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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돌과 비비추
 
 
 
카페 게시글
동산*문학관* 스크랩 꿈꾸는 타지마할 외 / 서영미
동산 추천 0 조회 21 09.07.21 10:4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꿈꾸는 타지마할 / 서영미

 

-밀랍인형의 초상화         

                                                                       

 

 

여인의 뜨거운 미소가 등을 보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서 등을 돌린다는 것은
위험한 분노로 진화하거나,
때론 치명적인 그리움으로 변신한다는 것을 알았다.

애증이란 나에겐 매듭이 아니라 질긴 밧줄이었으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시간에 갇힌 뭄타즈마할의 노래처럼*
영혼의 밧줄에 마술을 걸어 당신을 가두려하였다.

다가가려할수록 미세한 조각으로 깨어지며
더욱 아득해지는 궁으로
여인의 빛나는 슬픔을 훔치러 다녔다.

타인이 되어 액자 속으로 걸어 들어간 여인의 표정은 담담했다.
노여운 그리움으로 늙어가는 나를 혐오하듯
밀랍인형의 창은 불빛이 밝았다.

어둠을 뚫고 눈뜬 것들은 별을 모방한 나의 시선뿐,
꺼지지 않는 밤을 지키며
빛을 삼키는 당신의 투명한 궁에선
하얀 대리석 동상의 그늘이 만들어지고 있다.

늦은 후회가 있어 시간 속에 묻은 천년의 사랑은 더욱 빛날 것이나
이젠 손을 놓아야할 사람 앞에서, 나는
아그라의 언덕에 쌓아 올린 성벽처럼 강건하게
그대의 무덤으로 낡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전쟁 같은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타고르의 시 타지마할에서 인용.

 

 

 

 

 

 

 

life together

 

 

 

 

위대한 동맹 2 / 서영미

 

   - 사막의 혀  




나와 사막은 오랜 동맹관계를 약속했다.

방대한 구역과 모래 군사를 겸비한 사막은 나에게 많은 작전정보와 보급품을 지급 했고 나는 선인장처럼 뿌리내리며 건조한 그를 모방했다.

하지만 오랜 건기는 사막을 비겁하게 만들었다.

오아시스와 타협하여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목격한,

나의 말랑말랑하던 몸에는 가시가 돋았다.


동맹관계의 혀와 사막지도와 낙타의 수와 나약한 지도자에 대해 함문할 것을 약속하며

낙타를 버리고 맨발로 사막의 국경지역을 걸어 나온다.

위험한 동맹국이 되어버린 사막은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달콤한 채찍으로,

나의 혀를 사막으로 몰았다.


나는 사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등 돌려 나오는 사막기지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찬 사막바람에 낙타의 똥냄새가 막사를 흔들어 놓았다.


이명처럼 들리는 사막의 바람소리와

낙타의 똥이 오아시스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두려울 뿐,

내가 버린 것은 사막이 아니었다.


 

 

 

 

 

 

 

 

Untitled

 

 

 

 

골목길 안 전봇대 / 서영미

 

 

 

상처받은 사물은 단단해진다
치유를 위해 옹이를 만들어 낸다
상처받은 사물은 위험해진다
보호하기 위해 견고해진다
상처받은 사물은 담담해진다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상처받은 사람은 뿌리가 깊다
맨 살로 아스팔트를 뚫고 서 있는
시린 뿌리의 위험한 분노
골목길에서 길을 잃은 두려움에 치를 떨어 본 적이 있는가
길을 잃는 것보다 위험한 분노로 사람은 우울해진다
우울한 골목길에 낯선 외로움이 서 있다
무감각하게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가거나 기대었다 간다
새들이 돌아간 전선 줄 위
느린 불을 켜는 골목길 안 가로등

 

 

 

 

 

 

 

 


Ducks an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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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21 18:44

    첫댓글 어제, 농가의 정자에 앉아 기둥에 남겨진 까만 옹이(관솔)의 촘촘한 나이테로 쓰여진 읽기책을 바라보며 어떻게 읽을 것이가를 생각 중인데 공교롭게도 서영미 시인의 "골목 안 전봇대"를 읽으며 의인화하는 가닥을 잡습니다.

  • 09.07.21 19:12

    귀한 글과 사진에 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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