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 겨울이었던가?
대학 동문회 정기총회 석상에서 이세은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십 여년 전이었으니 얼마나 앳띠고 여렸던지 그저 유리구슬 같았지요. 그녀는 어머니 인 유명수 아우님을 따라 와서 잠깐 인사를 하고 갔었지요.
그때도 요란하지 않고 조용했으며 그윽하였습니다. 유난히 선하게 큰 눈은 마주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여배우라는 대명사가 풍기는 화려한 빛깔과 짙은 향은 어디에서고 찾아 볼 수 없고, 아주 먼 행성으로부터 방금 외출 나온 수정공주같이 투명하며 여려 보였습니다.
그 엄마를 알기에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은양이, 이 험한 세상에서 잘 버텨주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세상이 세은이를 잘 지켜주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스타라는 직업이 모든 매체를 통하여 대중 앞에 서게 되고, 그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되며,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니 그 위험한 요소들로부터 세은이를 상처받지 않게 지키는 일이 또한 얼마나 어려울지를 먼저 걱정 하였습니다.
그동안 세은양이 출연한 영화나 TV드라마나 연극을 모두 다 살펴 볼 기회는 없었지만 야인시대에서 대장금에서...세은양이 출연한 작품을 숨죽여 지켜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에 드디어 세은이를 만났었지요. 세은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성숙한 예술가로 변신한 그녀를 대하는 순간 저는 숨이 막히는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날의 연극 " 허탕 " 은 글자 그대로 허탕 이었습니다. 하기야 인생 그 자체가 허탕 일 수 밖에요.
죄수로서 안주하지 않기 위해 무딘 톱날로 최창살을 긁어대지만 그들 죄수는 그것이 성공 할 수 없는 작업이란 것을 잘 압니다. 그것이 곧 죄수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기 위한 죄수의 유일한 자존심이라나...
다소 지루한 듯한 두 남자 죄수의 입씨름이 있고 난 다음 세은양이 등장하고부터는 극은 진전을 보입니다.
완전히 넋이 나간, 온 몸의 힘이 쭉 빠진, 두 팔에 가는 실핏줄이 다 드러날 정도의 쇠약한 몸으로 한 임산부가 그 감옥으로 들어 옵니다. 앞으로 내밀어진 목, 굽은 등, 축 늘어진 어깨, 눈도 뜨지 못하고, 모든 사고와 기억력마저 거세 된 그녀는 물처럼 주저 앉았다 꺼이꺼이 웁니다. 울음도 미처 나오지 않아 그저 고개만 겨우 끄덕여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하지요.
뱃속의 아이가 정상태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죽임을 원하는 시집 식구들의 무지막지함에 항거하다 그들을 불살라 흩어지게 한 것이 그녀의 죄명 입니다.
여배우 이세은은
백치같이 절제된 의식을, 거미같이 쇄잔한 육신을, 고개를 앞으로 쑤욱 내밀고, 등을 굽히고, 부른 배를 희고 가는 양 손으로 움켜쥐며, 그러나 강한 모성으로 아기를 지켜 갑니다.
어찌나 허허롭게 연기를 하는지 저는 저러다 주인공이 쓰러지면 어쩔까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여린 몸으로 표현하는 절망과 아기를 지키려는 모성 본능이 대조를 이루며 그녀를 쓰러지지 않게 버팅겨 주는 듯했습니다.
극은,
군데 군데 어불성설의 이이러니를 장치하여 제목이 "허탕" 임을 인지 시키고 같은 방의 죄수를 통하여 오늘도 아기를 떼지 않았느냐고 욱박지르던 그날의 상황을 반추시키며 반전을 꾀합니다.
작가가 극본을 쓸 때 "허탕"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그것이 무대에 오르고나서 그것은 관객의 몫 입니다. 누가 어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저는 그저 다만 우리 시대의 유망주 배우 이세은의 완숙한 연기만을 보았습니다.
그 어느 여배우가 " 허탕 "의 여죄수 역을 이세은 보다 더 잘 연기 할 수 있을까요? 이세은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한 순간의 어거지나 무리함도 없이 온 몸의 진기를 다 투척하여 그 역할을 소화해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십 년 전의 그 연약하던 어린 배우가 오늘날 이리 완벽한 연기를 해낼 수 있다니!
극이 끝나고 특별히 세은양이 공연장 밖으로 나와 엄마의 동창들을 위해 인사를 할 때 그녀의 눈은 아직도 물기로 젖어 축축 했습니다. 극중 인물이 되어 감정에 몰두하다 너무 울었나 봅니다.
우리는 그날 한 사람의 藝人을 만난 것 입니다.
여전히 그녀는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며 그윽하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또 한 번 숨이 콱 막혔습니다. 마치,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아릿다운 곡선의 비색 고려청자 한 점을 접하는 것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한 학기만 더 마치면 이제 석사학위까지 취득하고, 지금도 대학에 강의도 나간다 하니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이 험만 세상에 바르고 곧게 자라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藝人 이세은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그녀의 어머니 유명수아우님께 더 할 수 없는 큰 찬사를 보냅니다.
첫댓글 지난 번 큰비가 낙뢰와 함께 오더니 인터넷이 고장났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게서야 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좋은 기회를 준 유명수 아우님께 감사 드리고, 함께 좋은 시간 보내주신 두 분 선배님, 그리고 옥덕아우님 고맙습니다. 또한 함께 해준 저 아랫 기의 두분 아우님의 활력으로 그날이 더 즐거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6년의 세월에 사업도 성공하고 글솜씨는 여전합니다.오랫만의 귀국답게 좋은 구경 잘하고
어느 연극 평론가 못지않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인정스런 이모님의 연극평을 그 옛날 獻花歌 읽듯이
잘 읽었읍니다. computer 가 수리되어 고맙습니다.
언니의 과찬에 부끄럽고 감사 합니다. 이곳이 제 집이 아니다 보니... 갓 이사 온 딸의 집엔 사건도 자주 일어납니다. 방충망이 들 떠 있어서 남산의 모기가 다 들어와 외손녀를 물었지요. 산 속에 사는 깔따귀인지 물기만 하면 긁지 않아도 붉게 부풀어 오릅니다. 인터넷이 안 되는 며칠 동안은 외딴섬에 홀로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현대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인터넷 입니다. 언니 여름철 건강에 유의 하셔요.
이세은양의 연극평을 들으니 못본 "허탕"이 연상되며 느낄 수있을 것 같습니다.어릴적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배우가 된 성장한 세은양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정금자님의 예리하고 향기로운 글향에 또 한번 반합니다.책을 오래 읽지 못하는 지금에도 금자님의 글은 단숨에 읽어낼 것 같습니다.기대할게요.^^ "세은양이 열연한 연극 "허탕"의 기회를 놓진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날 큰 언니들께서 아니 계셔서 허전 하였습니다. 세은이가 십 년 전에도 배우였습니다만 그 짧은 기간 안에 이리 완숙한 연기를 할 줄이야 몰랐습니다. 요즘의 배우들이 얼굴만 가지고도 연기를 하는 이가 있겠지요만 세은양은 온 몸으로 신을 풀어내렸습니다. 다음 번엔 어떤 색깔로 변신을 할 지 ... 기대 됩니다.
그 날의 감동을 예리한 작가적 시각으로 쓰신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다 후련해집니다.
뭔가 진한 감동은 느껴지는데,표현할 재주 없음이 답답하던 차 금자언니께서 시원하게 풀어주셨네요.
문화생활과는 담쌓고 사는 저에게 연극이라는 장르를 경험케 해준 명수아우님과 훌륭한 연극소감을 접할 수 있게 하신 금자언니와의 善緣에 감사합니다.
과찬 입니다. 말썽쟁이 인터넷 때문에 밤 늦게 딸이 들어와서야 그 딸의 핸드폰으로 두 분 아우님께서 연극 "허탕" 에 대해 올리신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가슴 뿌듯하고 기분 좋았습니다. 삽시간에 따끈따끈한 기사를 올리는 옥덕아우님의 솜씨는 그야말로 국보급 입니다. 회식 중의 촬영도 순식간에, 같이 자리한 사람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거부감 없이 처리 하더군요. 대학 때 혹시 학보사 기자가 아니셨는지?...
다 같이 보아도 감히 표현 할 길을 잃고 마음 속에만 담아두며 안 간 사람 역시 사진만 보고 혼자 느낌을 가지지요.
전 후 를 평가와 해설을 곁들여 올려주니 사진과 접목시켜 안 간 사람들도 <허탕> 연극을 봤습니다. 그러니 있을
사람은 있어야 하는데 허전한 자리에 이번에 참석하니 이렇게 좋군요. 지구촌에서 재경 인터넷 동아리는 하나이니
좋은 글 많이 올려주고 빛내 줘요. 세은양은 길이 빛 날것입니다
혜숙언니의 빈 자리가 아쉬웠습니다. 함께 기뻐하고 격려 하셨을텐데...우린 참 부자인가 봐요. 존경하는 선배님에, 믿음직하고 사랑스런 후배에, 한 번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끈끈한 유대관계는 그 누구도, 그 어떤 모임에서도 부러워 하는 요소 인가 봅니다. 인터넷 동호회원임이 기쁩니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는 세은이에게 너무나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연극을 보고 몹시 당황했읍니다.. 아이가 다른작품과는 달리 엄마랑 아빠가 늦게와서 봤으면 해서 의아하게 생각하며 보러갔거든요... 저는 연극을 연극으로 이해못하고 내심 무척 당황하기까지 했는데...다행히 세은아빠가 딸의 연기가 한단계 도약했음을 치하하며 딸의손을 잡고 칭찬할때야 가슴을 쓸어내렸읍니다...그리고는 에미가 할일은 고기반찬해먹일려고 애쓰는것 밖에요...세은이가 힘들때에 금자언니의 평서가 큰힘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세은양을 보면서 명수아우의 빛나던 시절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다소곳하고 안온한 모습 ! 그러나 무엇을 하려고 작정을 하면 끝내 이루고야 마는 승부근성과 강단 ! 바로 외유내강 그것이었습니다. 딸의 오늘이 있기까지 엄마는 또 얼마나 수많은 밤을 걱정과 초조 속에 보냈을지도 짐작 됩니다. 세은양이 연기자로서 거듭나며 한 경지를 이룰 때마다 엄마의 숨은 노고도 컸을 것 입니다. 온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명수 아우님의 몫을 생각해 봅니다. 부디, 건강 지키시기를...
금자님, 얼굴도 못보고 글로 봅니다. 연극에 폭 젖어서 무대를 보셨군요.
6년만에 와서, 그간 뵙지 못한 선후배님들을 꼭 뵙고자 했는데 잘못하다 금지언니를 못 뵙고 갈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글과 사진 항상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기 기원 합니다.
와우~~정금자선배님 글을 보니 연극을 본듯 하네요......
유명수선배님과 따님 이세은 양을 마치 품에 안고서 어머니 마음 으로 다둑다둑...잘했다 장하다....
칭찬 하시는것 같습니다....이세은양 팬도 하고 정금자 선배님 팬도 해야겠어요.....ㅎㅎ
연일 올라오는 성지순례 시리즈 잘 읽고
있어요. 걸림없는 글과 사진, 친근감 있는 주연 여러분...함께 갔다온 느낌 입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배우 이세은이 양들의 침묵에서 열연한 예일대 출신의 완벽파 배우 조디 포스터 같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은이가 연기자가 될때 그영화가 나오고 하던시절이라.. 세은이 희망도 그런배우가 되는것이었거든요....
아우님 글을 읽으니 직접 연극을 봤다해도 이보다 예리한 평을 할수 있겠나 싶네요, 함께 하지 못한 그날이 아쉽지만
글을 읽어보는 지금도 너무 감계무량합니다.
맞아요..언니 세은이 연극보다도 금자언니글이 더 작품인것 같애요... 저도 가슴이 뭉클했어요..
난입으로만 되뇌는 "세은 양의 팬"인데 금자 님의 글을 보니 "허탕"보러 려 가고 싶다.좋은 연기에 맞는 감동 적인 평이다.연기도 좋고,글도 좋고...우리 동호회가 정말로 보배롭구나.세은양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를...금자님의 글을 자주 볼 수가 있기를 기원 해본다.
선배님 세은이에 대한사랑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
작가보다 더 예리한 감성을 가지고 연극을 관람하고 올린 금자님의 글에 마치 꽉막힌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입니다.가냘프고 여려 보이는 세은양을 오래전 부터 봐 왔다니 한층더 대견해 보였겠지요.
한국의 죠디 포스트 가 곧 나올것 같아 기대합니다. 오늘의 세은양이 있기까지 명수님의 노고에 감사드려요.
선배님 모자라는 아이를 너무 칭찬하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감사합니다.