소리 하냐? 그럴 수 있지요. 목사님이 만든 출판하신 책에 하늘에 별같이 박혀있어요. 야, 신기하다. 그러나 목사님께 어떤 자매들이 쪽지를 갖다 드린 거예요. 쪽지, 책도 아니야.
그러면 얼마나 목사님을 의지하고 믿었기에 우리 자매들이 갖고 있던 보배를 전부 갖다 바친 거예요. 그 종이쪽지들을 그걸 모아가지고 이런 책을 만들어 놓으셨어. 그럼 엄 목사가 아니면 이 쪽지들은 다 썩어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가 신비한지요? 이 문헌이 있기 때문에 이 선생님이 천주교 안에서도 성인 말을 들을 수 있어. 안 신부님이 아일랜드 신부님인데 귀로 들었어요. 오늘 아일랜드 신부님 말씀이 내가 이 선생을 만나보니 그분이 성인이오. 이게 첫째 성언이야. 두 번째 엄 목사님이 한 수십 년 후에 그분이 성인 아니신가? 그거에요. 원 성인이라는 발언은 안 신부님이 하신 겁니다. 그럼 직접 듣고 오신분이 죽고 안계세요. 그래 제가 이거 신빙성이 없어요. 그 말을 직접 들었다는 자매는 죽고 안계시거든요. 그러나 이 문헌이 이만큼 있으니까 ‘아하, 안 신부님 만날 때에는 일체 파벌이 없었구나.’ 그러면 이것이 희망입니다. 세계는 갈라지는데 화해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교파가 수백 있다 하더라도 이 선생님의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럼 이제 그 이상을 꿈꾸는 분이 불란서 로제스 수사거든요. 그럼 그분은 종교를 초월하지요? ‘화해 일치’가 그 사람들의 목적 이지요? 그러면 이 선생님의 영성은 모든 종교는 화해할 수 있는 영성의 씨를 가지고 있다. 그 점이지요.
죽으면서 선언한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요. 선언했지요. 초월 한다는 뜻이니까 돌아가시기 전 일 이년 동안에 안 신부님 만나가지고 너무 둘이 의논이 맞아 들어가. 의논이 소위 말하는 종파를 초월한 것이지요. 그럼 안 신부님이 누군지 몰라요. 그런데 70이 넘으신 어머니가 저를 찾아왔어요. 작년에 어떻게 안 신부님의 흠모하고 눈물이 나는지. 자기 청춘과부가 되었을 때 북동 성당을 다니는데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이고 신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떻게 사랑이 많은 신부였다고 그렇게 간접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이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안 신부님과 교제를 했느냐? 그건 저는 몰라요. 그런데 이것은 저 혼자 들었으니까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제일 막둥이 제자가 그분 돌아가셨는데 김 천자라는 자매인데 제일 마지막 제자예요. 그런데 그 분이 죽기 전에 제가 한 말을 들었어요. 저는 신교 신자로 살았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2년 전인가 몇 년 전이겠지요? 자매, 그 자매를 불러 ‘자매, 영세를 받으십시오.’ 절대 그 분은 순종했거든요. ‘예,’ 하고 영세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럼 안 신부님한테 지도를 받은 것 같아요. 그건 추측입니다. 그러면 6개월 동안 그 교리를 받을 때 일주일마다 와서 보고를 하는 겁니다. 이 선생님한테, 이렇게 배웠습니다. 이렇게 배웠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교리를 다 배우고 성모가 등장하시겠지요? 이것도 추리입니다.
평소에 이 선생님이 품었던 성모님이 어떻게 같은지 그 교리를 전해 들어보니 자기가 심중에 품었던 성모님이야. 그래 안 신부님을 만나신 것 같아요. 나 홀로 품었던 비밀이 있는데 어쩌면 교리를 가르쳐 주는 교리를 들어보니 같으냐? 그거에요. 영성이 그럼 이 선생님은 소감 한번 들었습니다. 이 신약 성서에는 예수님 나시고 성모님이 동생을 많이 낳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선생님 생각에 그 깨달음에 예수님은 삼위일체인데 성부 성자 성신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아는 엄마가 무엇 때문에 요셉과 다시 자식을 낳겠느냐? 이것은 안 된다. 평소에 갖고 있었던 자기 깨달음이 있어요. 그런데 안 신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똑 같거든. 그래 두 분이 서로 탄복한 것 같아. 두 분이 만나가지고 아 이분이 성인 아닌가? 교리를 안 배웠는데 어떻게 그걸 믿느냐? 만일 예수를 낳은 엄마가 둘째 애기를 낳았다면 그것은 성모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가슴에서 하나님을 낳았는데 예수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낳으신 엄마가 무엇이 아쉬워서 양부, 양부지요? 예수님의 양부시지요? 요셉이, 그 애기를 낳을 수 없다. 그래서 평생 동정이심을 혼자 깨닫고 믿으신 겁니다.
그런데 교리가 그렇다고 그러니까 그럼 이 선생님이 이겁니다. 그때에 교계에서는 일체 이단으로 보고 접근을 안 하지요. 없지요? 선생님이 임종이 가까운데 이 젊은 사람들을 이대로 두고 가는데 어디다가 위탁 하냐? 그거에요. 예수 교단에서 누가 환영을 해줘야지. 그런데 그때 발견하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일체 성모님께 맡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식구가 아는 사람은 알아요. 어느 날은 묵주 신공을 한 백 개를 사오시더니 다 나눠주는 거예요. 아무도 속을 모르는 겁니다. 성모님을 배워라. 그런 사건이 일어나요. 그럼 이 선생님이 한 번도 정 원장님과 타협할 시간이 없어요. 정 인세 원장님이 서울서 목회를 하시거든요. 돌아가실 때까지 또 한나 어머니는 광주로 안 오시거든요. 머리 깎아 버리고 안 오시거든요. 못 만난 것입니다. 또 오 장로님이 타지에 계셨어요. 혼자만 깨닫고 한 이년동안 성모님을 이렇게 사랑하고 제자를 영세를 시키고 안 신부하고 영성교육 일체를 보신 것이지. 자기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같이 의논한 일이 없어요. 그런데 왜 이 글이 남아 있냐? 이것이 일기입니다. 일기, 그럼 일기니까 엄 목사님이 일기로 다 책에 썼어요. 그럼 제가 죽어버리면 아무도 이 사건을 설명할 사람이 없겠더라고요. 그래 내일 죽을 성부르니 오늘 이야기 하는 겁니다. 아 이 말은 내가 말 해주고 죽어야지.
책에 나와 있는 일이 그 사람이 한 번도 천주교 이야기를 안했는데 무슨 성모님이 나오느냐? 그럼 이 장면입니다. ‘주님, 저의 성모님 저를 도우소서.’ 문헌은 간단하지요? 그럼 제가 결핵 사업을 하기 때문에 꼭 결핵환자를 돌보고 밤중에 한 열시가 넘어서 열두시 안에는 보고를 합니다. 매일 그럼 아무도 없는 깊은 밤중에, 여러분들이 이건 이해하십시오. 본인이 숨이 가프요. 이 후두 결핵은 그럼 몸이 다 죽어가는 몸인데 무릎을 꿇고 이 성모상을 놓고 묵주신공을 올리고 계세요. 그거 나는 비밀 아닙니까? 오늘 폭로하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묵주 했다 하면 이단이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이단인데 그러니까 선생님 해로울까봐 절대 해설을 못했어요. 엄 목사님 오셨지만 말 못한 거예요. 엄 목사까지 낙심하면 안 되지 않아요? 우리 선생님 비밀인데, 아무도 본 일이 없고 나 혼자 봤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남녀 분별이 강해가지고 해가 지면 여자들은 못 들어가요. 그 방에 나는 남자니까 열시 넘어도 들어가거든. 그럼 묵주신공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럼 이 비밀을 말해 드려야지, 여기 이 글이 살아나지, 일기가 살아나지,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는데 무슨 놈의 천주교 이야기가 나오느냐? 천주교를 초월한 영성, 신교를 초월한 영성이다.
그걸 제가 말씀해 드려야 쓰겠다. 그걸 이야기 하는데요. 그러면 오 장로님이 서투네요. 글이, 그 다음은 제가 증언 하려는 것이 있어요. 그 다음 장. ‘성 프란치스코와 마리아.’ ‘성모 마리아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 이 대목을 이 대목이 있기 때문에 제가 오늘밤 용기 얻었어요. 평소에 전기에 그랬어요. 이 현필씨는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다. 맨발의 성자라는 책에 딱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성 프란치스코는 어떻게 생각 했을까? 마리아에 대해서 문헌이 조금 있어요. 인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읽는 분이 한번 읽어 주세요. (소리가 안 들림)
성 프란치스코와 마리아 성모 마리아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 성 프란치스코의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그의 영적 여정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회개 후 세 번째 수도한 성당으로 성모께 직무를 다하셨다. 그럼 젤라노는 지금 해설이 프란치스코의 제자이지요. 그럼 젤라노는 일종의 신부시고 이분도 총장이 되셨는가?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이 말씀이 어쩌면 제 심정하고 같은 겁니다. 프란치스코는 돌아가셨고 제자로서 마리아를 형제회의 보호자로 삼으신 후 그 기쁨을 보호자로 삼으신 일은 우리에게 가장 기쁘신 일이고 그가 이 세상에 아들들을 고아처럼 버릴 때 이 말이 눈물이 펑 쏟아집디다. 그가 이 세상에 아들들을 고아처럼 버릴 때에 그들을 그녀 날개 밑에 들려 보낼 때 그녀로 하여금 그들을 기르시고 끝까지 보호하시게 하였다. 이 대목이 그럼 이 문헌은 금년도에 한국에 처음 750년 만에 제 삼회 회원들이 만든 교제입니다. 작년에 이런 글이 없었어요. 그럼 750년 만에 이 글이 나왔으므로 아, 이거다. 선생님의 그 심정은 그가 이 세상의 아들들을 고아처럼 버릴 때 그들을 그녀의 날개 밑에 보내어 그녀로 하여금 그들을 기르시고 끝까지 보호하시게 하였다.
이 열망이 너무나 컸어요. 본인 혼자 성모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고 이 사람들을 어느 목사님도 맡을 사람이 없고, 그때 형편은요. 어느 신부도 맡을 사람이 없어요. 그래 영성을 지키려면 성모님 아니면 안 되겠다. 그런 간절한 소원을 아신 분이 이 선생님의 심정이겠다. 그건 예감 했어요. 그런데 이쯤 젤라노의 해설이 제 가슴에 있던 말을 대변한지요. 그래 어떻게 감사했습니다. 그들을 기르시고 끝까지 보호 하시게 하였다. 가난한 자의 보호자요.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때가 올 때까지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 직무를 다하소서. 그럼 이건 교제가 있기 때문에 출판은 안 합디다요. 그 사무실만 있지, 서울에 그러면 여기서 제가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 선생님의 글 가운데 이 문헌이 있다는 것이 아, 참 방향을 가리키는 거지요. 방향, 그 순결을 사랑하는 것은 성모님 성모성의 계승이라는 것입니다. 이 글이 나오거든요. 순결이라는 책에 그러면 아무리 뜻을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글 가운데 한번 나오는 글이거든요. 뭔 뜻일까? 그게 이틀 전에 생각이 납디다. 그거 어렵지 않다. 어머니의 사랑이다. 성(聖)자를 빼봐라. 어머니의 사랑을 계승 하라는 거예요.
일생을 홀로 사는 사람의 근본의 덕이 있어야지, 어머니의 사랑이 없이 혼자 살아 뭐하냐는 거예요. 도리어 막가지요. 기계에요. 순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성품을 계승하라. 그 성모님 이지요. 성모성(聖母性)인데 그래서 성모성의 반대는 성부성(聖父性) 이지요? 거룩한 아버지의 마음, 그런데 이 선생님이 이 말까지 저한테 한 것입니다. ‘준호, 나한테 속지 마라. 나는 여성 교육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이야.’ 왜? 아버지의 마음만 주었지, 엄마의 마음은 줄 수 없었다는 거예요. 나는 이 자녀들을 잘못 가르쳤어. 내 이 과오를 네가 범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사람의 과오는 이것으로 끝나야 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성모성을 계승한 지도자가 왔을 때는 이것을 맡겨라. 네가 지도하면 안 된다. 그게 제게 대한 유언입니다. 그럼 이걸 보고, ‘아, 그렇다. 그 영혼이 뚫어진 영혼이다.’ 로제의 원장이 불란서에서 성공한 것은 여자 제자들을 하나도 안 둡니다. 그래 성공하신 분이예요.
석가가 여자제자를 절대 남자한테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게 불교가 유지되는 겁니다. 여자는 여자가 지도하도록, 수녀원을 남자 신부에게 안 맡깁니다. 여자 지도자로 하여금 수녀원을 지도하도록 그게 사람 실력인 것 같아요. 예수님이 아닌 이상 피조물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자기는 잘못 살아보고 죽을 때 깨달은 거예요. 이거 내가 잘한 것 아니다. 하나님께 득죄를 하였다. 그러면 뼈에 사무친 자기의 잘못을 어떻게 표현 하냐? 저번 작년 모임 후에 언니들한테 들었는데요. 저는 직접 못 들었는데 ‘여러분, 저를 헌신짝으로 불러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까? 한 50대 40대 언니들이 몇 번 들었대요. 그럼 울면서 말한 거예요. 나를 헌신짝이다. 나는 헌신짝이야. 나를 헌신짝으로 불러다오. 그러면 말이 아니에요. 통곡하는 소리지요. 잘못 살았다는 거예요. 또 인제 엄 목사님이 쓰신 ‘순결의 길’속에 그 일기가 들어갔지만 거기 못 드린 다음에 마지막 일기가 또 있어요. 책에 안 들어갔지만 거기에 보면 그것뿐이에요.
무슨 말이 나오느냐? 하면 ‘주님, 저는 죄의 못자리올시다.’ 그 날은 그것뿐이야. 그 일기는 하루 그 전후에 전부 자기 죄만 고백을 하는데 이 선생님이 깨달음은 자기는 죄의 못자리다. 모든 사람이 죄가 있다면 자기는 본인이 잘 못살았다. 그런 생각을 하신 건데 이 말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한 말씀에 아까 우리가 읽었지요? 순결을 사랑하는 것. 그럼 동광원이 무슨 동산이냐 하면 하나도 둘도 셋도 순결을 사랑하는 동산입니다. 이 계를 일으키고 약도 먹으라하고 가사 고기도 먹으라하고 그걸 끌러준 다음에도 처음에도 지금도 순결만은 꼭 지키도록 가르쳤어요. 순결, 동광원은 특별한 영성이 있다면 순결성(純潔性)입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자기가 잘못 했다는 것은 어머니의 덕(德)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성모님의 덕을 가르치지 않았어. 순결을 지키도록 가르쳤지, 사랑이 없다는 거예요. 사랑이 없어. 그걸 뼈저리게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지요. 남자가 여자에게 가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이상 어디까지 여자는 여자가 가르치게 하라. 그 유언입니다.
그러면 한국에도 부흥회가 많이 있고 부흥 지도자가 많이 있지만 여자를 지도하고 다 끊어져요. 여자를 지도했기 때문에 그 부흥회가 망해버려. 끝으로 가다가 목사님 누군지 몰라. 장로님들 몰라도 끝에는 여자 때문에 망해요. 그럼 그것을 이 선생님이 깨달았다는 것은 은총이지요. 은총, 그래 이 자기는 큰 실수를 했지만 다른 사람은 절대 나를 본받지 말라고 이렇게 하시데요. 야, 우리 선생님은 성공 하셨어. 그건 착각이여. 나는 실패작이야. 나는 여성 교육에서 실패한 사람이야. 나는 잘못했어. 나를 본받지 마. 내가 잘못했는데 너는 잘하겠어? 꾸지람 한 거예요. 네가 하면 잘해? 안 돼. 여자의 지도는 여자에게 맡기라. 그게 수도공동체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겠지요? 일반 가정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게 생각 하면서 그럼 인제 성부성(聖父性) 있고 성모성(聖母性)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성모님 이지요? 그러면 그 인제 이 선생의 심정을 같이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건 그 예수님의 심정에 있던 속 이야기에요. 사람 고백은 이 고백밖에 할 것 없지 않냐? 이거에요. 그럼 네가 이 현필이라 하자. 네 고백은 이 것 뿐이다. 그게 예수님의 심정이에요. 뭐 잘했다 그래야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선생님의 심정을 노래한 사람이 성 어거스틴 이지요. 그분 일기에 이렇게 나오지요. 주님 제가 생각하는 생각에 죄 아닌 것 있었사옵니까? 생각을 한평생 했어요. 전부 죄야 제가 말 한말 가운데 죄 아닌 것이 있었사옵니까? 평생 설교 했어요. 가르쳤어, 전부 죄야. 제가 한 일 가운데 죄 아닌 것 있었사옵니까? 사업을 했어. 그 손에 뭍은 사업이 있어. 그게 죄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게 본거예요. 성령의 눈으로 보신 것이겠지요? 이 선생과 일치한 분이 그 심정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아까 그 말씀이에요. 주님 저는 죄의 못자리올시다. 그러니까 이것이 동의어란 말이에요. 말은 달라도 뜻은 같아요.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받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들일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 15절인데 그럼 다윗의 심정 똑같아요. 말은 달라도 그 소리야. 그럼 인제 이번에는 제가 24세에 세상을 떠나신 성녀 소화 테레사의 고백인데요. 이 문헌을 작년도 이야기 할 때 읽었기 때문에 참고하시라고 드렸습니다. 그러면 ‘작은 나무’라는 글 속에, 마지막에 이 성녀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작은 나무는 글속에 제일 마지막에 성녀 소화 테레사의 깨달음은 그렇게 나오지요?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무죄 선언을 받았다는 말은 곧 성인이 되었다는 복음입니다. 그럼 성녀가 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성녀지요. 그럼 이제 성녀 축일을 지어 주거든요. 왜 다시 말하면 용서 했으면 성인 아닙니까? 그거에요.
아무리 전과가 많기로 예수님이 용서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과 동등이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대표는 물론 모든 사람이겠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를 교훈 시키지요?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인제 피조물의 대표가 막달라 마리아인데 그럼 막 부활하시고 마리아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다. 그 얼마나 큰 재산이야. 내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다. 이 말을 남자 제자한테 가서 말하라. 그러니까 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들었어요. 그 복음을 전도한 사람들이 남자 제자들이야. 그러면 그 얼마나 예수님은 이 죄인을 용서했냐 이거에요. 그게 성인이야. 성인이 별것 없어. 예수님이 용서해 버리면 성인이지요. (끊김)
인제 법률로 하던 하나님 사랑으로 해보시던 하나님, 법률로 할 때는 모세를 시키시고 사랑으로 시키실 때는 예수님을 시키신 것이지요? 그럼 이제 성부성(聖父性) 이라는 것이 법률입니다. 정의,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정의로서 공동생활 시켰어요. 우리를 한 번도 남녀가 쳐다보지 못하도록 단속했거든요. 그것이 무서운 계율이었어요. 이 강당 생겼었을 때 칸을 막았습니다. 지금 터버렸지. 서로 못 쳐다보는 거예요. 그렇게 무섭게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계율로 가르쳤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요. 성모성(聖母性)을 가르칠 길이 없다는 거예요. 본인이 성모님이라야. 성모성의 사랑을 주지 그러니까 여자 지도자가 나왔을 때 어머니의 사랑을 주지 남자가 어떻게 여자의 사랑이 있냐? 그게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냐? 불교를 보나 천주교를 보나 그게 이 선생님이 스스로 체득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살아보고 깨달았어. 늦게 사, 그럼 이 2년 동안에 이 선생님에게 일어났던 사건은 그냥 웃을 일이 아니더라고요.
여기 오신 목사님이 계시다면 참고할만한 이 선생님 마지막 길이다. 그래서 말씀드린 것이고요. 그러면 성녀 소화 테레사의 깨달음은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하시고 저는 모두 사하셨기에 미치도록 감격하노라. 그게 선언이에요. 아니 미치겠다는 거예요. 너무 감격 감사해서 그럼 막달라 마리아는 죄가 많아요. 그걸 사했어요. 그래 성녀가 되었어요. 본인은 동정녀고 수녀인데 24세에 죽어요. 모두 사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의 죄가 99%라고 합시다. 그 자기의 죄는 100%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이야. 동의어야.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수나 이 선생님이나 성녀나 깨달음은 똑같아요. 아 나는 완전 죄인이다. 나는 성녀니까 수녀니까 동정녀니까 죄가 없다.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의 심정이야. 주여 이 죄 많은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피조물이 그 말로 족하지 무얼 자랑 할 것이 있냐는 것이지, 인제 그런 심정이 이 선생님의 감정이었다는 것을 엿보았지요. 엿보는 것이고, 그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사해 주셨지만 자기는 성녀 자신은 미리 모두 사해주셨기에 그 미리주신 사랑에 감격하셨습니다.
그럼 2천 년 전에 예수가 오셔서 다 용서했다는 말 그런 것 아니겠어요? 미리 다 용서했는데 마리아는 ‘모두’라는 말은 가사 ‘미리’ 라는 말이나 모두 라는 말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은 아니지요? 영적 해설이니까 그렇게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이 순결을 사랑하는 것은 성모성의 계승 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사 계승이라는 말 때문에 제가 설명을 더하고 싶어요. 그럼 성모성(聖母性) 계승, 그럼 성모성(聖母性)을 엿보는 글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시간이 다 되었어요? 이것은 잘 읽는 분이 읽으셔야겠네. 아까. 이것을 목사님 읽어주셔야겠네.
그러면 지금 그 성모성(聖母性)에 대해서 해설입니다. 거기 인용하려고 봤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는 완전한 희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소나 양을 잡을 때는 눈이 멀었든지 절뚝거리든지 병 있는 양은 못 바치지요. 완전히 건강한 양을 바쳤습니다. 공의에 의해서, 사랑의 법이, 이건 자비의 법이지요. 사랑의 법이 두려움의 법률의 대를 이어받았고 그러니까 모세시대의 율법이 안 되어요. 통치가 안 되어요. 모세 시대의 정의 법으로는 안 되겠고 예수는 절대의 자비의 법으로 다시 오신 것 아닙니까? 그 왕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 통치했지만 안 되니까 아들이 와서 자비로 통치한다는 말인데 자비로 한다는 것이 성모성(聖母性)이라는 겁니다. 거기서 볼라는 겁니다. 정의로 하는 것은 성부성(聖父性) 이지요. 아버지의 성격이지요? 그럼 성모성(聖母性) 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마음인데 그게 소위 말하면 자비의 길이란 말이에요. 아까 요한복음 1장 17절 그 말씀 이지요. 사랑은 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인 저를 제물로 골랐습니다. 병들고 절뚝거리니까 골랐다는 것입니다. 그게 막달라 마리아에요. 본인은 수녀고 처녀지만 자기는 본질상 환자라는 것입니다. 본질상 죄인이야. 모두 사하셨다는 말이에요. 이 말씀에 나는 참 항복했습니다. 창녀는 죄가 많은 사람이고, 동정으로 사는 나는 전부 죄이지요. 세포가 전부 죄다. 본질상 죄인이다. 그건 에베소 2장에 나오지요? 자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주기도문 풀이
다석 유영모
하늘 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히
참 말씀 임 생각 이니이다
이어 이에 숨 쉬는 밝은 속 알에
더욱 나라 찾음 이어 지이다
우리의 삶이 힘 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 옵고
진 짐에 짓 눌림은 되지 말아 지이다
우리가 이제 땅에 부닥친 몸이 되었아오나
오히려 임을 따라 우우로 솟아 나갈 줄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먹이를 주셨아 오니
우리의 오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먹혀 지이다
사람이 서로 바꾸어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고루 사랑을 널리 할 줄을 알게 하여 주시 옵소서
아버지와 임 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것 처럼
우리도 하나이 될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말 삶에 들어 갈수 있게 하여 주시 옵소서
거룩 하신 뜻이 위에서 된것과 같이
저희들 에게서도 이루어 지이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